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앞의 성냥불 같은 인생

난 어디서든 틀렸구나

by 시드니

보물을 찾아 나서는 모험은 설렌다. 찾아 나선 보물이 결국 나타나지 않으면 그때부턴 설렘은 공포로 변한다. 모험자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외로운 여정을 함께했던 산들바람은 이제 태풍으로 변한다. 이제부터 부서진 나뭇가지를 붙잡고 휩쓸려 내려간다. 내 인생 하나 망가지는 건 소란하지도 않다. 하지만 재앙은 재앙이다.


『어둠 속에 머물다가 단 한번뿐이었다고 하더라도 빛에 노출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평생 그 빛을 잊지 못하리라. 그런 순간에 그들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됐으므로 그 기억만으로 그들은 빛을 향한 평생의 여행을 시작한다.

- 《니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


이 문구는 언론고시 준비를 하는 내내 책상 위에 붙어있었다. 이 희망의 문구는 PD 외에는 아무것도 집중하지 말자는 의지가 담겨있었다. 도전이 실패한 이후 이 문구는 이제 절망 그 자체가 된다. 영원히 실패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 할 것 같았다. 슬프게도 감상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었다. 졸업한 지 2년이 가까워지고 나이는 차오르고 있었다.


이력서에 어떤 내용을 쓸 수 있는지 한번 쭉 써봤다. ‘토익 900점, 한국어 능력시험 2급, 학점 3.6’. 더 이상 쓸게 없다. 인턴경력 하나 없고 알바도 한번 안 해봤다. 글쓰기 연습 말고 대학시절에 한건 힙합동아리뿐이었다. 조직에 맞는 사람을 찾는 기업 공채에서 ‘사회의 전복’을 꾀하는 힙합 전사라니. 역시 망했어, 난 틀렸어 라고 외치며 머리를 쥐어뜯는데 한 가지 승부수가 뇌리를 스쳤다.


JLPT(일본어 능력시험) 1급. 지금은 우리나라 방송들이 해외에 많이 수출되지만, 내가 공부를 하던 2000년대 말만 해도 우리나라 방송이 일본 방송을 많이 베꼈었다. 동남아나 중국 방송을 베꼈음 베꼈지 우릴 식민지로 삼았던 일본의 문화식민지가 되고 싶지 않았다. 모든 내용을 섭렵해서 절대 모방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의지로 일본 방송을 공부했다. 필기, 상식, 한국어 공부를 하기 싫은 날은 일본 방송을 봤다.


그러다 보니 일본어를 따로 공부하지 않았는데 익숙해졌다. 그 상태에서 동아리 친구가 JLPT라는 걸 본다고 하기에 따라서 신청했다가 덜컥 합격을 해버렸다.(열심히 시간을 내서 JLPT를 준비하는 분들에게 위화감을 줄 의도는 없다. 시험 자체를 우연히 보게 된 거지 축적된 시간은 웬만한 수험생보다 많았을 거다.) 이게 나중에 밥벌이가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26살이 되어서야 채용사이트에 가입을 하고 어떤 기업들이 존재하는지 봤다. 검색 도중에 얼떨결에 SSAT 시험을 보긴 했지만 정말 그냥 테스트여서 대충 찍고 나왔다. (이것에 대해 나중에 조금 후회하긴 했다.) 10월이 되니 굵직한 대기업 공채는 다 지나가 있었다. 턱을 괴고 마우스 휠을 굴리는데 얼핏 들어본 적이 있는 회사 이름이 보였다. 그 회사의 채용 공고문을 찬찬히 봤다. ‘일본어 능력자 우대’가 보였다. 바로 원서 접수를 했다.

기업 자기소개서는 방송국에 제출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은 내가 그 회사 제품을 전혀 이용해본 적이 없다는 것. 부랴부랴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대표 제품들을 보는데 정말 낯설었다. 그래도 처음 쓰는 기업 공채인데 그 회사 제품에 대한 칭찬을 좀 써 줄까 하여, 홈페이지 맨 하단에 숨겨진 듯한 제품 하나를 골랐다. 블로그 검색을 몇 번하니 그 제품에 대한 체험담이 쏟아졌다. 마치 그 제품 체험단인 듯 자기소개서에 풀어썼다.

서류를 합격했으니 인적성과 면접을 보라고 연락이 왔다. 면접관들은 그 숨겨진 제품에 대해 왜 썼는지 코치코치 물었다. 자사 제품 중에 가장 인상 깊은 제품이었다고 하면서 그 제품을 성공시켜보고 싶다는 마음에 없는 소리를 했다. 면접관이 표정은 매우 밝았다. 당일 저녁 연락이 왔다. 최종 합격했으니 연수를 받으러 오라는 것이었다.


연수 첫날, 100여 명 되는 사람들이 모였다. 다들 표정이 밝았다. 내가 PD가 됐다면 아마 저런 표정이겠지, 싶었다. 다들 이 회사를 들어오기 위해 살아온 사람들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웃지 못하는 자는 최대한 구석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신입사원 교육은 심각할 정도로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마케팅, 영업, 재무, 구매 등 기업의 가치체계에 대한 내용이 주였다. 정치학, 사회학, 방송학 등 순수학문을 공부하고 그것을 신봉(!)했던 나는 타협의 시간(돈벌이를 위한 공부)이 왔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교육을 받는 동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안 좋은 기분은 분노가 되어 결국 교육시간 대부분을 체력 충전(이라 쓰고 수면이라 읽는다)을 위해 써버리게 했다. '자꾸 이러면 연수원에서 쫓겨나요'라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음에도 도통 개선이 되지 않았다. 빽빽한 뒤통수들 사이에 한때 보물을 찾으러 다녔던 탐험가는 가슴이 답답했다. 아무래도 회사에 적응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어느 날, 교육담당자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시간 때우기용 교육 커리큘럼을 짜다 지쳐 교육과정에 ‘시사토론’을 넣어버린 것이다.


“불경기에도 명품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 이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토론하시오.”


온몸의 세포들이 깨어났다. 안 그래도 어디 화를 풀고 싶었는데 임자를 잘 만난 느낌이었다. 토론장에 들어서자마자 마이크를 잡았다. ‘과시적 소비’, ‘소스타인 베블런’, ‘샤테크’ 등 박문각 시사상식 책에서 외운 단어를 장전하여 입 바깥으로 사정없이 발사했다. 무방비 상태이자 얼마 전까지 취준생이었던 상대방은 하나둘씩 쓰러져 나갔다. 사람들이 전사해 나가는데 이상하게 속이 후련했다. 커피 대신 뚫어뻥이라도 마신 줄 알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쉬는 시간이었다. 옆을 보니 무뚝뚝한 남자 동기 하나가 서있었다. “야, 좀 살살해.” 한마디를 툭 던진 그는 다른 사람들을 따라 나갔다. 텅 빈 교실 안, 유리창에 내 모습이 비쳤다. 흐트러진 머리와 광기 어린 시선. 창문에 창살만 있다면 딱 푸른 언덕 위 하얀 건물에 있는 사람 같았다. 이대로라면 회사에 적응을 못할게 뻔했다.


흐트러진 머리와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나를 피하는 사람들이 시선이 느껴졌다. 밥벌이라도 해 보려고 왔는데, 여기서도 틀렸네. 앞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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