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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Dec 09. 2019

그녀ㄴ은 당신을 혼낼 수 없다

라떼보다 지독한 그녀ㄴ들


라떼꼰대들은 귀엽기라도 하다.

진짜는 여자 라떼들이다.

달달한 커피로 순화하기도 싫은

'그녀ㄴ'들 대처법을 알아보자.



2016년 10월 민음사에서 『82년생 김지영』이 출간되고, 2018년 초에는 미투 운동이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두 사건의 중심에는 페미니즘이 있다. 안타깝게도 검색창에 페미니즘을 치면 원색적인 단어들이 눈 앞을 가린다.


'여성의 적은 남성'이라는 프레임은 페미니즘의 어머니로 불리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것과 매우 다르다.  시몬은 (남자인) 사르트르와 오랜 연인관계를 지속하며 '남녀가 자연의 구별을 초월해서 우애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라는 뜻이다.    


오늘날 페미니즘이 설정한 목표는 다중적이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일부 남아있는 가부장제의 전통과 싸워야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을 똑같이 괴롭히는 착취, 법과 정치, 사회와 문화의 차원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각종 제약과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
- 남경태 <개념어사전> p.409

  

본토의 페미니즘 운동은 남성을 적으로 삼는데서 벗어나 인간의 보편적인 기본권을 주장하는 차원으로 전개되었다. 하지만 한국의 페미니즘은 아직 그 수준까진 못 간 것 같다. '페미니즘'에 대해 탐색하다 보면 불편한 사실을 하나 말하고 싶어 진다.


여자라서 무조건 약자는 아니라는 것


직장생활 10년을 돌아보면, 강렬하게 착취하고 휘두르고 정서적 학대를 가한 사람은 여성이었다. 임원급으로 가면 모르지만 부장 이하 사원들 사이에서는 연차, 직급이 권력이다. 권력을 확보한 여성 꼰대는 아재 꼰대보다 훨씬 더 악랄해진다. 여자는 정서적으로 괴롭히기 때문.


아재들은 책상에 초콜릿 하나 올려두면 잠시나마 잠잠한 반면, 언니 꼰대들은 빈 틈이 없다. 초콜릿을 책상에 올려두면 보란 듯이 쓰레기통에 넣어버린다. 어디로 튈지를 모르겠다. (여자도 여자의 마음을 모릅니다) 이분들 다루는 방식은 라테 꼰대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저는 당신보다 약하지 않습니다.'를 온몸으로 발산하면서도 정서적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100% 성공은 보장 못하지만,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던 팁을 공유해보려 한다.







1. 취미는 부동산입니다.

 - 나중에 저희 집에서 월세 사세요


모든 회사원은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 대기업 교육담당자에서 부동산 성공신화를 일궈낸 청울림님은 모든 회사원의 꿈이다. 부모님의 조기교육이 없다면 어린 연차에 '부동산'에 대해 잘 아는 건 어렵다. 업무도 버벅거리는 연차인데, 경제 흐름이나 재테크에 어둡기 때문에 더 무시를 당한다.


무시하는 인간들에게 '똑똑하고 야무진' 이미지를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 모두가 동경하는 '부동산'을 이용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나는 돈의 흐름에 밝고, 언젠가 크게 부자가 될 것이며, 네가 젊을 때 알지 못한 것들을 난 잘 알고 있다'를 느끼게 해 보자. (실제로 공부하면 손해 볼게 전혀 없다.)  자세한 내용은 브런치북 [노오력하면 호구됩니다] 10 글을 참고.



2. 녹음할게요.

 - 기록의 힘은 강하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일을 회피하는 방식이 남성과 여성은 좀 다른 것 같다. 남성은 뭉개버리는 반면, 여자는 꼭 매듭을 짓는다. 선배 A(남자)와 선배 B(여자)에게 일이 떨어지고 둘 다 그 일이 싫을 때, 선배 A는 뭉개버리는 반면 선배 B는 꼭 토스할 상대를 찾아낸다. 제일 약하고 힘없는 아이를 찾아서.


내가 그 약한 아이였다. 순딩 순딩한 2년 차 직원. B는 대학원에 간다며 5시에 퇴근을 했는데, 남은 업무를 메일로 토스하고 갔다. "시드니~ 내가 학교를 가야 해서~ 이것만 좀 처리해줘! 별거 아냐!" 파일을 열었다. 별거 아닌 게 아니었다. B는 '약한 아이'를 믿고 Raw Data를 남겨놓고 갔다.


평소 그런 식으로 처리해 준 일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기분이 상했지만 은근히 업무와 관련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B가 던지고 튄 건 전혀 관련이 없었다. 구어체로 써진 메일에 아주 드라이하게 답장을 썼다. " KPI 아닙니다." 다음날 난리가 났다. 귀찮은 일이 모두 깔끔하게 정리될 것으로 기대한 B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 + 분노했다. 못생긴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을 활용해서 증기를 뿜어대다가 결국 나를 휴게실로 불렀다.  


"너는 태도가 그래서 되겠니?"

"제가 왜요?"

"내가 부탁했는데, 메일이 그게 뭐니?"

"제 일이 아닌데. 그리고 언제 부탁하셨어요?"


나도 참지 않았다. 이 사람은 계속 선을 넘고 있었으니까. 결국 B는 인격모독을 선택했다.


"너, 영업에서 널 왜 안 데려가는지 알아? 네가 이렇게 글러먹어서 그래."


회사 인적 네트워크의 우위를 점하고 있음을 과시했다. 근데 나도 2년 차였다. 핫한 소문은 내 귀에도 들어왔다. 대꾸를 할까 말까 하다가 핸드폰을 켰다. 녹음 버튼을 눌렀다.


