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아재 바라아재 13화

13화 - 그녀가 될수 있다면

by 시드니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일주일간 보고서 실무강의를 하게 된 남다름입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수백개의 눈이 다름을 향해있다.

그중 가장 빛나는 별은 맨앞자리 민규.


손을 모으고 흐뭇하게 다름을 바라보고 있다.

민규에게 시선이 머물렀다 황급히 피하는 다름.


남다름 “자, 그럼 시작하죠.”


보고서 쓰기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는 다름.


자신이 썼던 보고서를 예시로 보여주고 있다.


남다름 “결국 가장 좋은 보고서는 드라마처럼 기승전결이 갖춰져야 합니다. 요즘 무슨 드라마 보시나요?”

신입1 “황사빛내인생이요!”

신입2 “하얀소탑이요!”

신입3 “슬기로운독박생활!”

남다름 “이거이거. 다들 드라마만 보는거 아니에요? 앞으로 부서배치되면 드라마 볼 시간도 없을텐데.”


배시시 웃는 신입사원들.


시간이 지나면 회사생활에 적응해서 풋풋함은 사라질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가장 열정적일 세하그룹 구성원들.


이들을 보는 자체로 다름도 힘이 난다. 힘을 받아 더 열정적으로 강의하는 그녀.


남다름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를 좋아하죠?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스토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보고서도 내가 드라마 작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경험하고 느낀 것을 상대방에게 흥미롭고 개연성 있게 전달해야합니다.”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있는 신입사원들.

PPT를 넘기다가 시계를 본 다름.


남다름 “벌써 2시간이 지났네요. 오후 일정이 있는 걸로 아는데... 딱 한분만 질문 받겠습니다.”


손을 잘 들지 않는 신입사원들.


남다름 “강의가 너무 완벽했나봐요.”


“저요!”

허공을 가르는 손이 보인다.

가장 눈이 반짝이는 사람.

당황한 다름..


김민규 “질문이 있습니다.”

남다름 “멘토님이 질문하시다니, 뭔가요?”


신입사원 대상 강의인데, 멘토인 민규가 질문을 했다. 입사2년 차인 그도 궁금한게 많았다.


김민규 “누구를 목표로 해야하나요?”

남다름 “누구....라뇨?”


'누구를 목표'라는 말에 잠시 설렌 다름.


김민규 “부장님인지, 실장님인지, 본부장님인지...”


허탈한 웃음을 짓는 다름.

대체 무슨생각을 하는거니.


남다름 “생각보다 너무 쉬운 질문이네요.”


고개를 살짝 옆으로 내리며 다름을 바라보는 민규. 그런 민규를 보다 정면을 보고 자신감있게 말하는 다름.

“회사를 위해, 쓰면 됩니다.”



*



문밖으로 우르르 나가는 신입직원들.

다름에게 다가오는 세하그룹 인사부장.


지주회사에서 자회사로 좌천될 때 결재문을 올리신 분이다.


다름은 인사부장에게 억한 감정은 없다.

어차피 이사람도 위에서 하란대로 하란 사람이니.


인사부장 “오! 남과장! 아주 멋진 강의였어.”

남다름 “대리입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부장 “오우~ 대리였어? 과장느낌 나길래.”

남다름 “하...하하하하하...감...감사합니다.”


인사부장과 어색하게 악수하는 사이, 다름에게 다가오는 민규. 강의에 감동받은 표정이다.


김민규 “선배님. 강의 최고였어요.”

남다름 “아.. 네.. 고마워요.”

김민규 “오늘 스타일도 평소랑 좀 다르시고, 완전 멋져요!”


목에 둘러진 스카프를 만지작거리는 다름.

창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조금 어색하다.



*


3시간 전, 회사 화장실.


짜증난 표정으로 블라우스에 묻은 갈비찜 양념을 닦아내고 있는 다름.


남다름 “아오. 증말. 남편땜에 증말! 아오!!”


블라우스를 벗어 세면대에서 닦고 있는 다름.

화장실 문이 끼익 열리며 한 여자가 다가온다.


전미영 “빨래하는 게 취미에요?”

남다름 “아.. 안녕하세요. 부장님.”

전미영 “지금 그렇게 한다고 안 지워질걸.”

남다름 “그런가요? 어떡하지.. 곧 강의 가는데...”

전미영 “대충 말리고 내 자리로 와요.”



*



영업기획부 부장자리.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다름에게 건네주는 전미영 부장.


전미영 “자, 스카프 두르면 안보일거에요.”

남다름 “아... 감사합니다.”


얼핏 보이는 에르메스 로고.

눈이 번쩍 뜨이는 다름.


남다름 “헉. 이렇게 비싼걸!”

전미영 “쓰고 갖다줘요. 사연있는 스카프라.”

남다름 “정말 감사합니다. 금방 갖다드릴게요.”

전미영 “오케이. 수고.”


다름이 스카프를 두르며 영업기획부를 떠나는데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린다.


전미영 “공민우씨! 이리와봐요.”

공민우 “네. 부장님. 부르셨습니까.”

전미영 “이런 보고서는 너무 급진적인데?”

공민우 “네? 무슨 말씀인지...”


세하웰니스에서 보고서를 가장 잘쓰는 공민우.

