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낳으라고 압박하는 그대들에게 제안을
저는 숙제를 끝냈는데 왜
자꾸 저를 쳐다보시나요
출산율이 심각하댄다. 국가의 명운이 달린 심각한 문제를 남일처럼 말씀드려 죄송하다. 아니다. 안 죄송하다. 나는 이미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사람이다. 내 입장에서 연일 포털과 유투브 라이브 뉴스를 지배하는 출산율 문제가 조금 불편하다. 마치 교실에서 숙제를 다 끝내고 서랍에서 만화책을 꺼내려고 하는데 몇명이 숙제 안 했다고 단체기합을 받아야하는 상황같다.
출산율 저하의 가장 큰 원인인 여성의 사회진출에서 ‘그 여성’에 해당하는 내가 보기에 출산율이 떨어진 원인은 딱 하나다. 결혼율이 감소했기 때문. 통계청 KOSIS 자료를 보면 조혼인율(인구 천명당 혼인건수)은 ‘12년 6.5에서 ’21년 3.8로 10년간 반토막이 났다. 동일기준 출생건수와 비교해볼 때 (‘12년 48만명, ’21년 26만명) 연평균 감소율도 동일한 추세를 보인다.
그런데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들은 죄다 출산 이후 지원 정책이다. 정작 근본적인 원인인 결혼율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고 일단 1명을 낳은 사람들을 위한 복지정책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출산장려 정책은 아이를 1명 낳으면 나라가 책임진다는 컨셉인데 결혼도 안한 청년들이 돌봄시간 확대, 육아휴직 연장에 대해 무슨 공감이 있겠는가. 젊고 여린 청년들이 결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하지 않을까 싶다.
결혼율을 올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딱 하나다. 집값. 주변 후배들을 봐도 치솟는 주거비 때문에 결혼을 망설이는 아이들이 상당히 많다. 이 아이들은 소득이 적은 것도 아니고 연애를 안 하는 것도 아닌데 감당 불가능한 집값 때문에 결혼을 상상하지 못한다. 새도 알 낳기 전에 둥지부터 짓는데 주거환경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무슨 결혼을 하겠는가. 다만 집값 안정은 거시지표 (금리 등) 및 심리와 맞물려서 있어 정부가 통제하기 어렵다. 그래서 가장 단순한 정책 (아이를 낳고부터 지원되는) 부터 내놓고 청년들이 아이를 낳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루 빨리 집값이 안정화되고 2030대 청년들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결혼을 결심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한다.
그럼 둘째 출산율은 어떤가. 아이를 학교에 보내보니 50% 이상이 외동들이다. 둘째나 셋째가 있는 집들은 부잣집이거나 가족은 짝수를 맞춰야한다는 나름의 철학이 있는 집들이다. 나도 외동 아이를 키우고 있다. 일단 외동을 키우고 있다는 건 결혼을 했다는 거고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이다. 아이를 한번 낳고 키워본 사람들이 둘째를 키우는 건 더 수월하다. 첫째는 열이 39도만 되도 응급실로 뛰어가지만 둘째부터는 40도가 넘어도 해열제를 교차복용 시키며 옆에서 딥슬립을 하는 엄마들만 봐도 첫째를 키우는 태도와 둘째는 다르다.
그럼에도 나는 왜 둘째를 낳지 않는가. 일단 첫째 겸 막내인 우리 아이를 키울 때 너무너무 힘들었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을 정도로 힘들었다. 먹이고 재우고 씻기는 거는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내가 배 아파 낳은 자식이니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했다. 다만 기관과 시터를 병행하며 회사를 다니는 게 너무 힘들었다. 남편도 너무 힘들어서 둘째는 꿈도 꾸지 말자고 했다. 게다가 돈이 하나도 안 모인다. 아이가 없을 때는 잘 아끼면 한 명 연봉도 모았는데 아이를 낳은 이후부터는 마이너스 안나면 다행이다. 이런 상황에서 둘째를 낳는다?
사실 내 꿈은 아이를 셋 낳고 키우는 거였다. 전원주택에 살며 아이 여럿을 낳아 마당에 풀어놓고 비눗방울을 부는 아이들을 필름 카메라로 찍어주는 일상. 결혼 전에 예비신랑에게 편지를 써주면서 아이는 셋을 낳고 싶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 로망은 아이를 낳고 1-2년후에 와장창 깨져버렸다. 그럼에도 가끔 길에서 보이는 어린 아이들을 볼 때 한명 더 낳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어떻게 하면 나는 둘째를 낳을까? 고민해봤다.
욕망을 인정하고, 욕망을 지원한다
먼저, 다둥이 할인율이 높아져야한다. 지금 다둥이 할인은 공영 주차장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2자녀 30%할인, 3자녀이상 50%할인) 할인되는 분야를 넓혀야한다. 특히 생필품 중심으로. 첫째를 키우는 집과 둘째를 키우는 집의 식비는 2배가 아니라 4배다. 외동들은 쫓아다니면서 입에 쑤셔넣어야하지만 둘 이상 키우는 집은 아이들이 경쟁적으로 먹는다. 걔네가 식탐이 많아서 그런게 아니라 인간이 경쟁환경에 처하면 그렇게 된다.
둘 이상 키우는 집들은 마트에서 쓰는 비용을 전폭적으로 할인 해주는 게 어떨까. 자기 애가 아닌 애들 둘 데려다가 할인받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으므로 파생되는 병폐는 더 고민을 해야하긴 하지만, 식생활비가 전폭적으로 할인되면 둘째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출산 장벽이 더 낮아지질 듯 하다. 같은 맥락에서 청약점수도 부양가족이 아니라 직계자녀로 바뀌고 1명당 5점이 아니라 10점 정도 줘야한다. 아이를 낳으면 돈이 안 모인다는 건 국룰인데 출발선을 바꿔줄 필요도 있다.
마지막으로, 이게 된다면 일단 강남/서초/송파처럼 자산이 높은 지역에서는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니다 어디든 효과가 높을 것 같다. 그건 바로 둘째부터 영어유치원비를 지원해주는 거다. 학교와 유치원은 줄어들고 있지만 영어유치원은 매년 새로 생기고 성행 중이다. 태어나는 아이가 줄어드는데 영어유치원이 왜 늘어날까. 태어나는 아이가 적어지니 잉여자산이 영어교육으로 몰린다.
티비만 틀어도 영어로 솰라솰라하는 아이돌이 범람하는 글로벌 시대에, 굉장한 소신을 가지지 않는이상 평범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영어교육에 달려들지 않을 수 없다. 첫째까지는 본인 돈으로 교육시킨다고 쳐도, 둘째부터 영어유치원 비용을 30% 이상 지원한다면 과연 안 낳을까. 겉도는 정책 말고 인간의 욕망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그 욕망을 적절히 풀어낼 수 있게 해주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아이를 키울 때 아이가 울지 않으면 부모들은 병원으로 달려간다. 응급실로 가거나 몸이 다친게 아니라면 심리상담센터로 뛰어간다. 대한민국도 아이가 울지 않는다. 모두가 공감하겠지만 엄청 나쁜 신호다. 아이 울음 소리가 들리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면 좀 더 현실적인 정책들이 나왔으면 한다. 특히 어르신들, 아무것도 모르면서 ‘둘째 낳아야지’ 좀 하지 마세요. 저 힘듭니다ㅋ
ps. 위 내용은 객관적 검증보다는 개인의 경험에 기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