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아재 바라아재 6화

6화 - 바람이 분다

by 시드니


"어떡하지?"

김과장의 피케셔츠에 축축한 음영이 생긴다.


그의 갈굼으로 '뛰어내리고싶다'는 사람은 많았지만, 실제로 실행한 사람은 없었다.


변과장 "일단, 우리 흩어져서 찾아보자."


회의에 간 마부장과 출장 간 최대리를 뺀 나머지 사람들이 그를 찾으러 흩어졌다.


김과장은 맥주, 변과장은 식품, 이과장은 제약, 다름은 모회사 건물을 뒤졌다.


카톡으로 서로 상황을 공유하는 네사람. 하지만 아무리 뒤져도 심대리는 보이지 않는다.


'설마, 벌써 뛰어든건 아니겠지.'

'재수없는 소리마!'

'사람이 죽게생겼는데 재수없다니요.'

'싸우지마. 빨리 찾자.'


카톡에서 오고가는 날선 대화.


불길한 기운이 든다.

그때 세하맥주 로비에서 동료들과 수다를 떨고 있는 남편을 발견한 다름.


남편이 손을 들어 인사하는데 무언가가 생각난듯 뒤돌아 뛰어간다.


남다름 "아내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을까?"


사무실에 돌아와 비상연락망을 찾는 다름.

허겁지겁 서류를 뒤지고 있는 사이, 최대리가 복귀했다.


최대리 "남대리 뭐해? 뭘 찾는거야?"

남다름 "아.. 대리님. 큰일났어요. 심대리님이 없어졌는데 이상한 문자를 보내셔가지고...."

최대리 "심대리? 지하주차장에 있던데?"

남다름 "네???????"


눈썹 휘날리며 주차장으로 달려간 다름.

자신의 차에서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는 심대리가 보인다.

내려앉은 눈매와 동그란 얼굴이 부처님을 연상시킨다.



*



"똑똑똑"

차 유리문을 두드린다.

부처님은 미동이 없다.

다시 한번 두드린다.


똑.똑.또옥.쾅...쾅...

미간을 찌푸리며 일어나는 심대리.

차창너머 다름과와 눈이 마주치고 인자하게 웃는다.


심대리 "어, 다름씨. 왠일이야."

남다름 "왠일이냐뇨. 지금 난리났어요. 김과장한테 문자보냈죠?"

심대리 "응... 너무 짜증나서 보내버렸어."

남다름 "하... 왜그랬어요. 지금 난리났어요. 지금 사무실 올라가면 김과장님이 대리님 죽일지도 몰라요."

심대리 "다름아. 나 어떡하지? ㅠㅠㅠ"


어떡하긴 뭘 어떡해.

심대리의 창의적인 실수는 너무하긴 했지만

김과장의 인신공격도 용인해주긴 어렵다.


남다름 "일단 올라가요. 올라가서 이야기해요."


차에서 내린 심대리. 힘없이 터벅터벅 걷는다.

복날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강아지의 모습.

사무실로 올라가면 또 박살날게 뻔한 상황.


남다름 "우리 1층에서 커피나 한잔 하고 가요."

심대리 "그래.."


1층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의자부터 찾는 두사람.

커피 주문할 힘도 없다.

그때, 이들을 구원해줄 구세주가 나타났다.


남다름 "민우선배!! 공과장님!! 여기여기!!"


김과장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유일한 직원.

윗사람들의 총애를 받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건들지 못한다.


공민우 "안녕~ 여기서 뭐해?"

남다름 "선배 앉아봐요. 지금 (자초지종)... 이렇게 됐어요."

공민우 "아 진짜? 심대리님 왜그랬어요 ㅋㅋㅋ 나 왜 웃음나냐 ㅋㅋㅋ"

남다름 "웃을 때가 아니에요. 지금 심대리님 사무실가면 죽어요. 선배가 도와줘요."

공민우 "내가 뭘 해줄수 있나. 가서 혼내지 마라그래? 갈구지 말라고? 그 사람은 안바뀐다."


