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막연하게 알고 있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엄청나게 진지한 문학피플들만이 읽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세계문학전집 이런류를 좋아하지도 않고, 또 대놓고 진지하게 문학을 칭송하는 부류도 경계하는 편이며,
게다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라는 것도 괜히 그 권위에 반항하게 만드는 그런 요인이여서
내가 살면서 이 소설을 읽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대학입학 수능에서 만나면 만날 수도 있었겠지만, 내게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었고.
도서관에서 서가를 지나치다가 정말 우연히 발견했는데, 내 생각보다 책의 두께가 너무 얇아서
이건 마치, 그냥 안 읽고 지나치기엔 너무 '쉬운' 기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서
그래서 읽게 되었다.
내 예상과 다르게, 무조건 진지하고 노잼일것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르게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어서 거의 한 번에 다 읽게 된 소설.
1950년대에 발표한 소설이지만,
약 70여년이 흘러도 인간에게 관통할만한 그런 주제를 지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이 소설은 평생 어부로 살아온 한 노인이
고기를 잡으러 홀로 떠난 여정속에서 우연하게도 길이 5.5미터에 달하는 커다란 황새치를
만나서 사투끝에 그 고기를 잡아서 배에 매달아서 다시 돌아가려 하는데,
이 커다란 황새치의 피냄새를 맡고 오는 상어들의 공격에
처음엔 상어들을 제압하지만, 몇번이고 공격하는 서로 다른 상어들의 공격에 결국에는
커다란 황새치의 모든 고기를 다 빼앗기고 마는 그런 이야기이다.
노인은 결국 너무 진이 빠져서 다시 마을로 돌아오고는, 집에 돌아와 쉼을 청하고
마을 사람들은 이 커다란 황새치의 뼈만 보고서도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는 그런 결말인데.
이 소설에서 제일 좋았던 것은, 내 스스로 노인이 되어
커다란 고기와 나름의 밀당을 통해서 대치하다가 결국 고기를 포획하고
그러다가 상어들에게 뺐기고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생생하게 직접 겪은 기분이 드는 것이
가장 좋았다. 이 짧은 소설에서 많은 은유를 통해서 표현된 것들이지만
각각의 인생이라는 것도 개별적인 각각의 항해와 같고 포기하는 순간 그저 멈춘채 부유하는 것만이 남게 되고
맞서 싸우는 순간 1mm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이,비록 상어에게 다 뜯기는 순간이 온다 하더라도
어쨋든 그 나아감이 나를 지탱하게 한다는 것이다.
만족이라는 건 각각의 기준이 모두 다르다.
세속적인 기준이 지배적인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아님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로서 정의한 그런 기준들이 있을 것인데,
인생 속에서 그 기준을 하나하나 맞추어 갈 수 있다면 그 누구보다 본인은 행복함을 느끼게 되겠지.
남의 평가 라는걸 떠나서, 스스로의 기준속에서 조금이라도 희망을 가지고
삶의 순간을 즐길수 있다면,
삶의 순간에 충실할 수 있다면
그것이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성공이라는 것이 이렇게 자신만의 언어로서 제대로 기준이 잡혀져 있을때,
비로소 편안히 사자꿈(결말에서 노인은 사자꿈을 꾼다)을 꿀 수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