퐅랜,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우린

이우일 지음

by 세레꼬레

내가 대학생이던 2000년대 초반, 이우일 작가와 지금은 문학계의 아이돌로 불리우는 김영하 작가와의 콜라보레이션이 돋보이는 영화에 관한 책이 있었다. 그 책이 생각보다 넘 잼났어서(김영하 작가의 영화평에 이우일 작가가 일러트스를 그린) 이우일 작가에 대해서 기억을 하고 있지만 사실 그의 그림이나 삶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다. 아, 이우일씨의 부인도 그림작가이고 그 부부의 신혼여행기에 관한 책도

읽은 기억이 있다. 어쨌든 그 기억들은 나의 꿈많았던 20대라는 주제속에서 점점 시들어가고 있었는데.


며칠전 도서관에서 책들을 잔뜩 빌렸는데 "자본주의 대예측" "처칠 팩터" 이런 책들이다보니,

뭔가 너무 딱딱해진것 같고 요즘 내 일상도 삭막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어들게 된 에세이가 바로 이우일 작가의 "퐅랜" 이였다. 이것도 검색해서 찾은것도 아니고 그냥 서가를

둘러보다가 우연히 집어들었다.


"여행 에세이 혹은 체류 에세이"


한때는 너무나 많이 읽었었고, 이제는 사실 좀 진부하게도 느껴지는게 다른사람의 여행이야기, 체류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난 이상하게도 이 장르에 대해서 좀 애착이 있다.

마치 내가 실제로 여행하는듯한 느낌도 강하게 느껴지고(다큐멘터리나 여행동영상 보는것보다도 더 깊게 느껴짐) 그리고 작가의 시선도 그 작가의 직업이나 삶의 이력등에 따라 각각 너무나 달라서 그런 것들을 살펴보는것 또한 재미있기 때문에.


임경선 작가의 포르투갈 여행에세이도 재미있고 김영하 작가의 시칠리아 여행기도 재미있는데,

아마도 이번에 읽은 이우일 작가의 퐅랜도 best 순위에 올려야 할 것 같다.


히피같은 자유로운 삶을 대하는 태도,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충실히 사는 삶을

작가는 보여주고 또한 그런 삶의 태도가 포틀랜드에서 너무나도 맞춤옷인마냥 자연스럽게 발현되는것들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무척이나 수더분하게 그리고 덤덤하게 묻어난다. 작가와 그의 부인, 그리고 딸의

부조화스러우면서도 한 가족의 울타리 속에서 공유되는 정서 같은것도 흥미롭고 무엇보다 딸과 아빠가

누드크로키를 같이 그리러 다녔다는 것도 신기하기도 하고(예술가족이란 이런것인가)


책을 읽다보면, 마치 나도 비올때 후드티의 후드 하나 쓰고선 장대비를 뚫어가며(우산없이) 돌아다녀야할것 같고 강가 옆으로 조깅을 할 것 같고 여름이 되면 낡은 아파트의 유일한 부대시설인 수영장에서 한낮의 햇살을 즐기며 책을 읽어야할것 같고 파월북스 서점에서 나의 에세이를 영어로 살짝 스스로 번역하여 셀프출판 후 팔아야할것 같고 주말에 열리는 파머스마켓 같은 곳에서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사야만 할 것 같다.


나이키 창업자의 자서전인 슈독을 읽으며 오레곤에 대한 생각을 했었는데 포틀랜드 역시 오레곤 주에

있는 도시이다보니, 그리고 한때 킨포크의 발신지로서 너무나 유명했던 도시이기도 해서 언젠가 가보고싶다

라는 생각은 했었는데, 역시 이런 도시는 여행보다는 체류가 더 맞춤이다라는 생각도 든다.

여행 며칠로는 이 곳의 진짜 모습을 전혀 볼수가 없고, 체류해서 직접 생활해보면 그 매력을 은은하게 느낄 수 있을것. 작가 역시 그렇게 얘기하고 있다.


요즘은 인스타그램에서 서로 지지않겠다는듯이 자랑하는 여행스타그램 이런것도 지겹고,

그냥 어디 콕 박혀서 와인, 맥주, 에어컨의 콤보에다가 책이나 읽다가 잠이 드는 그런 체류를 하고 싶다.

앗.

지금 집에서 그런 체류를 하고 있구나!

그래서 내가 요즘 그다지 여행 생각이 없는 것이로다.


정말이지 별 기대 안했는데 너무 재미있기도 하고, 나름의 인사이트도 있었던 책.

간만에 즐거웠다.

KakaoTalk_20220608_115137385_03.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슈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