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재 지음
김치를 만든 경험이 있는가?
나는 몇 년 전부터 김치를 담그기 시작해서 이제는 배추김치, 총각김치, 깍두기, 열무김치, 갓김치,
물김치, 파김치 등 거의 모든 김치를 담글 줄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건 유튜브 덕분.
생각했던 것보다는 쉬운데 김치를 만들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들은 참으로 많다.
양념준비도 바쁜데, 배추를 절였다가 물을 뺐다가 기다려야 하는 과정들,
그리고 육수를 만들어내고 황석어 등을 다려서 '액'으로 만들어내는 과정들을 거치면
그제야 맛난 김치가 탄생한다. 황석어 등은 김장김치엔 다려서 넣는 것이 맛이 깊어 좋다.
물론 이런 지난한 과정들을 겪지 않고 간단하고 빠르게 만들 수도 있지만,
그 과정들을 거친 김치의 맛이 남다르기 때문에 귀찮더라도 신경 쓰게 되는 것.
이 책은 제일기획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던 저자가 어머니가 세운 김치공장에 부사장 직함을 달고
입사하면서 겪는 공장의 이야기를 다룬다.
나 역시 30대 초반에 공장에서 부사장(?)으로 일한 경험이 있어 남의 얘기 같지가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저자는 자발적 입사이고, 나의 경우엔 비자발적 입사 인 셈.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의 부고로 인해 어머니께서 대표가 되고 나는 어머니를 돕는 역할이었으니.
공장일은 보이는 것보다 안 보이는 것들에 더 신경 쓸 일이 많다.
사실 직원들의 노고야 백번 말해도 입이 안 아플 정도로 수고스럽고 감사한 부분이지만,
사장 입장도 직접 공장 기계를 돌리지만 않을 뿐 신경 쓸 일들이 너무나 많다.
세금 및 채무관리, 자금융통, 기계관리, 인력관리 등등.
이 책에 나오는 '도미솔 김치'를 파는 김치공장에도 전부 묘사가 되진 않았지만 그러한 고충들이
잘 녹아 있었다. 저자의 어머니이신 대표님은 공장을 여러 번 담보 삼아 융자도 받고 대출금 갚고,
또 융자받고 대출금 갚고 하면서 수도 없이 성패의 파도를 넘으신듯하다.
그럼에도 좋은 재료에 타협이 없고, 직원들을 대하는 시선도 따스한데 이는 진심이 없으면
지켜지지 않을 부분이라서 존경스러웠다.
저자 역시 사장님의 딸로서, 사장님의 태도를 비슷하게 따라가는 듯해서 마음이 흐뭇했다.
중소업체들은 늘 많은 풍파를 겪고 산다. 대기업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중소업체가 아무래도
가격협상력 이런 부분에서는 밀리게 마련이니. 자금도 부족해서 늘 자금 유통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것이 고민의 80% 이상을 차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행히 나와 엄마가 운영했던 공장은 민간 대상이
아니고 정부 관련 업체였어서 따로 영업을 안 해도 돼서 정말이지 편안했으나,
보통은 이 영업이 쉽지 않고 새로운 거래처를 마련하고 또 납기일에 맞춰서 생산하는 것들이
절대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않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게 또 사업의 묘미이고,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나 갔을 때 성취감도 어마어마하겠지.
저자는 광고회사에서 일한 짬이 있는데도 제대로 된 마케팅 캠페인을 못 펼쳤다며 스스로 자책하는
그런 내용이 있었는데, 내 생각엔 이 책을 집필한 것 자체가 사실 최고의 마케팅인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김치'에 대한 진실된 마음이 느껴져서 도미솔 김치를 찾아보았으니.
유튜브나 블로그에서 아무리 스토리를 보여주는 것보다도 이 책을 읽는 게
소위 '진정성' 측면에서 몇 곱절 우위에 있는 것 같다.
남들이 볼 땐 너무나 흔한, 흔해서 별로 중요하게 여기 지도 않게 되는 그런 식품인 '김치'
하지만 그 김치 하나 잘 만들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고
좋은 재료, 진실된 제조과정, 공정한 분배를 원칙으로 삼는 사장님과 공장 식구들이 있어서
글을 읽는 동안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책.
이 공장 한번 방문해 보고 싶다. 불시에 가더라도, 늘 청결상태가 깨끗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