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는 놈이 나쁜거다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반차를 내고 집에서 쉬는데 모르는 전화로 전화가 온다. 굵고 낮은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중앙지검 첨단범죄 수사부 김민재 수사관이란다. 내 계좌가 범죄조직에 도용되고 있으니 범죄자를 잡는데 협조를 해달란다. 알겠고 하니 검사를 바꿔준다. 검사는 내 핸드폰으로 링크를 하나 보내줬다. 검찰총장 직인이 찍힌 수사공문이다. 사건조사번호까지 찍혀있다. 통장에서 돈을 전부 인출해서 검사가 알려준 은행으로 갔다.
입금을 위한 서류를 작성하고 있는데 ‘입금목적’이 보였다. 검사는 범죄자가 눈치를 채면 안 되니 그곳에 ‘인테리어 잔금 납입’이라고 쓰라고 알려줬다. 범죄인데 인테러이? 갑자기 의심이 됐다. 전화를 켜놓은 채로 검색창을 띄웠다. 의심을 한 순간부터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수사관이 말했던 단어를 몇 개 검색했다. ‘보이스피싱 사기!!'라는 제목이 보였다. 썸네일은 내가 봤던 수사공문이었다. 온몸에 힘이 풀렸다.
전화기를 들어 112에 신고했다. 경찰은 경찰서로 올수 있는지 물었다. 출근까지 시간이 남아 경찰서로 갔다.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경찰서였다. 동작경찰서 3층으로 안내를 받아 올라갔다. 경찰은 신원조회를 해보더니 조서를 썼다. 오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모두 설명했다. 1시간 동안 사기조직에 놀아났다는 생각에 분했다. 그리고 전화로 돈거래를 하려했던 내가 너무 한심했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나를 보며 민중의 지팡이는 친절하게 말을 건넸다.
“속이는 놈들이 나쁜 거 에요. 진정하세요.”
보이스피싱만큼 무서운 건 ‘마음피싱’이다. 보이스피싱은 현금을 날리지만 마음피싱은 인생을 날릴 수도 있다. 예전에는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 서점에 갔지만 요즘엔 유투브에 접속한다.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채널은 바뀌었지만 ‘노력하면 될거야’, ‘극복하면 돼’라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다들 ‘본인처럼’ 잘되기 바라는 마음에서 ‘노오오력’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 사람은 널 알지 못한다. 그들이 말하는 ‘열심히 살아’는 ‘밥 한번 먹자’만큼 무심하다.
아는 PD중에 지방대 출신이 있다. 그 학교 출신 PD가 전무하기 때문에 강의 요청이 쇄도한다고 한다. 후배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줘야하니까. 사석에서 그 PD는 강연 하러 갈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토로했다. 자신은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 일 뿐인데 그 많은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는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지금 잘난 척 하는 거야?’라고 핀잔을 주긴 했지만 그 PD의 말은 일리가 있다. 헛된 희망을 품게 해주는 게 과연 올바른 조언일까.
하지만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 하세요. 할 수 있어요!’라고 하며 파이팅을 외친다. 이미 이룰 걸 다 이룬 선배는 무심하다. None of my business! 내 일이 아니니까. 무심함에 속아 넘어가기엔 지금 우리 사회는 극심한 경쟁사회다. 합격하는 사람보다 떨어지는 사람이 해운대 모래알보다 더 많다. 이걸 인지하지 못한 채 가이드대로 노오오력만 하는 건 바닷물에 소금 뿌리기가 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