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아재 바라아재 2화

2화 - 너의 강냉이를 털고싶어

by 시드니

다름은 잠시 생각했다.

‘년’이란 소리를 들을만한 짓을 했나.


남다름 "음... 무슨 일이시죠?"

정체불명의여자 "마윤식 어딨어??"

남다름 "마윤식이라면... 부장님 말씀이세요?"


그때 다름의 옆자리에서 보거스처럼 씨익 웃으며 얼굴을 내미는 최의성 대리.


최대리 “(소곤소곤) 부장님 사모님이야.”

남다름 “(입모양으로) 사모님이요?”


눈을 번쩍 뜬 다름. 세상에 회사로 전화하는 사모님이 어디있단말인가.


남다름 "아.. 부장님 잠시... 회의가신 거 같아요. 핸드폰 해보시면......"

사모님 "이 시간에 무슨 회의야!! 오면 나한테 전화하라그래!!! (뚝)"


귀에서 피가나는 것 같았다. 날카롭고 높디높은 데시벨이었다.


살다살다 회사로 전화하는 사모님은 처음 보는 상황. 그때 마침 나타난 마윤식 부장.


남다름 “부장님. 사모님께 전화 왔었습니다.”


당황한 듯했지만 금세 평정을 찾은 부장.


마부장 “오마이갓~ 알았어요~”


핸드폰을 본 뒤 회사 전화기로 전화를 거는 부장.

전화를 걸자마자 바로 상대방이 전화를 받는 듯하다.


마부장 “네네. 네네. 그러셨군요~. 네네. 네네. 명심할게요~.”


네네치킨 주문 받는 줄.

키득대고 있는 부서원들 사이로 한숨 쉬는 부장.

책상 위에 서류 한 장을 들어 다름에게 건네준다.


마부장 “남대리, 부서 업무분장표 인사부 갖다줘.”



*



“메일로 보내면 될걸 꼭 이렇게 아날로그로 해야하나.”


투덜거리며 인사부로 향하는 다름.

손에 쥐고 있는 서류를 찬찬히 보는데.


남다름 “뭐야. 내 이름 왜 이렇게 많아?”


업무분장표에는 업무와 담당자 이름이 적혀있다.


대부분의 부서원들이 맡은 업무는 2개, 다름만 5개가 적혀있다.


<남다름 대리 할 일>

- 정기 소비자 조사 (인계자: 김과장)

*다음주 본부장 보고

- 브랜드 포트폴리오 (인계자: 이과장)

- 광고대행사 정기지출 (인계자: 변과장)

- 주간보고 (인계자: 심대리)

- 일반서무 (인계자: 최대리)


인수자에 모든 부서원 이름이 쓰여있다.

아재들이 하기 어렵거나 하기 싫어하는 일이 다 온 듯했다.

뾰루퉁한 표정으로 인사부 문을 두드리는 다름.

입사동기 한아름이 활짝 웃으며 다름을 반겨준다.


한아름 “언니 왔어?!”


잡티하나 없는 피부와 싱그러운 미소가 아름다운 그녀. 가히 세하그룹의 ‘설현’ 답다.


자기주장이 강한 S자 몸매는 뭇 남자사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남다름 “아름아! 오랜만이다. 연락 못해서 미안.”

한아름 “아니야 언니. 애키우는거 힘들었지?”

남다름 “장난 아니야. 남친은 잘 지내? 사시 준비하느라 바쁘지.”

한아름 “동엽씨 이번에 공기업 시험봤어.”

남다름 “앗. 사법고시 이제 안 하시는 거야?”

한아름 “응. 이제 그냥 취업한대.”


한아름의 오래된 남자친구. 7년 넘게 사법고시를 준비 중인 그의 옆에는 항상 그녀가 있었다.

남들이 발렌타이데이, 화이트데이, 크리스마스 등을 챙길 때 항상 신림동 고시촌에서 남자친구와 조촐하게 보냈던 그녀. 잘되길 바랬었는데.


남다름 “아이고, 그렇구나. 머리 좋으니까 잘 될거야!”

한아름 “응응. 믿어줘야지.”

남다름 “응. 그래. (서류 건네주며) 이거 인사과장님 좀 전달해줘. 우린 밥먹자!”


아름과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 다름.

비록 연애는 제대로 못하고 있는 그녀지만 오랜만에 봐도 젊고 예쁘다.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다름의 눈앞에 익숙한 실루엣이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한쪽 팔을 덥썩 잡는 다름.


남다름 “민우선배!!”


갑자기 다름의 눈앞에 샌디에이고 블랙비치가 펼쳐졌다. 까만 모래사장에 알알이 박혀있는 흑진주가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


매끄럽게 빛나는 까만피부와 우수에 찬 눈빛을 가진 남자가 다름을 쳐다보고 있었다.


