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아재 바라아재 7화

7화 - 내로남불

by 시드니

"저는 어떤 거 같아요?"


다름에게 가까이 다가오며 한번 더 묻는 민규.

그때, 다름의 시야에 두 사람이 보인다.

로비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경우와 세나.


다름은 혼미해진 정신에 이성을 소환시킨다.

‘나는 쟤네들과 달라.’


남다름 "어머, 저 애기엄마에요.”

잘했다. 남다름. 넌 그런 사람이 아니야.

아니야. 그래도 너무 단칼에 거절한 거 아냐.

천사와 악마가 왔다갔다하는 다름의 표정.


“푸하하하하.”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는 민규.


김민규 “아니, 사람으로써 어떠나구요.”

남다름 “아......”


복면을 뒤집어쓰고 도망가고 싶은 상황.


여기서 더 창피해하면 선배로서 권위가 떨어질 것 같아 바로 맞받아친다.


남다름 “음음. 글쎄요. 아직 신입이라 잘 모르겠지만 똘망똘망해 보인다고나 할까. 잘 배우면 잘 할거에요.”

김민규 “잘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다름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좋은 선배를 만나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죠.”

김민규 “누가 좋은 선배인지 어떻게 알죠?”

남다름 “지내다보면 알아요.”


사실 좋은 선배인지 아닌지는 바로 알 수 있다.

이성이 서로 반하는데 3초 걸린다는 이론처럼,

회사도 자신과 맞는 동료인지는 금방알수있다.


김민규 “어다름씨가 되주시면 안되나요?”


다름은 또 설렐 뻔했다.

괜히 헛기침을 하며 얼음을 씹어먹는 다름.



*



야외카페에서 실내로 들어오는 민규와 다름.

안내데스크 직원들이 꾸뻑 인사한다.

밝게 인사하는 다름과 인사를 받지 않는 민규.


남다름 “에이. 민규씨. 인사를 잘 받아줘야죠.”

김민규 “너무 깍듯이 하시니 어색해서요.”

남다름 “그래도 저분들이 저렇게 인사하는데. 회사에서는 인사가 90%에요.”

김민규 “벌써 알려주시는건가요. 그럼 저 가보겠습니다. 자리를 오래 비워서요.”

남다름 “그래요. 다음엔 선배 놀리지 말고.”

김민규 “하핫. 네. 연락드릴게요.”


‘연락을 주신다니. 언제든지 주세요.’

라는 표정으로 민규를 바라보는 다름.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소리가 들린 쪽을 보니 낯익은 얼굴이다.

지난번에 만난 인테그럴 구대표.

로비에서 다른 사람과 반갑게 인사 중이다.


다름은 인테그럴에 대해 설명해주는 민우선배를 떠올렸다.


공민우 “‘노리밋’ 알지? 세하그룹 뇌물사건 때 회장님한테 뇌물 준 혐의받다가 오히려 다른회사에 뇌물 바친게 걸려서 구속된 구본길대표... ”

남다름 “모를 리가 없죠. 제가.”


사건조사를 했었던 다름이 모를 리가 없다.


공민우 “응... 그 후에 회사가 공중분해 되는 듯했는데 동생 구본구가 이름만 바꿔서 다시 회사를 차렸어. 인테그럴이라는 이름으로. 광고대행사에서 리서치업체로 바꾼거지.”


노리밋에서 인테그럴이라. 수학과라도 나왔나.

어느쪽이든 썩 기분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그때, 다름과 구본구 대표가 눈이 마주쳤다.


당황한 다름은 가볍게 목례를 한다.

그런데 다름을 본체만체하는 구대표.

남다름 “뭐야. 기분 나쁘게.”



*



“또각또각”

해가 진 저녁 서울의 한 주택가.

힐을 신은 모습이 버거워보이는 한 여자.


“오늘 괜히 힐신었네. 내일은 플랫신어야지.”


한손엔 핸드백, 다른손엔 식재료가 담긴 종량제 봉투를 들고 있는 다름이 중얼거린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사이, 멀리서 달려오는 아기의 발걸음소리가 들린다.


“하이루~”

밝게 인사하며 들어가는 다름.

엄마를 보며 뛰어나오는 토끼같은 아기.

그 뒤에 도망채비를 마친 친정엄마.


남다름 “엄마! 오늘은 도망가지말고 쫌.”

