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이 올 때 가장 위험하다

나일거 같죠? 아니에요

by 시드니


살다보면 확신이 올 때가 있다. 유난히 이번엔 맞을 것 같은 느낌. 난 이게 무조건 될 거야.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 라는 마음가짐으로 달려갈 때가 있다. 되면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슬프지만 세상에 100%는 없다. 그토록 원하는 ‘그것’이 많은 이와 경쟁해야 하는 것이라면 확률은 더 낮아진다. 실력과 확신이 있어도 예상치 못한 힘에 의해 돌아가는 게 세상이다.


미국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America's Next Top Model>을 온스타일에서 한국판으로 제작한 적이 있다. 시즌1부터 시즌5까지 전 시리즈를 다 봤는데 시즌4를 가장 재밌게 봤다. 특히 시즌4에 나오는 한국모델 중에 A의 팬이었다.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을 것이다. A는 외모도 아름다웠지만 많은 미션을 통해 실력으로 검증이 되어있었다. 아마 A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자신이 아니면 우승 할 사람이 없다고.


A를 포함한 세 명이 파이널에 올라갔다. 파이널 직전 챌린지에서 우승한 A는 표정에서 자신감이 보였다. ‘어서 내 이름을 불러봐’라는 표정으로 심사위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 옆에 있는 두 명의 후보는 체념한 표정이었다. 사회자인 장윤주가 우승자의 이름을 부른 순간, 깜짝 놀라 소파에서 일어났다. 전혀 예상치 못한 B가 우승을 했기 때문에.


A 본인도 그랬겠지만 나도 그녀의 탈락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추측컨대, 마지막 미션인 광고 촬영과 잡지 표지를 B가 더 잘 찍어서 우승을 한 것 같다. 자신이 아무리 확신을 가지고 있어도, 심지어 응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도 결과는 불가항력적인 힘으로 인해 바뀐다. 사실 ‘더 잘 찍었다’는 것도 심사위원들의 주관적인 시선일 뿐인데.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고 잘난 사람이라도 합격과 불합격은 그것과 정비례하지 않는다. 스펙이 비슷한 친구와 같은 회사에 원서를 넣었는데 친구는 붙고 나는 떨어질 수도 있다. 떨어지는 이유는 생각보다 아주 사소하다. 작년에 그 학교 출신을 뽑았더니 금방 퇴사를 했다든지, 사장님 사모님과 이름이 같다든지. 탈락한 당사자는 저런 이유를 알 길이 없으므로 큰 자괴감에 빠지겠지만, 생각보다 매우 사소한 이유로 합격 불합격은 결정된다.


『 왼팔을 앞으로 똑바로 뻗어봐. 팔을 뻗은 채로 몸을 한 바퀴 돌려봐.

지금 네 주먹이 그린 원의 크기가 대충 너란 인간의 크기다.

- 《GO!》, 가네시로 가즈키 』


재일교포 3세인 가네시로 가즈키 소설의 한 부분이다. 집에서 비디오만 보고 있는 아들에게 권투를 가르치며 아버지가 한 말이다. 사람이 아무리 뛰어나도 손을 뻗은 채 그리는 원만큼의 크기를 벗어 날 수 없다. 아무리 나 아니면 될 사람이 없을 것 같아도, 나는 작은 존재다. 이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세상이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도 충격이 덜하다.


ps. 그래서 나의 충격은 매우 컸다.

이전 05화노오력하면 호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