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원 지음
'그것이 알고싶다'라는 프로그램의 열혈팬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씩 '그알'을 보게되면 그알 제작인의 집요함과 대담함에 놀랄때가 있고
이렇게 세상에는 여전히 어두운 구석이 많음을 깨닫고
이기적인 인간에 대해서 분노하게 된다.
멍때리면서 그알을 보다가도, 그알의 때때로 자극적인 메세지에 갑자기 멍때림이
방해받으면서 고요했던 뇌파에 찌릿한 진동이 느껴질때가 종종 있어서,
그알을 선호해서 보게 되지는 않는다. 보고나면 뭔가 마음이 무겁다고나 할까.
하지만, 자기자신과 나의 가족만을 위하고 생각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이 세상과 사회에 대해서 끊임없는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면에서
그알은 매우 필요한 tv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그알의 PD인 이동원 님께서 에세이집을 냈다고 하여, 읽게된 책인데
이거 원! 너무 재미있다.
적어도 이 책에 담긴 사실들은 모두 사실일테고,
약간의 과장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다지 과장은 없다고 생각되는 문체이긴한데.
이 책에 나온 조폭이야기, 인권변호사 이야기, 교도소 이야기, 아동학대 이야기 등
모든 이야기들이 그 어떤 소설보다도 생생하게 그려져서
새로운 세계의 사람들을, 그리고 그쪽의 사회를 알게되는 호기심 충족의 재미가 있다.
내게 가장 압권은 타짜이야기. 한 사람을 아주 순식간에 나락으로 보낼 수 있는
'설계'와 세력의 실행능력은 이 책에서 묘사된것만 읽어도 섬칫했다.
고스톱에서 15,000배를 튀긴다니.
대학교때 한게임 '맞고' 밖에 못해봤던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버젓이 이런 일들은 일어나고 심지어 도박으로 빚지고 일순간에 마약 소지자로
체포되었다는 슬픈 사연의 피해자들이 있다는게,
영화 타짜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런 일들이 현실에서 버젓이 일어난다는게 놀랍다.
자신의 직업을 스스로는 대단하게 여기진 않더라도 최소한의 직업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그 자체로 빛이 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최대한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용기는 아름답다.
이동원 님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그늘의 세계에 대해서
그 안에서 발휘되는 인간의 휴머니즘에 대해서
그리고 사법체계가 완벽하지 못해 억울하게 누명쓴 분들에 대해서도
끝까지 애정을 가지고 취재해서 빛을 밝혀냈다.
자신은 그저 월급쟁이이고, 워라밸을 갖고 싶다고 투덜대지만
그의 직업의식과 직업적 소명에 대해서 무척이나 감탄하게 되었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누명을 쓰고 20여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 그리고 또다른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누명을 쓰고 역시나 억울하게
형 집행을 받아 젊은 시절은 감옥에서 보낸 피해자 들이
나라를 상대로 받아낸 피해보상금을 자신들이 쓰지 않고 재단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서 알게되었는데, 진정 숭고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언론에서는 늘 자극적인 사건들, 자극적인 사람들만 비춘다고 생각했는데
모처럼 언론의 순기능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는 그런 책.
이동원님이 언제까지 그알 PD일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이 마음 변치않고 계속 사회의 어두운 면을 집요하게 파고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