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아재 바라아재 3화

3화 - 노예가 노예를

by 시드니

구겨진 표정을 억지로 피며 걸어가는 다름.

최대한 밝게 인사한다.


남다름 “영업본부장님, 안녕하세요!”


다름을 보며 음흉한 미소를 짓는 영업본부장.

그 옆에 손발을 비벼대고 있는 영업기획부 최부장.

다름은 ‘왜 저를 버리셨어요’라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을 굳이 담을 필요가 없었다.


영업본부장(이하 영본) "남다름! 오랜만이다!"

남다름 "네. 안녕하세요."

영본 "애기 잘커?"

남다름 "네네."

영본 "둘째 낳아야지."


다짜고짜 둘째라니. 당황한 다름.


남다름 "네?“

영본 "그래야 니 자식이 우리 연금내주지."

최부장 “아하! 본부장님 정말 센스 넘치십니다.”


표정관리가 안되는 다름.

그때 영업본부장 차량이 들어오고 기사가 차에서 내린다.


영본 "다들 조심히 들어가! 술 그만 좀 먹고! 허허!"


깍듯이 인사하는 영업기획부 최부장.

영업본부장 차량이 떠나고 따가운 시선을 느끼는 그.


남다름 “부장님. 잠깐 저랑 이야기 좀 하시죠.”




삼성역 근처 펍.

가득찬 생맥주 두잔이 올려진 테이블 사이로

40대 남자와 30대 여자가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최부장은 다름이 자회사로 발령났을 때 첫 부장이었다.

한때 죽이 잘 맞는 상사와 부하직원이었다.

지금은 서로를 원망하는 사이.


남다름 “부장님. 왜 절 저 부서에 보내신거에요?”

최부장 “너 왜 육아휴직 다 썼어? 너가고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

남다름 “부장님이 다 쓰라고 하셨잖아요. 당시 영업본부장 눈치보면서.”


다름이 휴직 전에 모시던 영업본부장은 항상 ‘워라밸’을 외쳤다. 오후 6시만 되면 사무실을 돌아다니면서 퇴근을 독려하시던 분. 하지만 올해초 일과 결혼한 영업본부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최부장의 모드도 전환되었다.


최부장 “난 널 잡으려했지. 그런데 새로온 영본이 애엄마는 자기 밑에 없었으면 한다해서. 너도 지금은 마케팅 가있는게 낫잖아. 영업은 너무 바쁘다. 조직이 너를 배려한거야.”

남다름 “배려라... 일하고 싶은 사람 사기 꺾는게 배려인가요.”

최부장 “너가 복직할지 퇴직할지 확실하지도 않는데. 그리고 영업본부장 말처럼 언제 둘째 가질줄 알아.”

남다름 “절 모르시네요. 제가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필요한 사람’이라는 말에 입꼬리를 올리며 다름에게 다가오는 최부장.


최부장 “다름아. 오빠가 너보다 사회생활을 좀 오래해서 해주는 말인데. 조직에 필요한 사람은 없어. 다 대체 가능해. 우리 회사에서 제일 일 잘한다는 공민우, 걔가 퇴사해봐. 회사가 막 무너질까? 전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돌아 갈 거야.”


다름은 잠시 잊고있던 민우선배가 생각났다.

슬펐다. 민우선배를 예로 들어서 더 슬펐다.


“다름아. 넌 노예야. 나는 너보다 돈을 좀 더 버는 노예고.”

말이 화살이 되어 다름의 가슴팍에 명중했다.



*



복직 첫날. 길고 긴 하루였다.

남다름 “노예라니.”


회사에서 집까지 오는데 한숨을 천 번 쉰 것 같다.

‘띡띡띡’ 현관 번호키를 누르는데 갑자기 튀어나온 옆집 아줌마.


옆집아줌마 “어머, 민준엄마! 회사갔다왔어?”

남다름 “아 네. 안녕하세요.”

옆집아줌마 “어머. 옷도 차려입고. 예쁘네.”


칭찬하는 분이 아닌데, 의도가 궁금해지는 상황.


옆집아줌마 “민준이 요즘 표정이 어둡더라.”

남다름 “그래요?”

옆집아줌마 “엄마가 일하니까. 아무래도.”


옆집 아줌마는 항상 고밀도 오지랖으로 사람의 마음을 후벼판다.

다름은 걱정되는 마음에 번호키를 재빨리 눌러 집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저 멀리서 튀어나오는 사랑스런 생명체. 가방과 신발을 벗어던지고 민준이를 와락 안아 올리는 다름.


남다름 “우리아들 잘 있었어요. 우쭈쭈.”

친정엄마 “민준아. 할머니 갈게.”


이미 신발장에 서있는 친정엄마.

집을 떠날 채비가 완벽하게 되어있었다.


