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드니 Dec 04. 2019

라떼 꼰대 퇴치하기

나때는 말이야~ 하는 라떼는 마셔야 제맛


Latte is horse!

당신은 그저 미친 망아지일 뿐

망아지에겐 당근을 던집시다.  



라떼파파(Latte Papa)가 이슈였던 시기가 있었다. 여기서 라떼는 이탈리어의 본 의미에 맞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우유와 닮았다.  한손에는 유모차를 끌고 한손에는 카페라떼를 들고 사랑하는 아이를 지긋이 바라보는 따뜻한 아빠의 마음이 담겨있다.


2019년, 지금의 Latte는 더이상 부드러움을 의미하지 않는다. '라떼'라는 단어를 들으면 부드러움이 느껴지기 보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나때는 말이야~"를 접두사로 여기며 모든 일에 경험과 권위에 호소하는 인간들이 떠오른다. 이들은 따뜻한 라떼보다는 에스프레소를 각진 얼음틀에 얼려 차가운 우유에 담아낸 큐브라떼와 닮았다.


큐브라떼는 커피얼음이 우유에 살살 녹는걸 보면서 먹으라고 하지만, 이건 인스타그램용이다. 큐브라떼는 얼음을 한입에 털어넣고 와그작, 와그작 씹어먹어야 제 맛이다. 진한 에스프레소 얼음이 날카로운 내 이빨에서 와삭 하고 부셔질 때 순간은 짜릿하다. 2019년의 라떼 사용법도 비슷하다. 라떼는~(나때는~)을 외치는 꼰대들은 기다려주면 안된다. 이들을 와그작 씹어먹을 방법에 대해 한번 알아보자.  






1. 그런 말 하면 꼰대소리 듣는거 아시죠?


팩트폭행 기술이다. 요즘 라떼는 과거와 달리 젊어졌다. 예전에는 50대후반~60대초반의 나이든 사람들이 라떼취급을 받았지만, 요즘 직원들을 괴롭게 하는 라떼들은 젊다. 주변을 보면 77년생~85년생 사이 젊은 라떼들이 선배 라떼들보다 더 악날하게 후배들을 괴롭힌다.  


라떼들은 과거 선배들을 욕하며 자신은 절대 꼰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난 열린 사람이니까 자유롭게 말해봐.'해놓고 결국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려 애를 쓴다. 이유는 본인이 해봤기 때문에. 이런 선배들 중에 몇은 "시드니, 내가 꼰대되면 너가 꼭 알려줘."라고 청탁(?)을 하며 꼰대가 되기를 두려워한다.


라떼꼰대가 되긴 싫지만, 본인의 의견대로 휘두르고 싶은 선배가 보이면 웃으면서 말한다.


"어머, 요즘 그렇게 말하면 꼰대소리 들어요."

"뭐야, 결국 선배 하고싶은 대로 하는거네요?"

"선배, 꼰대 아니잖아요. 그쵸?"


그럼 라떼는 머쓱해하면서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고. 그게 더 의사결정이 쉬울거라는 거지. 내 경험상.' 이라고 다시 경험과 권위에 호소한다. 그래도 자신이 위험군임을 자각했기 때문에 당분간은 꼰대짓을 자중한다. 그들 중에 소심력이 독보적인 사람들은 메신저로 말을 걸어온다.


'시드니, 나 정말 꼰대같았어?'

어떻게 하면 잠을 못자게 할까? 한번 고민하고 타자를 거세게 내려친다.

'. 아주 많이.'  


 


2. 알아요, 알고말고요.


원천봉쇄 기술이다. 라떼들의 특징은 자신들의 '대단한 지식'을 전세계 방방곡곡 퍼트리고 싶어한다. 매슬로의 인간욕구 5단계 중에 4단계인 존경 욕구가 유독 강하다. 누군가로부터 높임을 받고 싶고, 주목과 인정을 받으려 하는 욕구이다. 존경 욕구 중에서 더 높은 욕구는 통달, 독립심인데 꼭 '남에게' 인정을 받아야한다. 이런 라떼들의 욕망은 왜곡된 욕망일 뿐이니까.             


자주 반복되는 지식자랑, 자아자랑이 들리면 가끔 용기를 내서 말한다.

"알아요, 알고말고요. 저번에도 말씀 하셨잖아요."

"아, 그거 알아요. 제 전공이잖아요."

사고회로가 정상적인 라떼라면 "아, 그래?"하며 지식의 나열을 포기한다. 지식자랑에 실패한 라떼는 회의시간 내내 나사 빠진 로봇처럼 구석에 힘없이 앉아있는다. 그는 힘이 빠져있지만 라떼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그를 힘빠지게 한만큼 충전이 된다. 더 열정적으로 토론하며, '라떼의 정보'가 없어도 우리는 충분히 지성적인 집단임을 확인시켜 준다.




