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1 입학식 이후 소회
이번주는 아이 입학식 주간이었다. 동년배를 키우는 블로거님, 작가님들이 영혼털렸다는 글을 보면서 낄낄대다가 나도 한 소회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노트북을 열었다. 일단 나도 영혼털리고 삭신 쑤신건 대동소이하다. 첫번째 등교 스케줄 끝나자마자 생전처음 동네 사우나를 다녀왔으니. 근데 뭐 그건 예상 못했던 것도 아니고 항상 삭신은 쑤시기 때문에 나에게 기록을 남길 정도로 특별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나한테 좀 특별했던 건 새로운 것들과의 만남이다. 새로운 담임선생님, 새로 보이는 아이 친구들, 생각보다 시설이 좋았던 1945년대에 지어진 학교 건물, 본관들 들어서자마자 눈에 펼쳐지는 깔끔한 도서관. 많은 새로운 것들과 마주했지만 뇌리속에 남아있는 건 아이엄마들과의 만남이다. 사실 엄마들을 가끔 만나긴 했는데 항상 편안한 차림으로 만나곤 했었다. 수수한 차림에 에코백 하나 들고 있던 엄마들이 입학식이라고 코트에 명품백 하나 메고오는 장면이 생경하면서도 그 단정한 옷차림에서 학부형의 무게가 느껴졌다.
아이를 등교 시키고 평소 알고 지내는 유치원 엄마들과 소소하게 브런치를 하러 갔다. 내가 도착하니 원래 아는 엄마들 네명이 먼저 와있었고 내 자리를 잡고 앉는데 '어~00엄마다!'하는 소리가 연속으로 들린다. 4-5명만 만나는 줄 알았던 브런치모임이 9명이 되는 건 삽시간이었다. 다 처음보는 엄마들인데 내 앞에 앉은 엄마들이 너무 반가워해서 나도 아는 사람들인 줄 알았다.
삽시간에 커지는 세력(?)에 당황하긴 했지만 말트고 웃음꽃이 피는데는 1분도 안걸린 것 같다. 안녕하세요 저는 --엄마예요. 어디 유치원 보내셨었어요? 저는 00 보냈어요. 어머 세상에 거기...$%$%#%. 아 맞아요. 제가 그 모질한 00 졸업생이에요... 이러면서 대화가 이어지고 아이가 몇반이냐 방과후는 어디보낼거냐 하면서 순식간에 어색한 느낌이 사라졌다.
잠시 긴장과 걱정을 놓고 엄마들과 떠들다보니 옆자리 앉은 엄마랑은 스킨십까지 하고 있다. 여자부장님이 고생한다고 손만 잡아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연스레 손을 뺴는 나인데, 좀 더 있으면 허그까지 하겠다 싶었다. 하나 화제를 던지면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줄 대화 꼬리가 이어진다. 맞아요! 맞아. 진짜. 완전. 나도! 무한 반복되는 감탄사과 공감의 언어들. 비록 우린 초면이지만 대충 음절 하나만 던져도 무슨 대화를 할지 직감적으로 안다.
근데 왜이렇게 다들 푼수같고 사랑스럽지? 잠시 입을 닫고 (내가 말 제일 많이 한거 같지만) 목을 축이는데 대화들이 참 신기하다. 다들 공감을 엄청 잘한다. 그러니까요, 맞아요. 저도 그랬잖아요. 진짜 속상하셨겠어요. 어떡해요..... 어떻게든 치고 들어가서 드립이나 치려는 나와 달리 모락모락 피어나는 커피 김을 배경삼아 우아하게 공감의 언어를 뿌리는 여성들. 세상에는 참 공감이 재능인 사람들이 많다. 나는 그 재능이 없지만.
뭔가를 배우면 신나는 ENTJ라서 집에 오자마자 남편을 앉혀놓고 조잘조잘 떠들었다. 오늘 --엄마 만났는데, 전 어린이집 같이 다녔더라. 그리고 --이랑 00이는 둘째들이 서로 절친이었대. 그리고 xx이랑 ii이랑 000영어학원 같이 간대. 라하한테도 한번 테스트 봐보라고 해볼까? 참, 학부모 연수할 때 1번 엄마랑 옆에 앉았는데 그 엄마도 000래!!
아빠의 무관심이 아이에 성장에 꼭 필요하다는 걸 일평생 실천하고 있는 라하아빠는 핸드폰으로 기사를 보면서 내 이야기를 귓등으로 듣고 있다. 듣든 말든 일단 와다다다 쏟아내고 잠시 창밖을 보며 커피타임을 청하고 있다가 옆자리 앉아서 손잡은 엄마가 생각나서 남편에게 한마디를 더 해봤다.
"00엄마도 우리 아파트 이사 오려고 했었나봐. 근데 00엄마 디게 웃겨."
엄마들 대화에 대해 하나도 관심이 없다가 '아파트'라는 워딩에 반응을 보이는 남편. 관심가는 워딩부터 뒤 이야기는 들었는지 시큰둥하게 한마디 한다.
"다들 자식 걱정으로 그런 모임 나가는 거야. 그냥 웃고 떠들라면 친구 만나지 거길 왜 가겠어."
저저저(속으로 ㅉㅉ함) 공감지수 0에 수렴하는 리액션. 물론 나는 익숙하다. 팩트폭력으로 와이프를 떄려대는 남편에게 잠시 열받았다가 곰곰이 곱씹어보니 남편말도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 다들 먹고 놀라고 엄마들 모임 나오겠나. 자기 아이 걱정되서 나오겠지. 특히 초1 맘이면 얼마나 걱정이 많겠나. 내가 보기엔 소심쟁이 라하보단 다 걱정없을 아이들이지만 또 자기 부모가 보는 아이들은 다르겠지. 문득 걱정을 숨기고 모임에 나와 웃고 있는 분들 얼굴을 하나하나 곱씹어보니 마음이 짠해진다.
영수증을 주머니에 쑤셔넣듯 일단 걱정과 두려움을 숨겨놓고 동지들과 한참 떠든 후에 집에 들어가서 바지춤에 박혀있는 걱정과 두려움을 다시 꺼내 고심할 엄마들. 엄마가 아니었다면 이런 걱정도 안고 살 필요가 없었을텐데 이 걱정을 하고 사는 걸 선택한 사람들. 혼자 빼곡한 영수증 들고 있는 게 무서워서 낯을 가리더라도, 시간이 없더라도 엄마들을 만나러 나온 사람들. 신기하게도 걱정 한가득인 영수증 조차도 같이 읽다보면 재밌는 화제거리가 되고 만다.
어차피 그깟 영수증은 또 시간 지나면 없어질테니.
나도 발발거리는 초1엄마지만 모든 분들께 따뜻한 미소와 응원을 남깁니다. 생각보니 몇년 전에 청담동에 아이가 별로 없다는 글을 쓴적이 있는데 지금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과밀이다. 다들 어디 숨어있다가 입학할 때 한꺼번에 나타는 듯 하다. 시간이 될때 기억에 남는 아이, 가족에 대해 (가명으로) 한편씩 풀어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