남다름 “엄마! 벌써 갈 준비 다했어? 강서방은 아직 안왔.....”


질문의 대답은 현관문이 해줬다. ‘쾅’하며...

그렇게 친정엄마는 도망치듯 사라져버렸다.


딸 둘을 다 키워놓고 편안한 여생을 즐기려던 엄마도 날벼락맞은 상황이긴 하다. 그래도 너무 도망가듯 가버리는 엄마에게 조금 서운한 다름.


아직 집에 안들어온 남편에게 화풀이 문자를 날린다.


“지금 어디야? 왜 안들어와? 나 오늘 복직 첫날인거 몰라?”


얼마 안되어 답장이 온다.


“여보. 나 지금 3차중이야. 빨리갈게. 미안미안!”

민준이와 놀아주고 재우다가 같이 뻗어버린 다름.

다름은 오늘 무슨 꿈을 꿨을까.



*



지하철로 출근중인 다름.

영혼이 탈곡기에 들어갔다 온 것처럼 털렸다.

아침부터 어린이집에 안가겠다는 민준이의 생떼.

엄마의 복직과 함께 다니게된 첫 기관.


적응을 힘들어하는 민준이 때문에 의무출석일수 11일을 채우기가 어렵다.


민준이가 어린이집을 안가면 친정엄마를 불러야하는데, 고생하는 엄마를 생각하며 눈을 질끈감고 민준이를 어린이집 문안으로 밀어넣었다.


“으아아아아앙~ 엄마마마아아아아~”

우는 목소리가 출근하는 내내 귓가에 맴돈다.


회사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친 한사람.

어제 결재판을 날린 마케팅본부장이다.

목례를 한뒤 바들바들 떨고 있는 다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아무도 오지 않는다.

원치않게 두 사람만 엘리베이터를 탄 상황.

다름의 침 삼키는 소리가 울리는 사이, 침묵을 깨는 그의 말은 의외였다.


마본 “일하면서 애보는거 힘들지?”


저런 말을 할수 있는 사람이라니.


다름 “아...아닙니다.”

마본 “힘내. 능력있는 사원들이 안떠나야지.”

다름 “네네. 감사합니다.”

마본 “우리 딸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게. 자넨 잘할거야. 좋은하루 보내고.”


이래서 사람들이 츤데레에 빠지는 건가.

마케팅본부장님이 다르게 보이는 다름.



*


‘마케팅본부 인사이트부’

출근하면서 보이는 부서 팻말.


회사에서 가장 인사이트가 없는 사람들이 모였다는게 아이러니하다.


다름은 자리에 앉다가 이상한 풍경을 발견했다.


모니터에 엑셀을 띄워놓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심대리. 계산기를 두드리다가 갑자기 줄자로 모니터 길이를 잰다.


남다름 “심대리님. 지금... 뭐하시는거에요?”

심대리 “앗, 남대리. 부서 예산자료 작성중인데 프린트 하려고.”

남다름 “프린트를 하려는데 왜 줄자를 쓰시는거죠? 옆에 계산기는 왜...”

심대리 “가로 28.7cm가 되야 A4에 딱 맞게 나오거든. 계산기는 덧셈하려고.”


입이 떡 벌어진 다름.

줄자랑 계산기 안 쓰려고 개발된 게 엑셀인데.


남다름 “대리님. 이거 이렇게 하면 되는건데...”

심대리에게 엑셀 사용법을 알려주는 다름.

다름의 ‘유능함’에 환호를 보내는 심대리.

심대리 “우와. 남대리 천재아니야? 이런걸 어떻게 알아?”


‘바보 아니야? 왜 이걸 몰라.’라고 속으로만 외치는 다름. 갑자기 다름의 마음의 소리를 밖으로 내뱉어주는 한 사람.


김과장 “바보 아니야? 왜 이걸 몰라!”


머리를 긁적이는 심대리.

계속 이어지는 김과장의 폭언.


김과장 “회사 들어올 때 잔디깔고 들어왔니? 위에 단단한 끈있어? 그러지 않고서야 너같은 애가 여기 있다는게 언빌리버블이다. 언빌리버블!”


미국 제스처를 하며 본인 자리에 앉는 김과장.

그래, 이걸 모르는 건 좀 너무하긴 했다.

그래도 저정도로 인격모독을 해야했나싶은 다름.

어제 봤던 업무분장표가 생각난 다름은 김과장에게 다가간다.


남다름 “김과장님. 소비자 조사 담당하셨죠?”

김과장 “그랬었지? 이젠 너가 하잖아.”

남다름 “네. 다음주 본부장 보고라 그동안 진행하셨던 자료 받을수 있을까요?”


의자를 돌리며 씨익 웃는 김과장.


김과장 “아니? 그런거 없는데.”

