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짜 저렇게 4가지 없이 말하나?
부장님이 내 흉내를 냈다
아차, 싶었다.
내가 저렇게 4가지가 없구나.
반성 중입니다.
귀여운 여자 신입사원이 우리 부서에 왔다. 나보다 8살이 어린, 피부 광채가 시야를 사로잡는 이 신입 주변으로 새까만 아재들이 몰려든다. 그동안 유일한 홍일점으로 ‘과한’ 관심과 사랑을 받아왔던 터라 나도 그녀가 반가웠다. 드디어 그들의 관심에서 벗어나는 구나!
확실히 그녀의 등장으로 평소 나에게 말거는 횟수가 줄었다. ‘당당하고 할말 다하는’ 요즘 90년생과 달리 그녀는 수더분하게 아재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줬다. 며칠 동안 지켜보니 꽤 금방 친해진 듯 보였다. 그런데, 반작용으로 나에게 화살이 돌아왔다.
“와, 시드니는 이렇게 안 해줬었는데.”
신입은 아재들의 시답잖은 요청을 들어주고 있었다. 자잘한 보고서의 백업 데이터부터 문방구 심부름까지. 메신저로 조용히 ‘00씨, 그런 거 안 해도 되요’라고 했지만 사회경험이 부족해서 그런지 거절을 못하는 듯 했다. 결국 과하다 싶으면 신입과 아재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중재를 했다. “아 쫌! 이런 것 좀 직접 하세요!”
불쌍한 아재들은 내 눈치를 보느라 신입에게 말을 못 걸었다. 신입에게 주어진 잘잘한 일들을 날려버리고, 낮은 연차에 배워야하는 매출분석과 데이터분석을 시켰다. 내가 준 과제를 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태가 되자 아재들은 포기하고 자기 일로 돌아갔다. 그 광경을 쭉 지켜보던 부장님이 등장했다.
부장님은 업계 1위 유통사의 시장조사를 신입에게 시켰다. 귀동냥으로 부장님과 신입의 대화를 듣고 있는데, 시장 인사이트를 기르는데 꽤 괜찮은 과제 같았다.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박수를 치고 있는데, 갑자기 부장님 목소리가 들렸다.
“시드니 같았으면 ‘이런 걸 왜 해야하죠?’할거야. 허허허.”
헙. 억울했다. 저 방금 속으로지만 박수쳤다니까요. 그런데 무엇보다 나를 성대모사하는 부장님의 말투가 상당히 거슬렸다. 내가 진짜 저렇게 4가지 없게 말을 한단 말인가? 옆부서 친한 과장님에게 물어봤다. 내가 정말 평소에 저렇게 말을 하는지.
옆부서 과장님은 ‘과하다곤 생각 안해. 그냥 할말 다 하는거지.’ 실무를 하면서 의견을 개진하는 건 나쁜 게 아니다. 오히려 의견을 내주는 게 부서를 위해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 가슴에 추를 하나 메달아 놓은 것처럼 묵직하게 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장님의 저 말투, 내 성대모사.
정말 맘에 안든다!
크게 많이 반성했다. 내가 스스로 듣기 싫을 정도의 말투는 아니다 싶었다. 다짐했다. 아무리 불편한 상황이 있어도 노련하고 우아하게 말하기로. 나이가 40이 넘으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하고, 얼굴은 성격과 언어에서 나오니까. 말투가 과격한 멋진(?) 선배보다는 같이 있으면 편한 동료가 되는 게 조금 더 중요하니까. 다신 부장님의 성대모사를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