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도 똑같다. 신축 아파트에서 애들 쫓아내는 건.
타인과 공간을 공유하는 마음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다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다. 내가 당한 일들이 기사가 되는 날. 며칠 전 포털을 도배한 기사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인천의 한 신축 아파트 내 놀이터에서 놀던 어린이들이 ‘주거침입’으로 경찰에 신고당했다는 것이다. 입주자 대표는 아이들에게 “기물을 파손했다”며 관리실에 가둬놓고 경찰과 부모가 올 때까지 30분 동안 내보내 주지 않았다고 한다.
기사의 댓글에는 각박해진 세상에 대한 한탄이 가득했다. 날 선 댓글들을 보며 얼마 전에 겪은 일이 하나 떠올랐다. 우리 동네에 오랜만에 신축 A아파트가 들어왔다. 몇 년간 도로에 화물차가 주정차되어있고 낮시간에 소음이 들리고 차창 밖 경관을 방해했지만 동네 환경이 보다 쾌적해질 거라는 생각에 설렌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리고 아이가 있으니 놀이터가 생기면 꼭 한번 놀러 가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올여름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고 주변 아이들 몇몇이 A아파트 놀이터에 다녀왔다해서 우리 아이가 구경할 겸 그곳에 들어갔다. A아파트는 신축인 만큼 쾌적했다. 관리실을 지나 조금 걸어가니 사슴 모양의 놀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는 내 손을 놓고 놀이터로 재빠르게 달려갔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미끄럼틀을 타고 클라이밍 하는 아이를 흐뭇하게 보고 있는데, 저기 옆에서 옥신각신 승강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입주민만 출입 가능하다니까요!”
“아니, 애가 좀 놀 수도 있지. 너무 한 거 아니에요?”
놀이터 한 구석에 보안요원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와 한 할머니가 서있었다. 남자는 할머니에게 ‘아파트 관리지침’이라는 문서를 펄럭이며 안전사고 이슈로 외부인 출입을 제한한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동안 여기 공사한다고 먼지를 얼마나 먹었는데 이것 하나 못해주냐는 입장이었다. 나 같으면 ‘아... 네...’하고 재빨리 자리를 피했을 것 같은데 할머니는 굴하지 않았다. 결국 보안요원이 제발 나가 달라 읍소를 하자 할머니는 손녀의 손을 잡고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무작정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라하랑 A아파트 놀이터 놀러 왔는데 쫓겨났어. 진짜 좀 너무한 것 같아.” 매사 내편을 들어주는 남편이지만 의외의 답을 했다. “거긴 주민들 사유재산이니까 불쾌할 수도 있지. 내가 주민이면 좀 민망하긴 해도 보완요원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 같네.”
남편 말을 듣고 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만일 외부 아이들이 놀러 와서 기물이 파손된다면 수리비를 관리비에서 충당해야 하니까. 그래도 나 어릴 때는 이 아파트 저 아파트 놀이터를 돌아다니면서 놀았던 것 같은데 20-30년 사이에 민심이 각박해진 듯했다.
집에 돌아와 여러 자료를 찾아봤다. (내가 저 일을 겪을 때는 인천 신축 아파트 사건이 일어나기 전이라 정말 자료가 없었다.) 포털을 뒤지고 찾은 결과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29조의 2에 관리 주체가 입주자 등의 이용을 방해하지 않는 한도에서 주민 공동 시설을 인근 공동주택단지 입주자 등도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다시 A아파트로 돌아가서 보안요원에게 이 사실을 알려줄까 하다가 그만뒀다. 결국 이 사건에서 가장 피해자는 A아파트나 영종도 신축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A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앞으로도 타인들을 쫓아내는 보안요원과 입주민들을 보고 자랄 거다.
그걸 보면서 자기가 소유한 것에 대해서는 타인을 배제해도 된다는 생각이 기저에 쌓일 것이고, 결국 타인과 공간을 공유하는 태도가 필히 결여될 것이다. 어린 나이에 ‘배제’를 배운 아이들이 어떻게 큰일을 할 수 있을까? 작은 세상에 갇혀 자신이 보유한 것이 전능하다고 믿어버리면 소위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갑질 하는 인간’이 탄생하지 않을까? 갑질 하는 인간의 말로는 굳이 언급하지 않고 싶다.
그나저나 우리 아파트에도 다른 아파트 아이들이 많이 놀러 온다. 우리 아파트는 세대수가 적고 애들도 적어서 대충 봐도 다른 아파트 아이들인지 파악이 가능하다. 그동안은 별생각 없이 살았는데 만약 A아파트 아이들이 보인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나도 그들처럼 쫓아낼까? 아니면 우리 아이를 생각해서 내버려둘까.
사실 이런 고민을 하는 자체가 불쾌하다. 나중에 우리 아파트 놀러 왔던 애가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나, 아니 대통령이 되면 얼마나 뿌듯할까. 아니 큰 위인이 아니더라도 동네 카페 사장이라도 돼서 나를 포함한 누군가의 도움이 될 텐데 사회 구성원을 키운다는 공동체 정신 좀 가지면 안 되나. 안 그래도 노키즈다 코로나다 갈데없는 아이들인데 놀이터 품앗이하며 좀 뛰어놀게 합시다.
ps. 글을 쓰고 나니 얼마전 조용민 구글 매니저님의 세바시 강의가 생각났다. 강연제목은 "이타적인 인재만 성공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