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에세이 글쓰기 모임에서 화두이자 화제였던 구의 증명을 읽었다. 잠을 좀 못자서 비몽사몽한 밤이였다. 학교 도서관에서 그 날 이야기가 나왔었던 책 몇 권을 빌렸다. 구의 증명은 그 중 한 권이였다.
생각보다 의견이 여러가지였던 책이다.
나도 이 책의 제목을 분명 들어봤지만 그렇게까지 화제인지는 전혀 몰랐다.
재미가 있든 없든 나만 이 책을 몰랐다고? 하는 호기심으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부터 짧은 챕터들로 이야기는 시작됐다.
책 후기를 보면 성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주인공들이 학창시절에는 성별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흔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나도 궁금해하면서 읽은 부분이다.
극의 흐름은 구의 증명을 위해서 구를 먹는 것으로 계속 이어진다.
여기서 정말 딴 길로 갑자기 새고 싶은데, 유튜브에서 본 콘텐츠에서 시신을 수습하러 가면 시신에 구멍이 난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반려동물이 있는 가정에서 보호자가 없을 경우에 발생하는 일이라고 한다. 반려동물은 없지만 내가 이미 세상을 떠난 보호자이고, 내 반려동물이 케어해줄 사람 없이 혼자 남겨졌을 경우를 생각해봤는데 얼마든지 나를 먹어도 괜찮다. 이런 상황을 생각하지못한 내가 미안할 뿐이다. 댓글을 보니 대부분의 보호자도 같은 생각이였다. 구와 같은 맥락이라서 떠오른 건 아니고, 육신과 영혼의 분리된 가치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이 상황이 떠올랐다.
다시 구의 증명으로 돌아와서 구의 영혼은 소설 속에서 등장해서 모든 것을 보면서도 애석하게 여겼다고 생각한다. 중학교 때 읽었었던 인간실격을 최근에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접했을 때 또 한번 육신과 인간의 사랑,영혼에 대해서 생각한 적 있다. 구가 어린 친구를 잃고 실의에 빠져 공장 누나에게 짧지않은 시간동안 함께하며 위로를 받은 것 또한 예전의 나라면 용서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었을 부분이였을 것이다. 질투와 분노로 그 관계가 끝난 것 또한 절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복합적인 내면을 가진 인물이며, 육체가 꼭 합리적으로 기능하는 건 아니고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생은 짧고 남들에게 중요한 기준이 나에게도 중요한 건 아니다. 다른 주인공도 처음에는 그런 구를 발견하고 질투와 분노에 휩싸인다. 그렇게 영혼의 단짝으로 그리워했던 사람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다음엔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했다. 역시나 내가 직감적으로 느낀대로 그 이후로 구를 다시 만난 이후에는 구와 함께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함께하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이 세상에서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돈이라는 것이 없어 쫓기는 이 곳과 저 곳 사이에서 말이다. 지금 여기에 온전히 서로가 믿고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다면, 영혼에게는 그만큼 충만한 게 없겠지. 잘못된 미디어탓인지 서로가 그토록 원하고 사랑하는 순간은 초기에 서로를 알아가며 설렐 때 뿐이라는 생각이 들고, 이후 인연을 이어가는 건 사랑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의리, 우정, 노력, 보살핌의 의지, 설렘을 무시하기위한 노력이라는 느낌이 든다. 노력 없이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잃지않기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 사람의 영혼이 내 옆에 있을 수 있도록 육신을 지켜줄 것이다. 아. 그게 사랑이구나. 전혀 느껴보지못했던 사랑의 의미를 어설프게나마 알겠다. 소설 속 주인공들보다 비교적 먹고살만한 내가 그들이 느낀 감정이 부럽다면 너무한 것일까. 주인공들의 삶이 속 아프도록 안타깝고 동시에 사랑이라는 감정에 관심조차 없이 사는 것에만 집중하며 살아온 내 삶이 불쌍해서 눈물이 났다. 이 세상 모든 눈물은 아니겠지만 내 볼에서 흘리는 눈물은 자기연민을 내포한다. 내 스스로 돈을 벌면서 이렇게 꾸역꾸역 살아가는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요즘 아주 희미하게 그 의미를 알겠다가도 미명이 꺼지기도 한다. 어제는 아 이래서 사는구나 하다가도 다음날에는 새까맣게 잊어버린다. 나를 먹어서 증명해줄 사람도, 나를 먹어서라도 육신을 지킬 반려동물도 없다. 사랑하는 꽃도 없고, 사랑하는 음식도 없다. 왜 사나?언젠가 발견할 사랑을 믿는건지, 그냥 내가 이 세상에서 나를 사랑해서, 나밖에 사랑하는 것이 없어서 내 육신을 먹이고 재우는 데 최선을 다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요즘 잘 재우지는 않는데, 따신데서는 재우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