그래도 민우선배라면 한마디 해줄수 있는거니까.

남다름 "그래도 어떡해요. 오늘 피보게생겼구만."

심대리 "...... 아냐. 둘이 너무 고민하지마. 내가 정면돌파할게... 설마 죽이겠어..."


다름과 민우가 투닥거리는걸 보자 미안해진 심대리. 결심한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세명 모두 엘레베이터 쪽으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공민우가 반대방향으로 뛰어가더니 무언가를 가져온다.


공민우 "야!!! 이거다. 형님 여기 타세요."

남다름 "네? 여기에??"

공민우 "내가 김과장 잘 알잖아. 그 사람은 왠만한 충격요법으로 안돼."

심대리 "아니 이렇게까지...."

공민우 "형님. 빨리 제가 하자는대로 하세요."



*



"오기만해봐. 가루로 만들테다."

사무실 한켠에서 주먹을 쥐고있는 김과장.


심대리가 주차장에서 자고있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사무실 문이 활짝 열리고 공민우와 심대리가 함께 등장했다.


사무실 안의 모든 사람들이 그 둘을 쳐다봤다.

복도에 서있던 세나가 묻는다.

이세나 "왜 휠체어에 타계세요? 어디아파요?"

심대리 " (애써 미소) 하하..."

공민우가 끄는 휠체어에 심대리가 힘없이 앉아있다.

마치 검찰에 출두하는 기업총수처럼.

마부장이 뛰쳐나온다.

마부장 "무슨일이야?"

공민우 "오늘 조퇴하셔야 할것 같아요."


아무말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는 김과장.

주변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고 있다.

이과장 "많이 다쳤어? 낙상사고야?"

최대리 "어딜 다쳤어요?"


모든 사람들이 얼굴에 물음표를 그린다.

그때, 공민우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가슴에 손을 얹는다.

그리고 김과장쪽으로 몸을 돌렸다.

한숨을 한 번 쉬고 그를 쳐다보는 민우.

공민우 "마음이. 마음이 아프답니다."



*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간 다름.

진동벨을 들고 자리에 앉아있다.


"지이이이잉"

진동벨이 울리고 커피를 받으러 가는 다름.

쟁반을 보니 커피가 두 잔이다.


남다름 "어라? 한잔만 시켰는데요."


"한잔은 제겁니다."


다름의 등 뒤에서 미소 짓고 있는 김민규.

사람의 눈이 이토록 반짝일수 있구나,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회사 1층 야외카페에 앉아있는 다름과 민규.


'젊은 총각이랑 이렇게 마주봐도 되는건가.'

괜히 어색한 다름과 편안히 날씨를 느끼는 민규.


김민규 "주문하실 때 뒤에 있다가 제 커피 주문하면서 어다름씨꺼랑 같이 달라고 했어요."

남다름 "아...네...(어다름이라니)"

김민규 "사내블로그에 연재하신 보고서 잘쓰는법, 저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남다름 "아... 도움이 되서 다행이에요."


커피를 쪽쪽 빨아먹는 민규와 다름.

어색하게 있는 다름과 자연스러운 민규.

잠시 다름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여는 그.


김민규 "그런데.. 질문이 있는데요. 제가 자료를 좀 찾아보다가 동영상을 하나봐서..."

남다름 "어떤 동영상이요?"

김민규 "예전에 세하그룹 뇌물사건 때 증언하던...."


다름의 머리에 한 장면이 스쳐지나갔다.

법정 증인석에 서있는 다름.

떨리는 목소리로 크게 외친다.


“저희 회장님은 그럴분이 아닙니다.”




*



4년전, 다름이 모회사 미래전략실에 있을때.

회의시간만 되면 선배들은 다름에게 간식심부름을 시켰다.

법인카드를 자주쓰면 눈치가 보이니 회비를 모아 사비로 간식을 사먹었다.


남다름 "많이도 드시네들."

간식을 한가득 안고 한손에 잔돈까지 들고 있는 다름.

