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당김의 법칙, 개나주세요
근데 안됐다. 마지막으로 원서를 넣었던 회사는 작년 공채 때 최종면접까지 올라갔던 회사였다. 함께 최종면접을 준비했던 사람들은 이미 PD라는 직함을 달고 막내 조연출을 하고 있었다. 아직 PD가 되지도 않았지만 공중파PD와 ‘알고 지내는’ 사이라는 자체가 심장을 뛰게 했다. 그들은 매일매일 회의를 하느라 밤을 새고 편집을 했다. 방송국 바깥으로 나가는 날은 촬영을 하는 날. 스튜디오 촬영 프로그램을 맡은 사람은 여의도 바깥으로 나올 일이 없었다.
사회적 명성은 있지만 인권은 없는 그들의 삶을 보며 더욱 간절해졌다. 평생 모범생(?)으로 살아왔으니 이제 난 망가지기만 하면 되는구나! 난 정말 PD가 체질인 사람이구나! (나중에 알게 됐지만 난 9시면 눈이 감기는 사람이다. 날새기는 애초에 불가능.) 3년째 방송3사 PD시험에 도전하고 있는 내 책장에는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유명한 론다번의 《시크릿》이 꽂혀있었다. 저자의 말처럼 우주의 기운을 담아 기도하면 이뤄질 것 같았다. 근데 안됐다.
결과를 확인하고 화장실로 달려 들어가 수도꼭지를 틀었다. 가족들이 내 울음소리를 들으면 안 되니까. 절망 그 자체였다. 삶을 지속해야하나, 싶었다. 한강을 가면 뛰어들지 몰라서 일단 공원으로 갔다. 평일 올림픽 공원은 한산했다. 벤치에 멍하니 앉아있는데 사원증을 멘 여자무리가 담소를 나누며 걸어간다. 공기 빠진 인형처럼 앉아있는 나를 흘끗 보더니 ‘이 시간엔 참 사람이 없어’라고 말한다.
사람이 없는 시간에 그곳에 있는 건 사람이 아니었다. 나도 내가 보이지 않았다. 꿈을 이루지 못한 나는 정말 살아갈 가치가 없는 인간이었다. 종료버튼을 눌러야했다. 그게 무엇이든 세게 눌러서 탈출할 수 있다면 온 힘을 다해 눌러야했다. 삶에 대한 종료버튼만은 누를 수 없었다. 1초 정도 그 생각을 한 순간 엄마의 살 냄새가 느껴졌으니까.
아는 기자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내가 PD가 된다고 할 때부터 우려했던 사람이었다.
“ 방송국 시험은 공무원시험, 사법고시 같은 시험과 다르다. 그런 시험들은 적게는 500명, 많게는 1000명를 뽑는다. 시간을 쏟아 붓고 공부를 한 사람이 언젠가는 붙게 되는 시험이다. 방송국 시험은 다르다. 매년 채용을 하지 않는데다 2000명중에 2명을 뽑는 시험이다. 최종에 10명이 올라간다면 그들의 실력차이는 없다. 그중에 뽑히는 2명은 그냥 운이 좋은 사람이다. 작년에 여자를 뽑았으면 올해 남자를 뽑고, 작년에 SKY위주로 뽑았으면 이번에는 지방대를 한명 뽑는게 이쪽 시험이야. 드물지만 종종 방송국 직원 자녀가 들어오기도 한다. 쉽게 말하면 로또다. 로또에 평생을 걸래?”
사실 그는 이런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계속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의 말을 부정했다. 언론고시생들이 모여 있는 카페에 올라오는 합격후기에는 ‘자신이 어떻게 노력했는지’ 중심으로 써 있었다. 떨어진 사람들은 ‘자신이 실력이 부족해서’ 떨어졌다고 믿었다. 다들 과정을 중심으로 평가했다.
그래서 나도 그런 줄 알았다. 책 《시크릿》을 항상 머리 맡에 뒀다. 그 책에 나오는 끌어당김의 법칙을 믿고 주문을 외웠다. 제발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주세요. 애처롭게도 결과는 탈락이었다. 우주까지 목소리가 닿지 않았다. 내가 노력을 안했나? 그건 확실히 부정할 수 있었다. 가방 속에 손때가 잔뜩 묻은 필기노트가 있었으니까.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다. 그제서야 그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 그동안 로또를 열심히 긁고 있었다는 것. 낮고 낮은 확률 앞에서 싸우고 있었다는 걸. 벤치에 앉아 필기노트를 들쳐보는데 큼지막하게 써놓은 글귀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 기회 역시 고정되어 개인은 출발부터 열린 미래를 갖지 못한다. 톱니바퀴 속에 자리 잡은 개인의 위치가 그의 인생전체를 결정짓는 것이다. 물론 몇몇 우발적인 성공이 아직도 자수성가라는 신화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복권을 당첨금과 동일시하는 기만과 다를 바 없다. - 《미국여행기》, 시몬 드 보부아르 』
방송국 시험의 주된 과목인 글쓰기는 자신이 있었다. 작문과 기획안을 평가하는 필기시험은 대부분 통과했다. 실력적으로 궤도 안에 올라왔다고 생각했다. 내 앞에는 열린 미래만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필기를 통과하고 면접에 갈수록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일어났다.
내 앞에는 고정 된 기회와 닫힌 미래가 있었다. 열린 미래가 있다고 여기는 건 그건 자기 합리화와 세뇌였다. 오히려 우발적인 성공을 기대하고 살았을지 모른다. 작문이나 논술에 써먹으려고 적어놓은 글감을 이제 내 인생에 적용해야 할 것 같았다. 이대로 고시생활을 계속 했다가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 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저 글귀만 사진을 찍어놓고, 옆면이 새까매진 필기노트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기도했다.
‘우주의 기운’을 운운한 사람이 크게 벌을 받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