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문자
지난해 부고 문자를 받았다.
부고 문자의 발신자는 ‘엄마’였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 전해에는, 작은 시아버님이 또 그 전해에는 작은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내 나이가 나이인 만큼, 부모님과 친척 어른들 그리고 친구들 부모님이 자주 편찮으시고 돌아가셨다는 소식도 간간이 들려온다.
이때가 해외살이에 가장 회의감을 느낄 때가 아닌가 싶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의 경조사를 함께하지 못할 때. 나는 우울해진다. 무엇을 위해서 나는 이곳에 온 걸까. 가지 못해 못내 미안한 내 마음 편하라고, 모두들 “괜찮아. 마음만이라도 고마워.”라고 오히려 위로해 준다. 경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마지막 가시는 길을 함께 해 드리지 못했다는 것은 마음의 짐으로 남게 된다. 나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해외 동포들이 함께 가진 애환이 아닐까.
당장 한국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갑자기 휴가를 내고 달려갈 수도, 휴가를 받을 수 있더라도 비행기 표를 구하기 쉽지 않고 가장 빠른 비행기 표를 구했다 하더라도 장례식은 이미 끝이 나 있을 것에 3일 내내 마음이 너무 무겁고 불편하다.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다는 것 조차가 누군가에게는 사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이민이 완벽하게 이루어지기 전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도 당분간은 대부분의 주머니 사정이 그렇게 넉넉하지 못하다. 나 또한 그랬다. 비행기 삯, 일을 하지 못해 줄어든 수입, 주마다 나가는 렌트비와 보험비 학비 등등 숨만 쉬어도 사라지는 돈을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항상 나는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곳에 살기로 한 이상, 내가 살기 위해서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생각 난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안녕, 잘 지내니?
답이 없었다.
그냥 답이 없으면 없는 대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바쁜가 보다.
또 다른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안녕, 잘 지내니?
그러자 몇 시간 뒤에 답이 왔다.
-응, 나는 잘 지내.
오랜만에 연락했지만 친구와 나는 자연스럽게 서로 안부를 묻고, 서로의 일상을 나눴다. 우리는 역시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친구에게 답이 없는 아이의 안부를 물었다. 그 아이에게도 며칠 전에 문자를 보냈는데, 답이 없다고. 혹시 소식을 알고 있냐고. 그러자 뜻밖의 말을 꺼냈다.
그 친구는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없다고.
나는 믿을 수 없는 소식에 깜짝 놀라 다시 되물었고 그 친구의 소식과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나와 소식을 나눈 것은,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
우리는 평소처럼 안부를 물었고, 그녀는 회사 생활과 대인관계가 힘들다고 했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몸도 많이 안 좋아졌다고. 생각해 보니, 이곳에 있었을 때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고. 나처럼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당장 오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때 한참 코로나가 유행이어서 조금만 참자고, 여행길이 열리면 일단 쉬러 오라고 했다. 기다리고 있겠다고. 도와주겠다고.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하고 그녀는 힘을 얻은 것 같았다. 며칠 후에 그녀는 영어공부를 시작했고, 이곳으로 올 준비를 하는 듯 보였다.
나는 안심했다. 다시 돌아왔구나. 힘내, 친구야. 그리고 나는 또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고, 그렇게 나와 연락이 끊어진 몇 달 사이에. 그녀는 스스로 세상을 버렸다. 많은 자책을 했다.
‘한번 더 연락해 볼걸.’
그랬다면, 그 친구는 아직 내 곁에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친구가 갑자기 떠난 후, 나는 후회를 남기지 않기로 했다. 여기서, 내 주변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보기로 했다.
‘가시는 길을 지켜드리는 대신 살아계실 때, 건강하실 때 한번 더 돌아보자.’
수시로 생각 나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너무나 반가웠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었다. 특히 어르신들은, 고맙지만 국제전화비가 걱정된다며 빨리 끊자고 성화였다. 하지만, 그것도 금방 익숙해졌고 자주 하는 통화만큼 심리적 거리도 무척이나 가까워져 있었다. 나도 그들에게 의지하고 위로받았다. 너무나 슬픈 이야기이지만, 요즘 사람들은 다들 너무 바쁘고 치열하게 살고 있어서 같은 한국에 살고 있어도, 특별한 날이 아닌 이상 전화를 하거나 자주 만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걸까. 힘든 일이 있어도 전화기만 만지작 거리다 혼자 견뎌내고는 한다. 갑자기 전화해서 이런 말을 해도 될까. 미안해서 내 맘을 누구에게 터 놓고 의지하기도 쉽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친구들이 먼저 연락하기도 한다. 친구들만의 대나무 숲이랄까. 물리적 거리 때문인지, 나에게 말하면 아무 곳에도 새어나가지 않을 것 같은 든든함이 있단다. 그래서 나는 가끔 아무 날이 아니어도 친구들의 안부를 묻는다. 나에게 의지하라고. 그리고 나도 너한테 의지하겠다고. 서로 지켜주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