부서원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모니터만 본다.


전미영 “원페이퍼? 좋다이거야. 그런데 백데이터는 다 어딨죠? 그리고 보고서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너무 점프한다. 자기 메뚜기야? 메뚜기면 밭에 있어야지 왜 사무실에 있어?”


눈을 치켜뜨며 초단위로 쏘아붙이는 전부장.

그 앞에 불쌍하게 고개숙이고 있는 민우.

어느정도 예상했다는 표정이다.


전미영 “다시 써오세요.”


보고서로 한 번도 혼나본 적이 없는 민우인데.


남다름 “선배가 혼나다니. 나는 얼마나 깨질까.”


매력있는 그녀지만 조심해야겠다 다짐하는 다름.

잠시 거울 앞에 멈춰선 그녀.


전부장의 스카프를 하니 자신도 약간 전미영 부장처럼 포스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어깨를 쭉 펴고 고개를 들어올리는 다름.


"그럼, 강의하러 가볼까."



*



“자, 여러분 여기로 따라오세요.”


민규가 신입사원 몇 명을 데리고 이동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다름.


강의를 마친 후 잠시 카페에서 쉬고 있다.

신입사원들에게 회사를 소개하는 민규.


민규도 신입사원들처럼 어리지만 다른 후배들과 달리 성숙한 느낌이 있다.


마냥 어린애로만 대하기에는 어려운 포스가 느껴지는 사람.


“아이고.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차경우다.

로비 카페에서 거래처 사장과 대화 중이다.


삼촌회사 사건이 금세 소문이 퍼져 한동안 조용히 지내던 그다. 그래도 특유의 넉살과 제스처는 잘 사라지지 않는 듯하다.


거래처 사장과 대화하며 웃던 차경우의 표정이 굳어진다. 차경우의 시선을 따라가는 다름.


로비 전광판에 뉴스가 흐르고 있다.


“속보입니다. 세하그룹 김세하 회장이 위독하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현재 강남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있는 김세하 회장은 최근 병세가 악화되어....”


자신도 모르게 손을 입에 가져가는 다름.

세하그룹의 모든 구성원들이 굳은 채로 뉴스를 보고 있다.


“탁탁탁탁”


누군가 황급히 뛰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우왕좌왕하는 신입사원들.


“따르르르릉”


다름의 전화벨이 울린다.

눈을 크게 뜨며 소리지르는 다름.


남다름 “네? 민준이가요?”



*



평일 오후, 다름의 집.


팔에 깁스를 한 채로 새근새근 자고 있는 민준과 그런 민준을 토닥이고 있는 다름이 보인다.


민준이 어린이집 하원후 놀이터에서 놀다가 미끄럼틀에서 떨어졌다.


미세하게 팔에 금이 가서 깁스를 하게 된 민준. 크게 다친건 처음이라 너무 놀란 다름은 연차를 냈다.


민준이 잠든걸 확인하고 소파에 앉아 커피를 한잔 마시려는데, 카톡이 울린다.


“카톡카톡”

“남대리! 본부장님이 너 찾는데?”

“오늘 보고 드리려던 건은 다음 주로 미뤄주세요.”

“뭐라고 말씀드려야하지?”

“개인사정이 있어서 다음 주에 보고 드린다고 전해주세요.”

“이번주 주간보고는 어떡해?”

“제가 정리는 다 해놓았고 헤드문구만 따서 마케팅기획부에 전달해주세요.”

“마케팅기획부 누구?”

“담당자 김대리요.”


“남대리, 재무팀에서 돈이 잘못 나갔다는데?”

“어떤 건인데요?”

“미국 화교시장 조사비용이라는데...”

“그거 김과장 담당이니 직접 여쭤보세요.”

“대체전표를 써달라는데 어떡하지?”

“매뉴얼 찾아보세요.”


이정도면 거의 출근한 거나 마찬가지다.


하나하나 대답해주다가 이러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아 핸드폰을 꺼버리는 다름.


다름의 시야에 고급패턴이 들어온다.


어제 정신없이 집에 오느라 전달해주지 못한 전부장의 고급 스카프.


남다름 “돌려드려야 하는데.”


사연있는 스카프라는 말이 걸린다.



*



토요일 아침7시, 세하그룹 로비.


모자를 푹 눌러쓴 한 여자가 까만 가방을 메고 사무실로 들어간다.


얼굴을 들어올려 주변을 살피는 여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사무실로 조심히 들어가는 그녀. 누군가의 자리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는다.

한창 찾다가 무언가를 발견한 그녀.


“강남 세브란스 VIP실 1001호”

모자를 벗어던지는 그녀, 다름이다.


남다름 “여기 있었네. 회장님 계시는 곳.”


김세하회장은 다행히 고비는 넘겼다.


그래도 언제 고인이 되실지 모르니 돌아가시기 전이라도 찾아 뵙고 싶은 다름.


직접 병문안을 가기에는 신분차이가 나니 꽃바구니라도 보낼 심산이었다.


그때, 다름의 시야에 하얀 빛의 파장이 보인다.


남다름 “토요일인데, 누구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빛쪽으로 걸어가는 다름.


누군가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남다름 “다른 사람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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