"죄송한데, 한 번만 더 말씀해주세요."

"뭐?"

"방금 한 말 한 번만 더 해주세요."


B는 멈칫했다. 휴게실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자리에 돌아가 키보드를 부실 듯 때려댔다. 여기저기 전화를 하면서 요즘 애들은 네 가지가 없다고 욕을 해댔다. 보란 듯이 이어폰을 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영업으로 발령이 났고 선배 B는 부서에 남아 내가 하던 일을 받았다.  



3. 회사가 중요한데, 전부는 아니죠.

 - 야망을 드러내지 말자. 절대로.


솔직히 말하면 승진 욕심이 있는 편이다. 욕심이 있는 이유는 하나다. 월급이 오르니까. 어차피 회사 오는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  100억이 있으면 회사에 안 올 테니. 몇몇 인간들은 이런 심리를 은근히 악용한다. 승진을 하고 싶으면 일을 더 해야 하고, 선배들과 더 잘 지내야 한다고 강요한다.


이번 달 술자리 한계치를 초월했는데, 또 제안이 들어오면 '저녁이 있는 삶'을 강조한다.

  

"전 저녁에 할 일이 있습니다."

"뭔데?"

"그건 알려드릴 수 없죠."

"회사생활해야지."

"회사 언제 망할지도 모르는데 준비해야죠."


회사에 올인하며 사는 분들은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는 걸 부정하며 산다. 물론 그런 순간을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다만 이런 발언의 포인트는 '너랑 엮이기 싫다' 거다. 슬프게도 승진을 시켜주는 건 '너'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다. 미안하게도 너랑 잘 지낼 이유는 정말 없는 거다.



4. 인간은 다 벌레잖아요.

  - 난 노예 맞다. 넌 월급 더 높은 노예고.


회사에는 업무 숙련도가 떨어진다고 무시하고 갈구는 선배들이 꼭 있다. 상식적으로 10년 차랑 1년 차가 같으면 10년 차가 문제 있는 거 아닌가? 자신들도 비슷한 연차에 비슷한 수준이었음을 잊고 현재의 자신과 현재의 신입사원을 비교하는 찌질함을 보인다. 어차피 너나 나나 월급충인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니?


기회가 되면 은근히 명언을 들려주자.

무려 이효리가 한 말이다.

"높은 하늘에서 보면 인간은 다 벌레처럼 보인다."  



5. 저분의 성장 환경이 궁금하네요.

 - 애정결핍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지 마세요          


그녀ㄴ들 중에 '자발적'인 미혼이 많은 편이다. 30대 중반인 불량감자도 그랬다. 당시엔 나도 비혼주의자여서 그들과 동질감을 느끼고 살았다. 어느 날, 20대 비혼과 3040대 비혼은 심리상태가 다르다고 느낀 사건이 하나 있었다. 당시 남친이 사준 샤X 립스틱(가방 아니고 4만원짜리 립스틱)을 자리에 올려두었는데 불량감자가 관심을 보였다.  


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누가 준거냐고 묻지마.' 기도는 이뤄지지 않았다. 불량감자는 출처를 기어코 물으며 비참한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불량감자는 메신저로 '근데 그 자료는 언제 줄꺼야? 다 했어? 내일아침에 보고 할 수 있어?' 하며 따발총을 발사했다. 알 수 있었다. '남친'이라는 단어 자체로 내가 그녀를 불편하게 했다는 걸.


'그냥 불쌍한 선배' 정도로 생각했던 불량감자의 민낯은 점점 드러났다. 후배들을 괴롭히면서 자신에게 지적을 유독 많이 하는 부장을 엄청 욕했다. 이 못난 감자는 자신과 조금이라도 트러블 있는 사람을 욕하고 다녔다. 즉, 모든 사람을 욕했다. 불량감자가 욕을 하는 여자부장도 악명 높긴 했지만 그래도 불량감자한테 욕먹을 사람은 아닌 듯했다. 부장 편을 들었다가는 피곤해질 게 뻔하니 어떻게 하면 은근히 불량감자의 심기를 건들지 생각했다.  


한창 욕을 쏟아낸 불량감자가 목을 축이고 있었다. 못생긴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 바닥을 보며 한마디 했다. "저는 저런  보면, 성장환경이 궁금해요. 사랑을  받고 자란  같아요." 그 말을 듣던 불량감자의 미세한 떨림을 포착했다. 사실 알고 있었다. 불량감자의 가정환경이 평범하지 않다는 걸. 네트워크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폭격에 시동을 걸까 하다가 멈췄다.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니까.    


 




이 글의 배경화면은 우리 동네 곱창집에서 파는 '닭알 볶음밥'이다. 계란이든 닭알이든 실체는 '닭의 자식'인 게 똑같다. 하지만 라떼꼰대나 그녀ㄴ들은 '계란'이라고 쓰지 않았다는 자체로 난리법석이다. 왜 기존대로, 원래대로 하지 않냐며. 시대에 맞춰 자신들을 변화시킬 생각이 없다. 그들의 그릇은 그냥 딱 닭알만 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 중에 여전히 회사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위로를 하자면, 연차가 쌓이면 선배 때문에 힘든 경우는 많이 사라진다. 오히려 연차가 쌓이면 정말 '일' 자체로 힘들어진다. 사람 때문에 힘들어 하지 않았으면 한다. 곧 회사 시스템에 익숙해지고 정치환경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 나만의 고유영역이 생기니까. 그녀ㄴ은 영원하지 않다. 좋은 날은 생각보다 조용히 도둑처럼 온다.


그리고 나도 조심하자. 나도 그녀ㄴ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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