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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작용 Apr 03. 2020

어디서 살고 싶어?

사랑의 진화

독서모임을 준비하기 위해 책을 읽다가 문장 하나에 줄을 쳤다. 그 문장은 내가 그 책에서 찾고자 했던 언급 ― '어떤 의미도 담고 있지 않다. 전 세계의 대중들이 그 연설가를 따르는 것은 마치 아직 끝나지 않은 연설 학교의 수업을 참관하는 것과 같다. 헛소리들'과 같은 ― 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런 문장이었다.      


스벤은 그곳에서 자신의 목가적 이상향을 찾았다.     


목가적 이상향. 나는 이 단어에서 책 읽기를 멈추고,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고 말았다. 상상 속에서 나와 너는 침대에서 보드라운 살을 맞대고 누워있다. 정신없이 서로의 입술을 핥다가, 너에게 묻는다. 나중에 어디서 살고 싶어요? 의외의 질문에 너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동그랗게 눈을 뜬다. 갑자기 그건 왜요? 그야, 네가 꿈꿔왔던 ‘그곳’이 궁금하니까, 나중에 그걸 이루어주고 싶으니까. 나는 내 배에 닿은 네 배의 감촉에 감탄하며 생각한다. 

     

꿈꿔왔던 나의 그곳에는 늘 강이 있었다. 짙은 초록색의 강. 오래된 나무가 강가를 따라 늘어서, 강은 언제나 나무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 그러니까 강의 상류도 하구도 아닌, 중간의 어디쯤. 산이 그치는 어디쯤. 물길들이 모여 이제 막 깊은 강의 형상을 드러낸 그런 곳. 그 강의 옆구리에 자리 잡은 집 한편에는 커다란 창이 있다. 그 창에 서면 언제나 따스한 햇살과 함께 강을 볼 수 있다. 강이 보이는 그 창가에 나는 서재가 있었으면 했다. 그곳이라면 나는 언제나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너의 살고 싶은 곳은 어디일까? 나는 멋대로 상상해본다. 


의외로 너는 도시의 한 곳을 고를지도 모른다. 쓰레빠를 질질 끌고 집 앞을 나서면,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는 도시의 집. 며칠 전 집 근처에 술집들에 감탄하며 네가 말했던 걸 나는 기억하고 있다. 와, 정말 이사 잘한 것 같아요. 주차 문제에 속을 썩이더라도, 집 근처 맛집이 영원히 계속될 다이어트를 괴롭게 하더라도, 너는 도시의 한 집을 고를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릴 때 자주 빠지곤 했다던 그 냇가가 있는 그곳을 고를지도 몰라. 발가벗고 수영했다는 여름의 시원한 냇가의 옆. 곧 다가올 여름을 기대하게 만드는 그 냇가를 고를지도 몰라.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빛을 바라보며 손을 잡고 누워있다가, 우리도 모르게 잠들 수 있는 그런 곳.     


그것도 아니라면 너는 그저 어두운 방안을, 해가 많이 들지 않은 작은 창을 가지고 있는 방안을, 손을 뻗으면 그림 재료가 잡히는, 작업실과 살 곳을 거칠게 버물려 놓은 듯한 그 방안을 너는 고를지도 몰라. 그 방 한쪽에 나의 있을 곳을 만들어주었으면. 너의 뒷모습을 훔쳐보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가끔 너를 그리고 싶다는 충동이 인다. 제대로 그리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색연필을 만지작거리기만 한다. 여리지만 막상 두 팔도 안으면 단단한 몸, 소년 같이 맑은 미소, 손가락 사이를 간질이며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머리를 영원히 자르지 못하게 할 거야. 너를 너무나 아껴서, 너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나는 또다시 너에게 욕심하나를 더한다. 나의 욕망. 끝도 없이 ‘더 많은 것’을 외치는 욕망. 그러나 언제나 너를 사랑하는 마음에 쉽게 이지러지는 그런 욕망.      


어디서 살고 싶어요?     


아직 묻지 않은 질문인데, 내가 뱉어낼 대답은 이미 나의 귓가에 어른거린다. 그것은 네가 나에게 속삭였던 달콤한 말들이 진실되었기 때문이다. 살짝 눈물이 어린 동그란 눈으로, 너는 이렇게 대답하겠지.     


당신이 있다면 어디든 괜찮아요. 당신만 있으면 돼요.   

   

어떻게 너 같은 사람이 나에게 왔을까. 

어째서 이렇게 맑은 사람이 나에게 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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