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지음
짧지도 길지도 않은 270페이지 분량의 소설인데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다.
작가의 정치적 성향이 어떠하든간에 작가 '이문열'은 필력이 대단하고 서사를 풀어나가는 힘도 대단하다.
가벼운 에세이, 트렌디한 소설류를 (요즘은 잘 읽지않지만) 읽다보면 느껴지는 허무함도 없고
이게 소설이 될까 하는 플롯을 가지고 소설로서 마무리 짓는 실력에 박수를 보낸다.
리투아니아의 피가 섞인 어머니를 둔 뮤지컬 음악감독의 여성과
연극과 뮤지컬 연출자로서의 남성인 주인공의 스토리인데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이 생각났는데, 실제로 그녀를 모델로 한 소설이라고
저자가 밝힌것도 흥미롭고 아무래도 이제는 나이가 있다보니 중간중간 인물들간의 대화나 유머 이런 부분은 좀 올드하게 느껴지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읽는 재미, 허구와 팩트를 적절히 섞은듯한 상상력
이런 것들은 단기간에 베낄수도 흉내낼수도 없는 이문열 작가만의 매력이겠다.
어린시절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읽고 큰 울림을 받은 기억이 있어서인지
그의 사상에 대한 왈가왈부가 한참이던 시절에도
작가의 문학적 예술성까지 비하할수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내 생각을 더욱 굳히게 하는 소설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이 세상 어느 것도 시간의 파괴력에서 벗어날 길이 없고,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시간의 파괴력에 저항할 수 없을뿐더러, 어쩌다 벌어지는 부질없는 저항은 오히려 웃음거리나 빈
정거림의 대상이 된다. 그리하여 체념한 사람들은 그런 우리의 운명을 허무라 이름 하여 슬퍼하고 한탄해 왔다. 세상에 흘러 넘치는 염세와 비관의 노래는 대개가 그런 시간의 파괴력에 대한 속절없는 인식의 표현이다.
그렇지만 또한 우리 삶은 너무 고달프고 분주하여 우리 존재가 타고난 허무에 골몰할 틈이 없다. 우리 대부분은 범속한 일상에 허덕이면서, 또는 놀기위한 놀이에 빠져 시간의 파괴력을 잊고 지낸다. 그러다가 날이 저물어야 놀라 돌아가야 할 집을 떠올리는 아이처럼, 시간이 우리의 마지막 숨결을 끊어 놓으려 할때에야 비로소
슬픔과 두려움 속에 그 파괴력을 절감한다."
이런 구절이 있었는데 소설과 상관없이, 인생의 진리 아니던가 싶어서 역시 한번더 감탄하게 되었다.
이런 통찰을 가지고 이렇게 문장을 쓸 수 있구나 싶어서.
나 역시도 이런 문장들을 쓰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내 손에서는 이런 글들이 안 나오네.
무척 오랫만에,
문학적 예술성이란 무엇일까, 예술이란 무엇일까 이런 주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본 그런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