남다름 "(급하게 손을 떼며) 아...죄송합니다. 사람을 착각해서...."

남자 "괜찮습니다."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재빨리 자리를 피하는 다름. 그 와중에 사원증을 흘끗 훔쳐보니 모회사 (주)세하그룹 사람이다.


남다름 ‘모르는 얼굴인걸 보니 경력직 사원인가?’

그때, 다름의 등 뒤에서 들리는 충격적인 한마디.


남자 “저기... 혹시..?"


다름은 손으로 입을 막은 채로 ‘헉!’하며 뒤를 돌아봤다. 복도에는 영화 <접속> OST ‘a lover's concerto’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


비행기 안.

좌석 앞 모니터에 영화 <접속>의 한 장면이 흐르고 있다. 전도연과 한석규가 처음 만나는 장면. ‘A lover's concerto’의 도입부가 울려퍼진다. 감동받은 표정으로 화면을 보고 있던 남자.


“타타타타타닥. 타타타타탁”


남자는 옆자리에서 들리는 타자기 소리에 인상을 찌푸린다.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열심히 출장 보고서를 쓰는 한 여자.


그녀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는 남자.

남자는 출국장을 나오자마자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공민우 “부장님, 공민우입니다. 귀국했습니다. 지금 회사가면 퇴근시간에 도착할테니 여기서 퇴근하겠습니다.”


전화 너머로 담당 부장의 목소리가 어렴풋 들리고 웃음지으며 대답하는 공민우.


공민우 “걱정마세요. 하이패스 예상합니다.”

부장 “이번 보고 잘되야하는데. 잘 썼지?”

공민우 “그럼요. 참, 보고서는 1장입니다.”


전화를 끊고 공항 주차장으로 가는 그.

그가 차에 올라타고, 곧 출발한다.


차 뒤 유리창에 새겨진 한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Work and Life Balance!”



*


김민규 "혹시 아다르고어다름씨?"


다름은 깜짝 놀랐다. 자신의 닉네임을 부르다니.


맘카페나 온라인상에서 활동하는 이름이다.


남다름 "아니 제 닉네임을 어떻게..."

김민규 "제가 그룹사 홍보 블로그 담당하는데, 예전에 연재하셨죠?"


다름은 그때 깨달았다. 입사 후 다름은 사내블로그 기자로 꽤 오래 활동했다. 그때도 닉네임이 ‘아다르고어다름’이었다.


김민규 "인사드릴게요. 세하그룹 홍보실 김민규입니다."

남다름 "아.. 안녕하세요. 저는 세하웰니스 소속 남다름입니다."

김민규 "연예인보는거 같아요."


얼굴이 빨개진 다름. 연예인이라니.


무슨 말을 받아서 해야하는지 안절부절 못하는 다름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사라지는 김민규.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다름.


잠시 황홀감을 느끼고 있던 그녀를 현실복귀 시켜주는 소리.


“카톡!(알림음)”


핸드폰을 보는 다름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오늘 부서 회식입니다!”



*



영업본부 풍경.


영업기획부는 매출을 관리하는 부서, 영업1부는 국내영업, 영업2부는 해외영업을 담당한다.


영업1부에는 차경우와 이세나가 있다.


해외보다 국내매출비중이 높은 (주)세하웰니스는 영업1부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 부서의 핵심인력은 차경우.

작년에 입사한 세나는 일을 잘 배우고싶지만 바로 윗선배인 차경우가 잘 알려주지 않는다.


이세나 “선배님. 이건 어떤건가요?”

차경우 “여보세요? 예~ 사장님~ (곁눈질로 세나보며) 아 그거~~~ 그거 나중에 알려줄게^^.”


선배들에겐 넉살좋은 경우지만 후배들에겐 별로 관심이 없다. 자신의 입신양명과 몸보신에 딱히 영향력이 없으므로.


파일만 던져주고 딱히 설명해주지 않는 경우. 회사란 곳이 어차피 독자생존임을 깨달아가는 세나.

자리에 있던 전화를 끊고 급하게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며 나가는 경우.


세나는 업체에서 온 택배를 열어보려는데 자리에 가위가 없다. 옆자리인 경우자리에서 가위를 찾던 세나, 우연히 그의 모니터를 보게된다.


“이번에 OEM 공장 바꿀 거에요. 입찰 평가항목 미리 보내드립니다.”



이세나 “공장이 바뀐다고? 처음듣는 소리인데.”

그 아래 단어를 보고 놀란 세나.



*


식곤증이 밀려오는 오후시간.

"뿌우우우우우웅!!"

갑자기 정적을 깨는 굉음. 모두가 느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파워방귀다!



다들 코를 막고 주위를 살피는데 혼자 모니터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한 사람. 변과장.


