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다가 퇴근시간 해가 어스름이 지기 시작하면 마음이 쿵쾅거리고 눈이 시려요. 집에 와서 아이를 보며 정신없이 저녁을 보낼 때는 또 잊어버려요. 그러다 아이가 잠든 밤이 되면 숨이 막혀요. 공황장애처럼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답답해요. 그렇게 지금 일주일째 잠을 못 자고 있어요.
남편은 힘들어하는 저를 이해를 못 해요.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었잖아. 연락도 안 하고 지내던 동기인데 왜 그래.라고 해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왜 이렇게 힘든지. 학교 다닐 때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고, 사실 연락도 잘 안 했던 동기예요.
유독 스케줄이 많았던 한 주였어요. 처음으로 기업 강의를 했고, 칼럼 마감이 두 건이나 있었고, 빈필 오케스트라도 다녀왔고, 한국시리즈도 보고 왔어요. 그런데 왜 그런 것 있잖아요. 몰입이 되지 않아요. 야구장에서 내내 무슨 생각을 한 줄 아세요? 이 많은 사람들은 다들 어떤 생각으로 살고 있을까. 이 모인 사람들의 삶에겐 무엇이 중요할까. 이런 생각만 하다 왔어요. 빈필 오케스트라 공연 때도 합창석에 앉았는데 앞의 1,2,3 층 사람들을 보며 그런 생각들만 했어요. 음악도 좋았고, 야구도 즐거웠지만 다녀와서는 더 허무해졌어요. 내일 죽는다면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어요.
당장 내일 죽는다고 하면 오늘 뭘 하고 싶어요.라는 질문을 싫어해요. 그 질문의 의도는 알아요. 삶의 소중한 것을 생각하고 떠올리며 오늘을 감사하라는 거죠. 그런데 저는 그렇게 시간이 촉박한 게 너무 싫어요. 오늘 어차피 할 수 있는 일도 딱히 하나만 정하기도 힘든데 내일 죽을 거면 그냥 오늘 지금 죽겠어요.라고 솔직히 생각했어요. 근데 한 번도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어본 적은 없어요. 너무 현실적이라 할까 봐 그냥 대충 둘러대곤 했어요.
이성적으로는 이렇게 말해요. 삶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오늘 하루도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하자고요. 그런데 당장 내가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 생각하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꾸 허무주의로 흘러요.
A) 친하지 않은 동기라 해도, 설사 아는 사람이 있지 않았다 해도 당연히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고였습니다. 그 사고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지는 마세요.
제 이야기를 좀 들려드려도 될까요? 제가 30대 중반쯤에 저보다 한 5년쯤 위의 선배였던 것 같아요. 빠른 나이에 승진을 하고 임원이 되셨습니다. 저와 긴밀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회사에서 내 커리어의 표본이 있다면 그분일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분이 우연히 한 건강검진에서 췌장암 진단을 받고 정말 1달 만에 돌아가셨어요. 1 달이요. 진단을 받고도 회사일이 마무리되지 않아 돌아가시기 1주일 전에 마지막 정리를 하러 오셨는데, 제가 무슨 결제인가를 받으러 그분 방에 들어갔어요. 창문을 바라보고 계신 뒷모습이었는데 그 마지막 모습이 잊히지가 않더라고요. 그 뒤로 2년간을 불면증에 시달렸어요. 매일 밤 잘 수도 없고, 저는 너무 많은 생각이 들어서 미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게임을 했어요. 그런데 다들 게임을 하면 중독이 된다고 걱정을 하는데 그때 알았잖아요. 중독도 몰입을 해야 생기는구나. 몰입을 할 수 없으니 중독이 될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다 내가 죽을 것 같아서 종이를 한 장 꺼냈어요. 가까운 시일 내로 죽음이 올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어떤 희망도, 긍정도 그려볼 수가 없더라고요. 그때 제 나이가 35쯤이었던 것 같아요. 평균 연령이 80쯤 되니 내 인생은 앞으로 45년쯤 남았네 싶더라고요. 우리 집은 장수 집안이니 운이 좋으면 90,100살까지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그러면 저한테 50년 이상 남아있는 거잖아요. 아이들이 대개 어릴 때는 기억을 못 하고 10살 이후부터 또렷하게 기억을 하니 이때까지 기억한 것은 25년 남짓인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나는 많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앞으로 그것보다 2배 정도 더 사는 기억을 가진다면 나는 더 많은 기억을 남길 수 있겠구나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 이제야 숨이 좀 쉬어지더라고요. 일단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60살 정도까지는 일을 하겠지. 그럼 60살쯤 은퇴를 하면 그래도 당장은 돈과 시간이 좀 있겠지. 하면서 그때 할 수 있는 일을 적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70살쯤 되면 기력이 좀 쇠해지겠지. 그래도 아직 움직이는 것이나 생각은 별 변화가 없을 거야. 그러면서 그때 할 수 있는 일을 적었어요. 그리고 80살쯤 되면 정신은 온전하지만 몸이 안 움직일 수도 있고, 몸은 온전하지만 정신이 말짱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 그래도 옆에 누군가 음악이나 영화를 틀어줄 수 있는 분들은 있겠지? 그때 들을 음악이나 영화를 한 번 적어보자. 그때를 위해 좀 아껴두는 거야. 나중에 볼만한 것들로. 가끔씩 이런 리스트를 채워봐도 좋겠지?
그렇게 제 인생을 늘릴 만큼 늘린 뒤 구획을 지어서 그 시기에 할 수 있는 일들을 적고 나니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삶의 끝이 언제 올진 모르겠지만 50을 기다리며, 60을 기다리며, 또 70,80을 기다리며.. 살다 보면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고부터는 잠을 좀 잘 수 있게 되었어요.
물론 소연 코치님의 케이스와 제 경우가 완전히 같지는 않아요. 지금은 온전히 애도하고 슬퍼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하지만 인생이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고 너무 짧게 가정해버리면 거기에 갇혀버릴 수 있어요. 그러면 삶을 살아가 희망도, 긍정도 찾기 어려울 수 있어요.
A) 맞아요. 그 사고 이후로 저는 오늘내일 이 안에서 사고가 정지되어 버렸어요. 사실 어쩌면 미래를 꿈꾸는 것 자체에도 죄책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어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나 자신이 웃기다고도 생각했던 것 같아요. 오늘 코치님 말씀 중 삶을 늘릴 수 있을 만큼 늘려보면 내게 얼마나 남았을까.라는 말씀의 의외로 위안이 되었어요. 설사 그만큼의 삶을 살 수는 없을지라도 그것을 늘려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허무함을 넘어서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대학 동기가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그 뒤로 거의 잠을 자지 못하고 있어요. 아까는 고척 돔구장에 있었는데 밀폐된 곳처럼 순간 숨이 쉬어지지 않더라고요. 밖에 한참을 있다가 왔어요. 이러는 제가 이상하기도 힘들기도 해서 저와 같이 코칭 공부를 하는 동기 코치님과 이야기를 나눈 내용을 적었습니다. 이 형식은 코칭은 아니에요. 어떻게 그 순간을 지나가셨는지 제가 물어서 대답을 해주신 내용입니다. 이 방법이 답은 아니겠지요. 그런데 삶을 늘릴 때까지 늘려본다는 그 말씀이 이상하게 묘하게 위안이 되었어요. 설사 그 삶을 다 살아낼 수는 없을지라도요...
있어서는 안 되는 사고가 일어났고, 우리 모두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생기지 않도록 사회안전망에 대한 점검뿐 아니라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