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아재 바라아재 14화

14화 - 당신이 잠든 사이에

by 시드니


커텐 틈 사이로 햇빛이 내려쬐고 있다.

발광하는 빛입자들 사이에 머무는 한남자.

다름은 남자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탁타다닥, 탁타다닥”

타자기를 치는 리듬만 들어도 누군지 감이온다.

다름은 남자에게 조용히 다가간다.

모니터 화면을 한번 보고 놀라는 다름.

자신도 모르게 숨죽이는걸 잊어버렸다.


남다름 “선배...”


다름의 목소리가 공간에 울려펴지고, 리듬을 타던 타자기 소리가 멈췄다.

남자가 조용히 뒤돌아본다.



*


2년 전, 아니 해가 바뀌었으니 3년전.


모회사 소속이던 다름이 자회사 세하웰니스로 왔을 때 처음 배치된 부서는 영업기획부다.


‘모회사 출신’ 꼬리표를 달고 와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다름을 내외했다.


인사해도 잘 받아주지 않고,

인수인계도 제대로 해주지 않고.


어른들이 하는 왕따놀이는 중고등학생들이 하는 수준과 차원이 달랐다. 몸으로 언어로 괴롭히는건 아니지만 은근한 따돌림이 다름을 숨막히게 했다.


그때 다름에게 손을 내밀어준 한사람.

그 사람이 바로.



*


“어, 다름아.”


남다름 “민우선배. 뭐... 하세요?”

공민우 “뭐하긴. 일하지.”

남다름 “토요일인데?”

공민우 “급하게 할 게 있어서.”


그렇게 워라밸을 외치던 사람이 주말출근을 했다.

민우를 멍하니 보다 모니터로 시선이 가는 다름.

그런 다름을 알아차린 민우.


공민우 “아, 이거 부장님이 시킨거야.”

남다름 “여성건강식품 시장 분석을요?”

공민우 “응응. 전미영 부장님이.”

남다름 “저건 지금 제가 본부장님 지시로 하고 있는 프로젝트인데...”

공민우 “우리쪽도 그쪽 시장에 궁금한게 많거든.”

남다름 “영업기획부 업무분장도 아닌데 왜...”

공민우 “꼭 분장대로만 하라는 법은 없잖아.”


보통 민우선배의 말이면 고분고분하게 듣는 다름.

그의 말에 바로바로 말대답이 나간다.


공민우 “그런데 넌 왠일이야?”

남다름 “저는....”


다름은 주머니 속에 넣은 회장님 주소를 꽉 쥔다.


남다름 “찾아야 하는 게 있어서요.”

공민우 “찾았니?”

남다름 “네.”

공민우 “잘됐네.”




*



월요일 아침.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메일함을 열어보는 다름.

인테그럴로부터 보고서가 도착해있다.


“여성 건강식품 시장 조사”


첨부파일에 마우스를 갖다대고 망설이는 다름.

한참을 망설이다 파일을 연다.

1페이지부터 하나하나 읽어보는 다름.


내용을 읽으면 읽을수록 눈에서 눈물이 난다.

훌쩍거리는 소리를 듣고 달려오는 아저씨들.


심대리 “다름아, 울어?”

최대리 “무슨일이야?”

변과장 “뭐야? 뭐야?”

남다름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눈물을 훔치며 밖으로 뛰쳐나간 다름.

화장실에 물을 틀어놓고 눈물을 흘린다.


남다름 “대체... 왜... 뭐가 부족해서...”


그때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여자.

눈물을 급하게 닦고 인사하는 다름.


전미영 “빨래만 취미인줄 알았더니, 수도꼭지네?”

남다름 “아... 죄송합니다.”

전미영 “회사에서 울지마. 부탁이야.”

남다름 “....”

전미영 “여직원들 회사에서 우는거 싫어.”

남다름 “죄송합니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주는 전미영 부장.


전미영 “회사에서 울고싶을 땐, 그래도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을 떠올려봐.”

남다름 “내편이요?”

전미영 “응. 회사에 그런 사람 한두명은 있을거 아니야. 없다면 할수없고. ”


그말을 듣고 있던 다름이 전부장에 되묻는다.


남다름 "그 사람이 날 울린 사람이라면요?”



*



본부장실 앞 게시판.

