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 무력, 허탈, 해탈..
왜 이러는 걸까요.
왜 거기에 쓰레기를 버리는 걸까요.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낙타가 바늘구멍 뚫던 지난 브런치북 공모전과 달리 이번에는 무려 50개 출판사가 참여한다고 한다. 많고 많은 브런치 작가님들께서 이를 갈고 열심히 작업 중이실 거다. 브런치북 공모전 당선은 모든 브런치 작가들의 꿈이니까.
브런치 작가인 나도 이번 10회 공모전에 어떤 글을 써서 낼지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다. 3년 전에는 육아이야기, 2년전에는 책 이야기, 1년 전에는 청담동 이야기를 썼다. 3번 다 고배를 마셨지만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겼는데 그건 바로 ‘나만 쓸수 있는 이야기’를 써야한다는 것.
고민고민하다 노키즈존에 대한 글을 써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 노키즈존을 경험한 적도 많고 해외영업 직군이니 일본,중국,유럽 등에서 본 것들과 비교해서 썰을 풀수 있을 것 같았다. 책의 주제는 ‘약자를 대하는 자세’에서 사회의 격이 나온다는, 노키즈존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낼 생각이었다.
제목은 ‘노키즈 온더 블록’. 사실 이건 내가 2년 전에 쓴 단편소설 제목이다. 소설의 내용은 빅데이터를 조종하는 아이들이 노키즈존을 운영하거나 찬성했던 어른들의 정보를 수집했다가 자신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사회안전망을 파괴한다는 다소 공포스런 이야기였다. 물론 이 소설은 광탈했고 나중에 장편으로 다시 고쳐쓸 계획이다.
소설은 폴더 안에 깊숙하게 넣어두고 브런치북 공모전에 제출할 노키즈존에 대한 기획안을 쓰고 목차를 썼다. 앞부분은 노키즈존을 운영하는 사장님들 인터뷰, 예스키즈존을 운영하는 사장님들 인터뷰를 채우고 중간 부분은 해외를 다니면서 경험한 내 이야기를 쓰고 마지막 부분에 대한민국 사회가 약자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쓰려고 했다. (이렇게만 쓰니 엄청 무거워보이지만, 유쾌하고 유려하면서 묵직한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계획이 다 틀어졌다. 일주일 전에 보게 된 충격적인 한 장면 때문에. 추석 연휴를 맞아, 가족들과 종로 나들이를 갔다. 휴일에만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현대엔지니어링 건물에 주차를 하려는데, 역시 휴일이라 그런지 자리가 별로 없었다. 이러다가 주차 못하는 게 아닌가 싶은 찰나에 빈 자리가 하나 보였다. 오! 럭키!를 외치며 주차하려는데, 하얀 주차라인 옆에 플라스틱 커피컵이 놓여져 있었다.
일단 여기서 1차 충격을 받았다. 태어나서 주차라인에 쓰레기를 두고 가는 건 처음 봤다. 길에 버려진 쓰레기나 쓰레기통 옆에 쌓인 쓰레기는 봤는데 하얗고 정렬된 주차라인 위에 성묘가는 새색시처럼 다소곳하게 서있는 플라스틱 커피컵이라니.
차문을 열고 내려 일단 커피컵을 기둥 뒤로 옮기고 남편이 주차하는 걸 바라봤다. 아니, 내 눈은 기둥 뒤에 있는 플라스틱 커피컵에 가있었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주차라인에 쓰레기를 두고 가다니. 뒤에 오는 사람은 생각 안하나. 그래도 뭔가 사정이 있을 수 있다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했는데, 남편의 말이 귀에 들어오는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다.
“이거, 차 출발하기 전에 문열고 버리고 간거네.”
“헐, 왜? 왜 그렇게 생각해? 뭐... 짐이 많아서 어쩌다가 두고 간걸 수도 있잖아.”
“아니지. 커피컵이 놓여있던 위치를 잘 생각해봐. 어떻게 그렇게 문 열리는 곳에 정확하게 주차라인 위에 있냐고. 시동걸고 출발하기 전에 버리고 간거야.”
이제 웬만한 일에는 충격을 받지 않는 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충격적이었다. 순간 호텔에 놓은 전기포트로 빨래를 한다는 한 기사가 생각났다. 사람이 이기적인 것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한계를 뚫고 우주까지 가버린 게 아닌가.
주차라인 위 커피컵이 ‘노키즈존’과 무슨 관계냐 물을 수 있다. 관계가 있다. 브런치 작가 시드니가 쓰려고 했던 글에는 사회적 약자에게 친화적인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시드니님이 틀렸다. 저런 태도를 보여주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친화적일 수 있겠는가. 사람을 고르면서 만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가능하면 최대한 주차라인 위에 커피컵을 버리고 가는 사람은 영원히 안 만나고 싶다.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어떤 사람들은 엄마가 되지 않는 게 더 나은데 그게 하필이면 우리 엄마네.
- 오인주 (김고은 분)
모두가 되고 싶지 않아도 되는게 어른이다. 어른이면 어른답게 행동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기저귀를 테이블 위에 놓고 가고 자리를 초토화 시켜놓고 담담하게 떠나고 당당하게 공짜를 요구하는 사람들. 저런 사람들을 만나면 싫다, 혐오스럽다 이런 감정이 아니라 그냥 무력감이 든다. 날카로운 유리에 찔려 파르르 무너지는 사람모양 풍선처럼.
이런 감정 때문에 노키즈존을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아직 우리는 덜 성숙하니까.
그나저나 이번 공모전은 틀렸나봐요... 다른 작가님들 건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