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제안, 반둥으로
인도네시아대학교 임기 종료를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던 내게, 뜻밖에도 반둥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반둥에 있는 인도네시아교육대학교(Universitas Pendidikan Indonesia)에서 한국어교육학과를 개설하려고 하는데 도와줄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나는 흔쾌히 그리하겠다고 했다. 당시 나는 인도네시아대학교에서의 임기가 끝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으로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다른 나라 대학에 지원할 것인가 생각이 많았다. 아내는 84세의 노모를 모시고 다른 외국으로 가는 것은 무리라고 했다. 내 생각에도 그럴 것 같았다. 그런데 마침 이렇게 희소식이 온 것이다.
며칠 후 나는 인도네시아교육대학교를 찾아가서 디디 수끼야디 어문학부 학장을 만났다. 1954년에 설립된 인도네시아교육대학교는 오래전부터 학교 내 언어교육원(Balai Bahasa)에서 한국어를 가르쳐 왔는데, 이제는 어문학부에 한국어교육학과를 개설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이것이 자신의 꿈이라고도 했다.
내가 기꺼이 도와드리겠다고 하자 그는 보수 문제를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했다. 나는 일단 재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한국국제교류재단(KF), 그리고 한국국제협력단(KOICA) 등에 도움을 요청해 보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인도네시아교육대학교 한국어교육학과는 한국어 교사를 양성하는 곳이라 한국에서도 지원해 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디디 학장과 나는 재인도네시아 한국 대사와 한국국제협력단 단장을 직접 만나서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한국국제교류재단에도 이 사실을 알렸다. 다행히도 모두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객원교수 1명, 한국국제협력단에서 한국어 전공 단원 1명을 지원해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는 객원교수로 파견되고 싶으면 선발 시험에 다시 응시하여야 한다고 해서 나는 5월경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6월에 선발 시험에 합격했다는 통지서를 받았다. 그래서 부랴부랴 인도네시아교육대학교 근처에 있는 집을 구한 후 7월 초에 이사했다.
학과 개설을 둘러싼 긴장
반둥으로 이사한 후 학과 설립을 위한 준비에 매진했다. 가장 어려운 일은 한국인 강사를 구하는 일이었다. 정식 교수 채용이 아니었고 강의 수당도 현지인 수준의 월급밖에 줄 수 없다고 해서 난감했으나 수소문 끝에 한국인 3명을 현지 채용했다.
한 사람은 국어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자카르타에서 살고 있는 여성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국문학 석사학위를 가지고 인도네시아교육대학교 어학원에서 한국어 강사로 있던 남성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나의 아내였다. 아내는 한국에 있을 때 대학원에서 아동상담을 전공했으나, 인도네시아에 와서는 경희대 사이버대학에서 한국어교육 학사과정을 이수하여 2급 교사 자격증을 받았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인도네시아인 1명(학과장)과 한국인 5명이 한국어교육을 담당하게 되어 우리는 커리큘럼을 만들고 수업 계획서도 작성하였다.
그런데 8월 초가 되어도 학과 설립은 확정되지 않았다. 8월 5일 대학 총장 선거가 끝나야 설립 여부가 결정된다고 했다. 총장 후보 중 한 분은 한국어교육학과 개설을 찬성하고 있지만, 다른 한 분은 반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9월 1일부터 수업을 시작해야 하는데 학과 설립 자체가 아직 불확실하다고 하니 내심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한국어교육학과 개설에 찬성하는 분이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한국어교육학과 개설이 정식으로 확정되었다. 이에 한국어교육학과에서는 3일 동안 면접시험을 통해서 53명의 첫 학생을 맞았다. 새로운 출발의 설렘이 캠퍼스에 가득했다.
인도네시아교육대학교 <한국의 날> 기념 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