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손을 잡고 백화점을 돌아다니다보면, 가끔 이렇게 묻는 사람이다.
"일하는 엄마죠? 고생이 많아요."
하루에도 몇백명씩 사람을 대하는 백화점 점원의 통찰에 감탄하면서도 (나: 어떻게 아셨어요? 점원: 그냥 티가 나요.) 이상복잡한 감정이 든다. 그런 매장은 돈 빌리고 안갚은 사람처럼 어색한 웃음(눈은 안웃고 입만 웃음)만 짓다가 성급히 다른곳으로 떠나게 된다.
'워킹맘'을 위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참 고마운 일이다. 일하면서 아이도 보는 사람을 치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일이. 그런데 그런 말을 들으면 남편에게 미안해진다. 남편도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아빠' 인데, 왜 사람들은 내 노고만 높게 사는 걸까?
페미니즘을 100% 이해하고 있다고 할수는 없지만, '워킹맘' 프레임도 여성의 역할을 국한하는 태도가 전제되어있다. 아이는 당연히 엄마가 보는 것이니까, 육아/살림은 엄마의 영역이니까, 일하면서 아이 키우는 엄마가 고생한다.
우리집의 경우 요리와 교육 아이템을 선정하는 건 내가 전담한다. 하지만 그외 청소, 설거지, 분리수거 그리고 내가 선정한 교육 아이템을 가지고 놀아주는 건 아빠가 한다. 빨래도 넣고 돌리는 건 내가 주로 하고 (세탁세제, 건조기 시트 쓰는게 너무 신남) 널고 다림질은 남편이 주로 하는 듯하다. 심지어 영어숙제도 아빠랑 하면 더 잘해서 내가 손 놓은지 오래다. (아빠 회식하는 날 제외) 화장실이나 베란다 청소는 결혼하고 한번도 해본적도 없고..
연봉이 낮은 사람이 더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관점도 어떤 커뮤니티에서 본적 있다. 연봉도 남편이 20-30% 높다. 심지어 남편은 관리직이라 나보다 훨씬 신경쓸 게 많다. 주중 저녁에 팀원들과 전화하면서 설거지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아련하기도 한다. 이정도면 워킹맘이 고생한다가 아니고, 워킹대디가 더 고생이 많다고 다독여줘야하는 게 아닐까?
너네 집만 그러잖아요. 라고 할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 주변에는 아빠가 주 양육자인 집들이 훨씬 더 많다. 80년대 이후에 출생한 남자들 또는 주52시간 이후 육아를 하게 된 가족의 경우, 아빠육아가 정말 활발하다.
아빠전담 육아를 하는 남자들을 보면 아이 키우면서 하는 푸념이 엄마들과 똑같다. 맘카페에 가입이 안되서 와이프 아이디로 글쓴다는 남자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시대에 (물론 아직도 엄마가 전담하는 집도 많겠지만) '워킹맘'이라는 단어가 과연 적절한 건지 의문이 든다. '워킹대디'나 '워킹부부' 좀 다른 용어를 써야하는 게 아닌가 싶고.
아빠들과 아이들끼리 키즈카페를 가거나 한강에 놀러가있는 도중에, 내가 '워킹맘카페'에서 자판을 두드리며 하소연 할때가 제일 웃긴 상황인 듯 하다.
무튼 아빠, 오늘도 잘 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