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노호구, 호구의 길은 접자
공무원시험, 회계사시험, 임용고시 등 오늘도 많은 이들이 공시족의 길을 걷고 있다. 앞서 말한 시험들과 성격은 다르지만 나도 ‘고시생’ 생활을 3년 동안 했다. 지난한 인고의 시간을 지나면 누군가는 합격한다. 단, 아주 낮은 확률로. 합격한 사람들의 노력까지 부정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공부에 올인한지 3년 이상 지났다면 공부→탈락→공부→탈락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용기를 내야한다.
만약 내가 그때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지 않고 계속 방송3사 시험을 준비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우리엄마아빠는 뒷바라지 하느라 등골이 휘었을 것이며 나는 연애도 못하고 결혼도 못하고 글만 쓰다가 피폐해졌을 거다. 무직 노처녀는 방구석에만 쳐 박혀 있다가 어느 날 이불을 박차고 나와 외칠 거다. “나 대학원 갈래!”
엄마의 등짝스매싱보다 무서운 건, 고시공부를 계속 했다면 현재 그 조직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의 지위가 더 공고해졌을 거라는 것이다. 그곳은 극소수의 사람만 접근 할수 있는 신의 영역이 될테니. (안타깝게도 내가 준비한 방송국의 지위는 스마트폰 보급과 SNS채널의 성장으로 나날이 추락하고 있다. 키즈 유투버인 ‘보람’이의 하루 광고수익이 MBC 하루 광고수익을 넘어섰다. 앞으로 지상파 방송국은 사업다각화를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로 갈 것이다.)
현재 방송국의 위상에 대한 논의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우리나라 메이저 방송사 (KBS,MBC, SBS, EBS, JTBC) PD로 입사하는 사람은 20명 남짓이다. 매년 몇 천명이 시험을 보는데 고작 20명을 뽑는다. 심지어 매년 채용을 하지도 않는다. 공무원이나 변리사, 회계사시험도 마찬가지다. 시험 인원에 비해 합격자수가 매우 적은데 매년 신규로 도전자가 유입된다. 아무리 평생의 꿈이라고 해도 여기만 매달려 있는 게 맞을까?
장강명 작가의 저서 《당선, 합격, 계급》에는 대규모 공개시험을 쳐서 엘리트를 채용하는 시스템은 고려시대부터 내려왔다고 써있다. 고려시대 광종이 들여온 과거시험은 합격자 나이 평균이 36.4세로 10대중반에 공부를 시작해서 합격하는데 20년이 걸렸다. 청년 수십만명이 한창 에너지를 발산할 나이에 공자님 말씀에만 매달렸다. 장강명 작가도 같은 이야기를 하지만, 그 청년들이 골방에서 유교경전에만 매달리지 않고 세상에 눈을 좀 더 떴더라면 우리의 근현대사는 덜 비참하지 않았을까.
2020년이 다가오는 시점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고시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창 아이디어를 내고 활발하게 활동해야하는 청년의 시기에 많은 이들이 고시와 공채에 매달린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공시족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아 발생한 사회적 손실은 2016년 기준으로 17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당선, 합격, 계급》 발췌) 2020년을 목전에 앞둔 지금, 매년 최고 합격률을 갱신하는 것으로 보아 그 규모는 커졌으면 커졌지 작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목표를 가지고 달려가는 건 좋다. 하지만 그것에 너무 오래 매달리지 않아야 한다. 3년이상 고시나 공채형 시험에 매달리고 있다면 자기 객관화를 한번 해봐야한다. 삶의 방향을 완전히 틀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자신의 에너지의 10 중 2는 다른데 써야한다. 밥을 지을 솥을 깨트리며 돌아갈 때 갈 배를 가라 앉히며 (波釜沈舟) 계속 갔다가는 익사할 가능성이 높다. 기한을 정해놓고 열심히 달리되, 기한이 도래하면 그 속에서 재빨리 나올 수 있어야한다.
공무원 필기시험 날, 기사에 달렸던 댓글이 인상적이어서 가져와봤다.
표현이 좀 과격하지만 다 맞는 말이다.
“나이 서른쯤이고 3년 이상 한 사람들은 필독해라. 7급은 포기해라. 7급 될 머리는 이미 정해져있으니 포기해. 9급을 하되 학원 다니면서 부모 등골 뽑아 먹지 말고 하루하루 생산적으로 돈 벌어라. 공장에 가든 어딜 가든 돈 벌면서 생산적으로 인간 구실하면서 책 사보며 틈틈이 공부해라. 3년 이상 했으면 전업 수험생이든 직장 수험생이든 그 점수가 그 점수다. 공무원 시험 계속 준비해야겠으면 직장 다니면서 준비해라. 뭘 하든 인간 구실하고 살아야 부모님이 걱정 안하신다. 내 말 들어라. 등골 브레이커 장수생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