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韓食)
한식.
한국을 떠나오기 전까지 20여 년을 매일같이 먹던 밥과 반찬.
그 작고 소중한 한상 차림이 그리워질 줄이야.
매번 올라오는 흔하디 흔한, 지천에 널린 음식들.
엄마가 차려주는 그 밥상이 지겨워서 매번 피자, 햄버거, 파스타를 찾았었다. 소중한 줄 모르고.
처음엔, 너무나 행복했다. 내 입맛보다 짠 것을 제외하면, 한 집 걸러 한 집이 피자집 햄버거집이었고, 집에서 만들어 먹더라도 재료가 저렴해서 부담이 없고 처음 보는 신기한 재료들로 가득한 이 세상은 나에게 너무나 즐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주기적으로 먹어 주던 나의 소울 푸드인 삼겹살과 소주를 마음껏 먹지 못한다는 것이 나를 힘들게 할 줄이야.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호주는 가정을 이루거나 자가를 마련하기 전까지는 비싼 주택 비용을 여러 명이 한집에 살며 나누어 내는 공유 주택의 형태가 보편적이다. 15년 전, 이곳에 잠시 다니러 온 나도 다른 사람들과 집은 물론 방과 주방과 냉장고까지 셰어 하는 삶을 살았었다. 그러나 생활은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 먹기 쉽지 않았고 특히 보통의 아파트는 파이어알람이 있어 조리 시 연기가 많이 나는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고 특히나 기름이 여기저기 튀는 삼겹살은 더더욱 어려웠다.
또, 재료 공급의 한계도 있었다. 그 당시에는 한식당을 가도 배추김치 만나기가 쉽지 않았으며 보통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양배추김치를 내줬었다. 또 서민의 술 소주도 양주로 둔갑되어 한 병에 15불에 팔리고 있었다. 비싸도 다행인 식당이었던 것이, 소주 수입이 원활하지 않아 한식당 중에서도 소주가 없는 식당이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 당시에는 한 병에 30불이었어도 누군가는 사 마셨을 것 같다.
한 가지 좋은 점도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삼겹살에 대한 수요가 지금처럼 많지 않아서 우리나라보다 삼겹살 가격이 엄청 쌌다는 것. 그래서 삼겹살을 슈퍼에서 사서 친구들과 공원 바비큐 시설에서 구워 먹고는 했다는 것. 물론 우리가 먹는 구이용 삼겹살과는 다르게 엄청 두껍게 컷팅되어 있어서 직접 알맞은 두께로 손질해서 먹거나 겉이 타는 것은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이것도 바비큐 용품을 바리바리 싸 들고 가야 했고 날씨에 따라먹을 수도 먹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엄청 수고롭고 자유롭지 못했다.
원래 사람은, 못하게 하는 것을 더 하고 싶어 하고 가지지 못하는 것을 더 가지고 싶어 하는 동물이지 않았던가.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늘 내 곁에 있어 너무 흔해 무시하고 멸시했던 것들이, 이제는 ‘안’ 먹는 게 아닌 ‘못’ 먹는 것들로 변해 가면서 식성이 점점 변해가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이것들을 좋아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눈치채지 못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