3. 다행이에요, 시대가 바뀌어서.


동정연민 기술이다. 라떼들이 "나때는 말이야, 주5일 야근하고 토요일 아침에는 등산, 오후에는 부장님 자식들 학원 라이드, 일요일에는 본부장님 다니시는 교회에 음료 갖다나르고 그랬어."라며 자신들의 현란했던 과거를 읊으면, 눈썹을 찌푸리며 '어떡해요'하는 대신 환하게 웃으며 "다행이에요! 시대가 바뀌어서!"하고 천진난만하게 말해준다.


그 말 속에는 '너희 라떼들은 정말 불쌍한 세대구나. 일본으로 치면 단카이 주니어 세대 같은 경쟁이 심하고 희망이 없었던 세대. 다행히 시대가 바뀌고 문화가 성숙해지면서 그 수혜를 받는 우리와는 달리 정말 불쌍하게 살았구나!' 하면서 강하게 연민해줘야한다. 라떼가 내 말을 되새기며 우울감을 느끼면 성공.




4. 아... 네... (먼산)

 

볼테르 빙의기술이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작가 볼테르는 ‘사상의 자유’에 대해 이렇게 소신을 표현했다.


“나는 당신이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당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를 위해서는 죽도록 싸울 것이다.”


나보다 몇 년 아니 몇 십년 더 살았으니 더 나은 생각을 할수도 있겠다는 마음으로 라떼를 바라본다. 자기 말은 정언명령에 준하는 도덕법칙이라며 독일 철학자인 칸트에 빙의를 하면, 우리는 똘레랑스의 정신을 가진 프랑스 작가에 빙의하자. 너의 말에 동의는 하지 않지만, 너는 그런말을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5년 전, 도쿄법인에서 합작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의전 미션이 하나 떨어졌다. 나이 지긋한 연구소 원장님이 일본에 오셨는데 성격이 불같기로 유명하니 막내인 네가 마중을 나가라는 거였다. 나를 불속으로 밀어버린 선배들이 밉긴했지만, 사무실에만 갇혀있으니 답답하던 차였다.


지옥도에 그려진 염라대왕과 닮았다던 원장님은 생각보단 인상이 부드러웠다. 그분은 날 보더니 새까만 남자 연구원만 보다가 젊은 여직원이 마중나와서 기분이 좋다고 하셨다. 묵직한 캐리어를 들고 재빨리 택시 탑승장으로 가는 나를 붙잡더니, 날씨도 좋고 (본인의) 기분도 좋으니 대화나 하면서 가자고 지하철 탑승구로 발길을 돌리셨다.


캐리어 2개를 양손에 쥔 채, 지하철 의자에 앉았다. 하네다에서 첫번째 환승역인 시나가와까지 가는 풍경은 도쿄의 초여름을 가득 품어내고 있었다. 푸르른 풍경을 보며 그분의 인생사와 무용담을 들어드렸다. "맞네요. 그러네요."하며 열심히 맞장구를 치다보니 호텔에 금세 도착했다. 체크인을 도와드리고 스케줄 안내까지 한 다음 다시 사무실로 복귀하려는데, 그가 갑자기 나를 불러세웠다.


"그런데 말이야, '맞네요. 맞네요'하는 거 아니야. '그렇죠, 그렇습니다' 해야지!" 방금 전까지 동네 할아버지 같았던 원장님은 지옥도 염라대왕 표정을 지었다. 불호령을 들으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네, 죄송합니다."하고 꾸벅 인사를 한 뒤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반응이었다.


원장님뿐 아니라 이후에도 비슷한 라떼들을 만났다. 이들은 예상할 수 없는 부분에서 치고 들어온다. 서로 소통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벽을 세우고 위에서 나를 바라본다. 여기서 잘못 반응했다가는 지옥도로 빨려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럴 땐 빨리 자리를 피하거나 자리를 피할 수 없다면 "아..네..(먼산보기)"를 하는 게 낫다. 그렇게 생각 할수 있습니다. 전 그렇게 생각 안하지만, 이라고 속으로 되뇌이며.




5. 대답을 하지 않는다.


대답하지 않는 것도 대답이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다.
이유 없음도 이유다.
- 황경신 <생각이 나서>

                                      

가장 안전한 방식이다. 그리고  경험상 가장 효과적이다. 그냥 적극적으로 대답을 하지 않는다. 라떼들도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반응해줘야 흥이나지, 김 빠진 콜라처럼 침묵하는 상대에게는 말할 의지가 샘솟지 않는다. 무표정으로 말을 안하면 태도 논란으로 꼬투리가 잡힐  있으니, '무대답'으로 답할 때는 살짝 고개를 꺾어주는 게 좋다. 목 운동 한다는 생각으로. 잠시 주변을 맴돌던 라떼는 알아서 사라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쁜 선배들에게 책선물을 한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