남다름 “초안보고나 중간보고 안하셨어요?”

김과장 “하긴했지. 근데 자료는 나한테 없어.”


점점 얼굴이 달아오르는 다름.


남다름 “담당자가 자료가 없다니.... 정말 없으세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다름에게 귓속말을 하려는 김과장.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아 귀를 내어주는 다름.


김과장 “(속닥) 응. 없어. 크하하하”


너털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떠나는 김과장.

자신의 유머감각에 큰 감동을 받은 듯하다.

주먹을 꽉 쥔 다름.

그때 사무실에 울리는 아나운서 목소리.


“세하그룹 임직원여러분, 연말 종무식을 시행합니다. 전원 강당 집합 바랍니다.”



*



세하그룹 종무식.


해마다 근무 마지막날 세하그룹의 전체 직원들이 모여 한해를 돌아보는 시간.


종무식의 마지막 대사는 ‘세하그룹의 미래는 0000입니다!’다.


0000로 선택된 자회사는 다음해 내내 그룹사 전체에서 쪼임을 당한다.


세하그룹 강당 맨 구석에 앉아있는 다름과 아재들.


그룹사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자회사라 앉는 자리도 구석이다.


(주)세하맥주 쪽에 남편이 있나 찾아보는 다름.


어제 결국 얼굴을 보지 못했던 남편. 남편은 전략실 소속이라 일찍 출근해야해서 아침에도 보지 못했다.


한아름 “언니. 안녕!”

남다름 “아름아. 안녕!”


끝자리에 앉아있는 다름에게 인사하며 자신의 부서가 있는 곳으로 가는 아름.

아름이 있는 인사부는 여초부서다. 서로 친해보이면서도 약간 불편해보이는 그곳.


변과장 “캬, 한아름씨. 정말 예뻐. 그치?”

최대리 “우리회사 대표미녀잖아요.”

변과장 “다름씨 동기야? 한번 자리 마련해줘. 밥사줄게.”


‘미쳤니’라고 속으로 외치며 알 수 없는 미소만 짓는 다름.


이과장 “왜, 한때는 (주)세하웰니스의 ‘아름다름’이라고 불렀었어.”

변과장 “무슨소리야. 너무 다르잖아. 상극이라 그렇게 부른건가?”


옆에 당사자가 있건 말건 떠드는 아재들.

예전 같았으면 ‘과장님 거울이나 보세요.’라고 사이다 발언을 내뱉었을 다름이지만 지금은 그럴 힘조차 없다.


김과장 “아름씨? 나는 세나가 좋더라.”

변과장 “세나? 이세나? 세나는 너무 차경우만 쫓아다녀. 의심스러워.”

이과장 “근데 이거 무슨냄새야? 변과장 또 방귀뀐거야?!!”


코를 막고 술렁이는 아재들.

다름의 시선은 한곳에 고정됐다.

눈앞에 보이는 차경우와 이세나. 뭐가 재밌는지 깔깔거리고 있다.

젊은 직원들이 모여있는 모습만 봐도 부러운 다름.


어떤 선배와의 추억이 생각나던 그 찰나,


공민우 “안녕하세요! 옆에 좀 앉을게요.”


다름 옆에 앉는 공민우.


복직 전에 같이 일할때는 민우선배도 나이가 많다 생각했는데 이 부서에 있다보니 민우선배는 아이돌이었다.

남다름 “선배! 어디 갔다왔어요. 저 복직했어요.”

공민우 “발령봤어. 나 출장갔다왔지. 애는 잘커?”

남다름 “잘커요. 선배님네 쌍둥이들도 잘커요?”

공민우 “잘크지. 너무 활발해서 감당이 안된다. 사진 볼래?”


민우가 핸드폰을 꺼내려는데, 서서히 조명이 꺼지는 강당.

무대위에 핀 조명이 켜지고 ‘또각또각’ 발소리가 들린다. 조명 안에 훤칠한 남자가 등장한다.


김윤재 “여러분 한해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잠시 올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주)세하그룹의 김윤재 이사다. 창립주 김세하 회장의 아들.


그가 스크린을 쳐다보자 PPT가 띄워지고, 그룹사 전체 매출이 그래프로 나타난다.


“창립 50년을 맞은 세하그룹은 2017년 맥주, 고가양주, 제과, 제약, 화장품 사업 등에서 사상 최대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다만 건강식품을 취급하는 세하웰니스만 전년대비 보합성장을 보였습니다.”


고개를 숙인 세하웰니스 사람들.

다름과 아재들도 덩달아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세하웰니스의 미래는 밝습니다. 시장성숙화로 인해 세하그룹의 메인사업인 주류시장규모가 감소하고 있고 건강식품 시장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불길한 예감은 왜 틀린적이 없나.



“앞으로 세하그룹의 미래는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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