엄마 “엄마 바뻐. 양씨랑 사우나 갈거야.”

남다름 “엄마. 이거 받고가.”

엄마 “이게 뭐야?”


봉투를 건네주는 다름.


남다름 “힘들지? 모피 하나 사입어.”


신발장으로 전속력으로 뛰어가다 멈춘 엄마.

봉투를 보고 웃는지 우는지 표정관리 안 된다.


엄마 “(받으며) 야. 너가 무슨 돈이 있다고.”

남다름 “요즘 밝은모피가 유행인가봐. 엄마 까만색만 있으니까 하나 더 사입어.”

엄마 “아이고. 고맙다야. 간만에 양씨한테 자랑할 거리 생겼네.”

남다름 “양씨아줌마한테 자랑하지 말고. 괜히 사이 안 좋아지니까.”

엄마 “그 여편네 맨날 딸래미 자랑해서 나도 좀 할라고 그래!”

남다름 “아.. 그 여자애? 걔가 뭐 자랑할게 있어.”

엄마 “사위가 의사거든. 그것도 서울대병원 의사래. 집도 잘사나봐. 맨날 딸이랑 마사지샵가고 브런치 먹고 그런다고. 자랑자랑을...”


친정엄마와 절친 양씨 아주머니.


어릴 적에는 남씨자매가 ‘엄친딸’로 양씨네 딸을 고통스럽게 했다면 지금은 반대로 남씨자매들이 고통받고 있다.


남다름 “전업주부야? 부럽다...”


갑자가 날아온 등짝 스매싱.


남다름 “아악! 왜 때려!”

엄마 “전업주부 부럽다니. 너 엄마가 이름 바꿔준 거 잊었어?”


남다름과 남보다의 원래 이름은 ‘남주자’와 ‘남주세’였다.


아들을 간절히 바라던 할아버지가 딸이 태어나는걸 보고 어차피 딸은 출가하면 외인이니 남에게 줘버리자는 생각으로 이름을 지었다.


보다가 7살, 다름이 5살까지만 해도 그 이름으로 살았다.


수동적인 이름 영향인지 보다와 다름은 매일 맞고 들어왔다. 친정엄마는 이름탓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할아버지 몰래 개명절차에 돌입한다.


그녀가 동사무소에 제출한 이름 두 개.

남주자는 남보다, 남주세는 남다름.

항상 ‘남보다’ 뛰어나고 ‘남다른’ 사람이 되라고.


정말 이름대로 인생이 흐르는 걸까. 개명이후 보다와 다름은 누구보다 주도적인 인간으로 성장했다.

한의사가 된 보다와 대기업에 다니는 다름.

친정엄마의 인생에서 가장 큰 성과.


엄마 “또 전업주부 이야기해봐. 콱그냥.”

다름 “알았어... 엄마가 민준이 잘 봐주니까. 이게 가능한거지.”

엄마 “휴... 하나밖에 없는 손주인데 잘봐야지.”


핑크퐁을 보는 민준이 머리를 쓰다듬는 엄마.

민준이의 최애는 할머니상어다.


“너 둘째 갖을 생각은 절대마라.”

민준이 머리를 쓰다듬다 마는 친정엄마.


다름 “왜? 친구엄마들은 가지라고 난리더만.”

엄마 “고생하잖아. 너도 나도.”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마을이 사라진 서울땅에선 엄마와 할머니가 고생이다.

아들 민준을 재우고 TV를 켜는 다름.


<윤리적인 그녀>가 방송 중이다.

이번에는 총각과 유부녀가 썸을 타고 있다.


갑자기 활짝 웃는 민규 얼굴이 떠오른다.

‘헐’하며 TV를 꺼버리는 다름.



*



“부장님. 검토해주세요.”

본부장에게 보고할 자료를 내미는 다름.

복직 후 첫 보고라 꽤 떨린다.


남다름 “소비자 조사 결과랑 마케팅 방향성에 대해 썼는데. 방향성 부분을 좀 잘 봐주세요.”

인정받는 보고서와 그렇지 않는 보고서의 차이는 딱 하나다.


작성자의 인사이트, 즉 의견이 들어있는지 여부.


업체에서 조사를 했더라도 그 조사를 기반으로한 담당자의 의견이 있어야한다.