을씨년스럽게 흔들리는 종이 한 장.

종이 안에 보이는 글자.


“2월20일 마케팅본부장 보고일정”

“마케팅인사이트부 오후 2:00 업무보고”


평소 같으면 시간별로, 거의 30분 단위로 보고일정이 빡빡한데 요즘엔 휑하다.


사전에 예약하지 않고 당일보고하려면 몇시간씩 대기를 해야한다. 그정도로 마케팅본부장을 못만나서 안달인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문전성시를 이루던 본부장실 앞에 개미한마리도 안보인다.


본부장실 유리창 너머로 창문 밖을 내다보녀 한숨을 쉬는 본부장만 보인다.


본부장의 한숨소리를 듣고 방으로 뛰어들어가는 마부장과 김과장.


마부장 “본부장님, 어디 불편하신가요?”

김과장 “본부장님 뭐 필요한거 없으십니까?”


대꾸하지 않고 손짓으로 나가라고하는 본부장.

머리를 긁적이며 본부장 방에서 나오는 두사람.


마부장 “이상하다. 저번주만 해도 기분 좋으셨는데.”

김과장 “그러게요. 사장후보로 올라가셨다고 들었는데.”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는 다름.

대략 상황을 알지만 굳이 말을 꺼내진 않는다.


이과장 “오늘 너무 조용하지 않아?”

심대리 “뭐가요?”

이과장 “본부장님실 말이야.”

심대리 “사람이 좀 없긴 하네요.”

변과장 “저기... 소문 못들었어?”


인사이트부에서 그마나 정보가 빠른 변과장이 입을 연다.


심대리 “무슨소문이요?”

이과장 “소문?”

변과장 “본부장님이 성추문에 휘말리셨어요.”


“뭐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인사이트부 아재들.


회사 전체에서 가장 소문이 느린 곳이라 이제야 본부장실 앞이 휑한 이유를 알아냈다.


요즘 마케팅본부장이 여직원들을 성추행 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임원이 도덕성 논란이 생기면 중징계를 받는 요즘 분위기. 까딱 잘못하면 살아남기 어렵다.


심대리 “다름아, 넌 알고 있었어?”


대답하지 않는 다름.

다름에게 지금 중요한건 본부장이 아니다.

인테그럴에서 온 보고서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다름.


"남대리님."

그때 누군가 다름을 부른다.



*



세하그룹 옥상정원.

콜라 두 개를 들고 서있는 공민우.


공민우 “다름아, 이쪽이야.”


탐탁치 않는 표정으로 민우에게 다가가는 다름.

억지로 표정을 펴고 그에게 다가간다.


남다름 “선배님. 왠일이에요?”

공민우 “너 영업 올래?”

남다름 “네? 갑자기?”

공민우 “너같은 애는 영업을 해야지. 언제까지 그런부서에서 썩고 있을래.”


그런부서..

다름은 자신의 부서에 대해 생각했다.


매일 매일 말도 안되는 아재개그에 머리는 느리고 손과 발은 그것보다 더 느린 아재들.


같이 있는 것만으로 답답하고 회사에서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많았다.


그런데, 비록 실력은 부족하지만 비열한 짓은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남의 뒤통수를 치거나, 가족을 끼워넣거나, 뒷돈을 받는다거나.


부도덕한 일은 절대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남다름 “저는 저희부서 괜찮은데요. 지금 하는 프로젝트도 있고요.”

공민우 “마케팅본부장님 좀 위험하신거 알지”

남다름 “네. 들었어요. 아, 저도 감사실도 갔다왔고요.”

공민우 “그래. 그냥 너는 내가 아끼는 후배라서 그러는데 지금 정도 영업본부장님한테 한번 얼굴 비추는게 어때?”

남다름 “영업본부장이요?”

공민우 “응. 지금 사장후보 명단에 새로 올라갔어.”


영업본부장...


출산휴가에 들어간 다름을 마케팅본부로 던져버린 사람이다. 그런 사람앞에서 비위를 맞추라니.


남다름 “선배도 좀 변했네요.”

공민우 “사람은 변해야지.”


우직한 줄만 알았는데 의외인 면을 매일 보고 있다.

다름은 딱히 자신의 부서를 떠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궁금한게 있었다.


남다름 “그래요. 한번 뵈러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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