손이 부족하다보니 잔돈 몇개를 바닥에 흘리는데.

그때 바닥에 떨어진 천원 몇장을 주워올리는 손.

"따르르릉"


남다름 "네. 미래전략실 남다름입니다. 네? 회장실이요?"

부들부들 떨며 회장실로 들어가는 다름.

문을 열고 들어가니 강렬한 포스의 김세하 회장이 앉아있다.


김세하 "너한테 큰일은 못맡기겠다."

남다름 "네?"

김세하 "칠칠맞지 못하게 맨날 돈만 흘리고."

바짝 얼어버린 다름.

돈을 흘리는 것보다 회장이 자신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갑자기 천원 현금뭉치를 건네주는 회장.

대충봐도 20장 이상.


김세하 "흘리지마. 또 흘리면 가만 안둔다."

남다름 "네...."

김세하 "나가봐."


인사를 꾸벅하고 힘없이 나가는 다름.


회장님이 직접 바닥에 떨어뜨린 돈을 모으고 있었다는게 경악스럽다.


그때, 회장실에 울리는 묵직한 목소리.

"법인카드 써라."


회장의 소리에 다름이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신문을 보고있는 회장이 나지막히 말했다.


김세하 "법인카드 써라. 니들 돈 쓰지말고. "



*



"속보입니다. 국내 시가총액 1위기업인 세하그룹이 하청업체 10여곳에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검찰은 그룹총수인 김세하 회장이 자회사의 하청업체를 압박하여 직원의 대포통장을 통해 뇌물을 수수한 것으로 보고 수사중입니다.


세하그룹은 하청업체에게서 받은 뇌물을 정치권에도 넘긴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회사가 뒤집어 졌다.

세기의 게이트에 휘말리게 되었다.


언론은 세하그룹 뇌물사건을 대서특필했고 안심과 신뢰의 브랜드였던 세하는 불신의 아이콘이 되어갔다.


회장의 무죄입증과 회사의 명예회복을를 위해 미래전략실 인원들이 투입됐다.


하지만 회장의 결백함을 믿던 직원들도 시간이 흐르며 점점 속출하는 증거에 그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고 있었다.


공판이 시작되고, 매일매일 날밤새며 자료를 정리하는 직원들.


새벽 1시가 다 되가는 시간, 미래전략실장이 들어온다.


미래전략실장 "혹시.... 직원들 중에 증인으로 나서줄 사람 있어?"


고개를 숙이는 미래전략실 직원들. 회장이 구치소에 수감되면서 권력이 다른 사람으로 이동한 걸 느끼고 있다.


여기서 줄을 잘못탔다가는 낙동강 오리알이 될수 있는 상황. 그때 과감히 손을 드는 한 사람.


남다름 "제가.. 제가 하겠습니다."



*



어딘가를 응시하며 멍하니 있는 다름.


김민규 "어다름씨? 무슨생각 하시는거에요?"

남다름 "아. 아니에요. 잠시..."

김민규 "그때 어떻게 용기를 내신거에요? 쉽지 않았을텐데."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다름이 중얼거린다.


남다름 "회장님이 그럴 사람이 아니거든요."

김민규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남다름 "제가 사람보는 눈이 좀 있어요."


사람의 행동을 보면 대체적으로 일관성이 있다.

그 사람과의 경험을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직원 돈 아까운줄 아는 사람이 하청업체를 쪼아서 뇌물을 받는다?

회장의 평소행실을 생각하면 그럴수 없다.


세나가 경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것도 이런 이유.


결국 김세하 회장은 증거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이 났고 하청업체 중 두 곳은 뇌물공여죄로 대표가 징역선고를 받았다.


남은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고 있는 다름.

잔잔한 바람에 머리카락이 살랑거리고 있다.

그때, 자신이 마시던 커피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진지한 표정으로 다름을 보는 민규.

김민규 "저는 어때요?"


잔잔하게 불던 바람이 갑자기 강하게 분다.


다름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고 휘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민규의 반짝이는 눈이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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