최대리 “부장님. 제 보고서도 좀 검토해주십시오.”

마부장 “응응. 알았어. 일단 다름이꺼 먼저.”



*



여자화장실.

다름이 들어오자 거울을 보고 있는 한아름이 급하게 뭔가를 숨긴다.


남다름 “아름. 안녕?”

한아름 “어. 언니 안녕.”


아름의 얼굴을 얼핏보니 상처가 있다.

멍같기도 하고 피딱지같기도 하고.


남다름 “얼굴, 다쳤어?”

한아름 “아...아니야. 드라이기하다 좀 데였어.”

남다름 “아 응. 별일없지?”

한아름 “응..응...”


잠시 망설이다 말을 거는 아름.


한아름 “언니...”

남다름 “응? 왜?”

한아름 “아... 혹시... 콘서트 같이 갈래?”

남다름 “무슨 콘서트?”

한아름 “방탄소년단 알지? 나 아미... 아니 팬클럽인데 동엽씨가 같이 가기 어렵대서.”

남다름 “우주소년단은 아는데 방탄은 뭐니.”


두 살차이인데 세대차이 나는 아름과 다름.

이게 미혼과 기혼의 차이인가 싶은 다름.

아름은 웃으며 동영상을 보여준다.

방탄소년단의 현란한 춤사위와 뮤직비디오.


남다름 “오. 얘네들 뭐야? 엄청난데?”

한아름 “응응. 대박이지? 요즘 인기짱이야.”

남다름 “우오오오. 나 완전 입덕 할거같아.”

한아름 “푸흡. 나도 처음보고 완전 입덕했잖아.”


그때 또 민규의 웃는 얼굴이 떠오른 다름.

잡생각을 떨칠 계기가 필요하다.


남다름 “나 갈래! 언제 몇 시야?”



*



사무실로 돌아온 다름.

여전한 부서 풍경이다.

심대리는 병가를 냈다.

무슨 병인지는 모르지만 2주간 병가.


김과장은 전화로 누군가를 갈구고 있고

변과장은 엉덩이를 긁고 있다.

이과장은 손톱을 깎고 있고

최대리는 휘파람을 불고 있다.

고개를 숙이고 전화를 받고 있는 마부장.


마부장 “네네... 네네... 명심할게요~”


사모님이다. 불쌍한 아저씨.

저 불쌍한 아저씨에게 볼일이 있다.


남다름 “부장님. 보고서 검토 하셨나요?”

마부장 “아.. 보고서? 그럼그럼. 자자.”


보고서를 건네받은 다름.

자리에 앉아 훑어보는데 첨삭이 된 흔적이 없다.


남다름 ‘뭐야. 전혀 안본거야?’


다름의 눈에 들어온 빨간글씨.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보고서 ‘마케팅 방향성’ 페이지에

‘ㅡ’표시가 ‘→’로만 바뀌어있다.

방향성을 검토해 달라하니 방향을 그려놓은 마부장.



*



“이게 보고서야!”


보고서를 허공으로 날려버리는 마케팅본부장.

김과장은 공민우의 1장 보고서를 따라했지만,

같은 1장인데 본부장 반응이 너무 다르다.


그도 그럴것이 공민우의 보고서는 핵심만 적어놓고 부연설명을 하지만, 김과장의 보고서는 자극적인 단어만 적어놓고 핵심에 벗어난 설명만 한다.


마본 “이런 건 보고서도 아니야. 버려!”

김과장 “.......”


분위기가 살벌하다.


마본 “부장은 대체 뭐하는거야? 직원 보고서 안 봐? 자리값 안해?”


부장이 얼음놀이 하고 있는 줄 알았다.

굳은채로 아무말도 못하고 있는 마부장.


마본 “쯧쯧. 다음 보고.”


얼음은 땡을 해줘야한다.


슬쩍 부장님 팔을 찌르는 다름.


남다름 “저어. 부장님...”

마부장 “아.. 남대리가 보고해.”


다름은 당황했다.


마케팅쪽은 다름에게 생소한 영역이라 부장이 보고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보고자가 바뀐 것. 다름은 숨을 고르고 차분히 보고를 해나간다.


남다름 “네. 보고 시작하겠습니다. 세하웰니스 제품군에 대한 소비자 인식조사입니다.”


