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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Nov 20. 2019

바닷물에 소금 뿌리기

널 교육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니




책임회피형, 감정호소형 인재(人災)에게

호구잡히지 말자.




"선배님! 현지 세관에서 연락이 왔어요.ㅠㅠ"

점멸하는 메신저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내용인즉슨 5천만 원 상당의 수출품이 세관에 걸렸다는 거다. 한두 번 나갔던 물건이 아닌데 세관에 걸릴 리가? 일단 후배를 내 자리로 불렀다. 침착하게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구구절절 무슨 내용인지 파악이 어려웠지만 대화 내용은 이렇게 정리가 가능했다.

"난 모르겠으니 네가 알아서 다 해줘."


일단 자리로 돌아가서 현지에서 받은 메일을 전달해달라고 했다. 메일을 기다리면서 묘하게 긴장이 됐다. 그 아이는 영업담당, 나는 제품 담당. 문제가 생기면 나도 안전하지 않았다. 우리의 명줄이 달린 메일을 찬찬히 봤다. 현지 세관에서 해당 제품의 '수분활성도'를 제출하라는 내용이었다. 내보낸 물건은 pH4.0 미만 제품로 현지 규격상 '수분활성도'가 필요하지 않았다.


관련 메일을 영업 담당자와 바이어에게 동시에 보냈다.(우리회사는 원래 영업담당이 창구역할을 해야하지만 후배가 대응을 못할 것 같아 대신 보냈다.)  반나절 후 바이어가 메일을 보내왔다. 제품과  현지 규제에 문제가 없고 세관 담당자가 바뀌면서 생긴 해프닝이라는 거였다. 물건은 당일 통관이 되어 업체에 인계됐다. 해당 영업 담당이라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규제지만 뭐, 모를 수도 있다. 우리가 속한 해외사업부문은 업무 특성상 경영, 무역 전공보다는 외국어 전공들이 훨씬 많으니 모를 수 있다.  


통관 문제가 많이 터지기 때문에 해외사업부문으로 전입을 오면 통관 대응 매뉴얼부터 교육받는다. 그 아이가 물어본 질문은 친절하게 매뉴얼 하단 사례에 쓰여있었다. 그래도 모를 수 있다! 나도 한 때 신입사원이었으니까. (비록 그 아이는 4년 차지만) 한번 더 이해하고 현지 품질규격 관련 규제 집을 번역에서 그 후배에게 넘겨줬다. 후배는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그 사건이 있고 얼마 되지 않아 또 그 후배가 SOS를 쳤다. 이번엔 완제품 포장이 끝나 우리 창고로 들어온 물건에 대한 거였다. 선적서류까지 준비를 해놨는데, 현지 바이어가 갑자기 주문을 취소했다는 거였다. 발주 관련 건이라 SOS가 나에게 올 건 아니었는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나에게 연신 "ㅠㅠ"를 날리던 아이가 본인의 부장에게 제품부서에 "포장해달라고 한 적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책임을 회피하고 싶었던 거다.


여기서부터는 아량 넓은 선배가 아니라 칼과 방패를 든 적이 된다. 해당 제품 관련해서 모든 메일을 긁어모았다. 유난히 그 제품이 신경 쓰이고 기분이 싸해서 온라인, 오프라인을 불문하고 여러 번 확인했었다. 그때마다 그 후배는 "네! 선배님! 하시면 됩니다!"라고 했다. 오히려 빨리 좀 해달라고 채근했다. 주변 사람들도 다 들었다.


결국 그 아이는 징계를 받고, 연말 평가에서 꼴찌를 차지했다. 진급을 앞둔 연차였는데 안타까웠다. 기가 죽어있는 게 눈에 보여서 달래줄까 싶어 1층 카페로 불렀다. 자리에 앉자마자 아이는 눈물을 터트렸다. 다른 사람이 보면 혼내고 있는 것 같아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그 아이는 눈물을 훔치더니 한마디를 했다.

"근데, 정말 저는 포장해달라고 안 했거든요."


'또롱'하고 얼음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 후배에 대한 동정과 염려로 가득했던 내 심장이 차갑게 얼어버렸다. 동정과 염려는 공포와 혐오로 변하고 있었다. 징계를 받고 그렇게 혼나고도 아직까지 변명을 하고 있다. 괜히 기분이 안 좋아지려고 해서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서 올라왔다. 


커피를 내려놓으니 컴퓨터 바탕화면에 반짝이는  몰디브 해변이 보였다. 이 후배를 더 가르치는 건

"바닷물에 소금 뿌리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사업실 소속 9년 차. 해외 기획, 해외영업을 거쳐 이제 Brand 업무를 하고 있다. 기획업무를 할 때는 모회사와 일했고, 영업할 때는 바이어랑만 소통하면 됐다. 육아휴직 후 Brand Manager로 업무가 변경되었는데 소통해야 하는 사람들이 비교도 못하게 많다. 영업, 디자인, 연구소, SCM(OEM), 제조. 여기서도 In-house, Outsourcing으로 나뉘면 파트너가 2배 많아진다.


많은 사람과 일하다 보니,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고 징계대상 명단에 이름을 빼놓지 않는 사람이 보인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열심히 하지 않는가? 보면 매일 야근하는 사람들이 이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이렇다.


1.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뇌에 저장 기능이 없다)

2. 집단지성을 믿는다.

   (라고 쓰고 남이 해결해주길 바란다)

3. 잘 웃고 잘 운다.

   (감정 호소의 오류를 범한다. 회사는 냉정한데.)


마지막 특징은 '개선의 여지'가 없다. 그게 가장 슬프다. 아무리 교육을 하고 이해시키려 노력해도 초점 없는 눈으로 듣고 있다. 침을 쏟으며 뱉어내는 단어가 한귀로 들어가 한귀로 나가는 게 눈에 보인다.


이런 '바닷물의 소금'형 인간들과 일 할 때는 명심해야 할 게 있다. 이들을 무시하면 안 된다. 오히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들과 오가는 메일은 Outlook을 사용하거나 따로 저장을 해놔야 한다. 마음 같아서는 매번 녹취를 하고 싶지만, 그게 안된다면 회의 내용을 기록해두고 공유해둔다. 증언보다는 기록의 힘이 훨씬 더 크고 효력이 있다. 책임 회피하는 사람들은 옆에 있다가는 뒤집어쓰기 딱 좋으니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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