태연한 모습이 연기대상 감이지만 공기가 퍼지는 방향까지 막을 수는 없을터.


그때 졸고 있다가 방귀소리에 화들짝 깬 최대리가 벌떡 일어나 부장에게 달려간다.


최대리 “헙. 부장님 시키신거 아직 안됐는데요.”

최대리 말에 대답하지 않는 부장. 초 집중모드로 핸드폰을 두드리고 있다.

최대리 “부장님? 부장님?”


시선은 핸드폰에 있고 입만 움직이는 부장.


마부장 “안불렀다.”


머쓱하게 자리로 돌아가는 최대리.

옆자리 다름에게 메신저로 말을 건다.


최대리 “다름아. 부장님이 나 부르지 않았어?”

남다름 “아.. 그거 방귀소리였어요...변과장님..”

갑자기 껄껄 웃는 최대리. 배를 잡고 껄껄거리며 웃는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그때 사무실에 터지는 비명소리. 머리를 감싸쥐고 바닥에 주저 않는 마부장. 예전에 미주신경성 실신으로 회사에서 기절한 적이 있는 그였기에 모두가 달려갔다.


부서원들 “부장님 괜찮으세요?”


흐느끼는 부장.


마부장 “어떡해........내 이름으로 보냈어..........”

김과장 “뭘 보내신거에요?”

이과장 “화환 같은거 보내신거에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는 마부장.


마부장 “월급을 내이름으로 보냈어...(주)세하웰니스로 보냈어야했는데......”

‘하!’ 탄식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마부장이 무서운 사모님 몰래 비자금을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회사에서 월급을 받으면 거기서 일부분 뺀 후 ‘(주)세하웰니스’이름으로 다시 송금을 해왔던 것.


최대리가 집중을 흐트려놓는 바람에 실수로 본인의 이름으로 보내고 만 것이다.

“따르릉~ 따르르릉~~ 따르르르릉!!!!”

모두 안타까워 하고 있는 그때, 사무실에 거친 전화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



인사이트부 회식 중.

시답잖은 대화중이다.

그때 남초회사 회식 단골질문이 시작됐다.


변과장 “남대리. 남대리가 무인도에 갔어. 그런데 딱 우리밖에 없어. 그럼 누굴 선택할거야?”

망설임없이 대답하는 다름.

남다름 “부장님이요.”

변과장 “부장님은 여기 없잖아!”


부장님은 끝내 오지못했다. 내일도 못올지도.


이과장 “남대리, 그냥 편하게 말해봐. 우리 안삐쳐.”


‘그냥 뒈질게요.’라고 하고팠지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양이처럼 다름을 쳐다보는 아재들에게 차마 그럴순 없었다.


남다름 “음... 저는... 심대리님!”


흐뭇해하는 심대리와 어이없다는 표정의 남은 아재들.


김과장 “헐! 심대리? 심대리가 어디가 좋아?”

변과장 “남대리. 배신이야. 어떻게 그래?”

이과장 “이왕 이렇게 된거 순서대로 한번 말해봐.”


거의 치정극 대사다.

순서대로 말하면 왜 자신이 두 번째인지 세 번째인지 계속 물을 사람들.


남다름 “이게 무슨의미가 있습니까. 저 애엄마에요!”


잠시 잊었던 사실을 깨달은 아재들. 다시 시답잖은 수다로 넘어간다.

자신들이 즐겨보는 TV프로그램 이야기 중.


이과장 “<나는 자연인이다>봐? 정말 그렇게 사는거 부럽더라.”

최대리 “저는 요즘 낚시채널봐요. 물고기를 확확 잡는게 부럽더라구요.”

김과장 “나는 <도시어부>보는데. 거기는 물고기를 못잡으니까 재밌어.”

심대리 “다름씨는 요즘 어떤 프로그램봐?”


잠시 생각하는 다름. 최근에 무슨 프로를 봤더라. 아니 TV는 언제 봤더라.

그때 술집 TV에 흐르는 영화의 한 장면.


남다름 “아, 저거 <너의 췌장을 먹고싶어>다. 보고싶었는데.”

김과장 “제목이 <너의 췌장을 먹고싶어>야? 스릴러야?”

최대리 “췌장을 어떻게 먹어? 제목 특이하다.”

이과장 “그럼 부장님은 오늘 사모님이랑 <너의 간댕이를 먹고싶어>를 보시나?”


배를 부여잡고 깔깔거리는 아재들.

다름은 속으로만 생각했다.

‘너의 강냉이를 털고싶다.’



*



회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남다름 “그럼 들어가볼게요.”


아재들을 뒤로하고 삼성역 쪽으로 뛰어가는 다름.

역 앞에서 누군가와 마주친다.

다름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진다.


남다름 “드디어 만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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