조사된 내용을 읽고 있는 다름. 그때 갑자기 다름의 말을 끊는 본부장.


마본 “이거 맨날 듣는 이야기잖아!”


이럴 줄 알았다.

인테그럴이 조사한 수준은 이런 수준이었다.


마본 “이딴 보고받으라고 내 시간 뺏는거야?”


열을 내는 본부장. 갑자기 다름에게 쏘아붙인다.


마본 “남대리. 실망이야. 업체가 쓴거 그대로 가져오는거야?”


‘실망’. 다름이 가장 듣고 싶지 않는 말이다.

조용히 있던 다름의 승부욕을 자극한 저 단어.


남다름 “타깃이 너무 한정적입니다.”


다름의 강한어조에 놀란 아재들.


세하웰니스 대표제품 <가득찬 세상>은 남성타깃 제품이다. 그룹사인 세하맥주의 맥주브랜드가 인기가 많다보니 함께 진열해서 판다.


맥주를 많이 사는 사람은 3040 남성이고 이들 중 탈모에 신경쓰는 사람이 많다보니 맥주와 <가득찬세상>을 함께 구매한다.


즉, 지금까지 세하웰니스가 생존해온 방식은 ‘세하’라는 브랜드와 맥주의 마트채널에 의존해왔던 거다.


남다름 “리서치를 좀 해보니 맥주효모에는 비오틴이란 성분이 들어있어 피부미용에 좋다고 합니다. 이런 효능을 활용해서 여성타깃으로 확장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마본 “여성제품? 우리회사 이미지랑 좀 안맞지 않나?”


맥주와 제약사업이 주류인 세하그룹 이미지와 좀 다르긴 하다. 남성성이 강한 회사다. 대외이미지도 내부상황도.


남다름 “그래도 매출을 올리려면 여성고객을 잡아야합니다.”

마본 “왜지?”


보고가 성공하려면 상대방의 감성을 잡아야한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단어에 가장 공감할지.


남다름 “본부장님도 사모님이나 따님들이 요구하면 다 사주시잖아요.”



*


‘휴...’

보고 한번 했을 뿐인데 1년은 더 늙은 것 같다.


머리도 식히고 민준이 잘 노는지 CCTV도 확인할 겸 복도에 나온 다름.


“어떻게 사람이 그래요?”


복도 저편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들린다.

코너를 돌아 누가 있는지 빼꼼히 쳐다보는 다름.

엘리베이터 앞에서 세나와 경우가 싸우고 있다.


이세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차경우 “오해야. 오해... 내말 좀 들어봐.”

이세나 “정말...”


사랑싸움인가.

숨어서 조심히 듣고 있는 다름.

다름의 뒤에 다가오는 한사람.


공민우 “뭐야. 뭐봐?”

남다름 “악. 쉿. 선배님.”

공민우 “쟤네 왜 저래?”


세나와 경우에게 다가가려는 민우를 붙잡는 다름.


남다름 “잠시만요. 저게 좀...”


그때 두 사람의 인기척을 느낀 경우와 세나가 두 사람 쪽으로 뛰어온다.


이세나 “선배님!! 선배님!! 큰일났어요.”

차경우 “아니야. 오해야! 공선배 아니에요.”


다름 쪽으로 뛰어오는 세나.


그때 다름의 핸드폰에 집안내부 CCTV가 뜨고 거실을 활보하는 민준의 모습이 보인다.


'그래, 결혼한 사람을 연모하는 건...죄야."


이세나 "으으아아악!"


자신도 모르게 달려오는 세나를 피해버린 다름.


다름에게 달려오던 세나는 다름이 갑자기 피해버리자 속도조절을 못해 넘어져버린다.


다름이 정신을 차리니 세나가 꼬꾸라져있다.


남다름 "어머..어떡해. 세나야 괜찮아?"

이세나 "아... 선배님... 이거....."


넘어진 상태에서도 세나가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건네준다. 두둑한 흰봉투.

그걸 보고 경악하는 경우.

봉투를 들고 경우를 쳐다보는 다름.


"띠로리로리로리로리"

다름의 핸드폰이 울린다.

회사인거같은데 낯선 번호다.


봉투를 움켜쥔 채로 전화를 받는 다름.

다름의 한마디에 모두가 굳는다.


남다름 “네? 감사실이요?”

이전 08화아재아재 바라아재 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