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ADHD [주의력 결핍/과잉행동 장애(Attention Deficit/Hyperactivity Disorder, ADHD)]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한 4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나는 호주에서 셰프로 일하고 있는데, 내 직위에서 가장 많이 하게 되는 일이 팀을 꾸리는 일이다. 적절한 포지션에 알맞은 사람을 뽑아 배치하고 교육하고 지원하는 일. 그래서 팀에 결원이 생기면 공고를 내고 레쥬메(이력서)를 받아 인터뷰 날짜를 정하고 인터뷰 후에 트라이얼을 통해 알맞은 사람을 뽑는다.
4년 전 그날도 열댓 명의 지원자를 추려내어 인터뷰를 진행했다. 모든 인터뷰가 그렇듯이, 시간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지원자도 있었고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응, 너는 아니야.'
'하.. 너도 아니야.'
그렇게 며칠간 인터뷰는 계속되었고, 그러던 어느 날, 너무나 예의 바른 파란 눈의 청년이 내 앞에 앉아 있었다. 경력은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조금 짧았지만, 정돈된 어피어런스, 호주 내에서 일을 할 수 있는 비자컨디션, 학위서까지 웬만한 조건은 다 갖추어져 있었고 무엇보다 인터뷰와 트라이얼(보통 2시간에서 3시간) 내내 오지(호주인)답지 않은 예의 바른 태도까지 너무 맘에 들었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아이를 'PICK' 했다.
일주일 뒤, 첫 출근 날.
이 아이는 정해진 출근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아직 30분이나 남았는데! 커피나 한잔하고 들어갈까?"
나는 일찍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아이가 너무 기특했고, 같이 일하는 동료 셰프들과 인사도 나눌 겸 아이를 카페로 데리고 갔다.
"오늘 첫날이라,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어서 조금 일찍 나왔어요."
"응, 그랬구나. 집이 멀지는 않던데!"
"네, 그래서 걸어왔어요."
믿지 못하겠지만,
이것이 그 아이의 마지막 정시출근이었다.
그날 이후, 그 아이는 매일 5분 10분씩 늦게 출근했다.
아주 많이 늦지도 않는다.
항상 5분, 10분.
말을 할까 말까 하다가, 일단 조금만 더 지켜보기로 했다.
사실, 지각 말고도 조금 이상한 낌새가 있기는 했다.
벌려 놓은 일이 너무 많다던지, 부르는 소리를 잘 못 듣는다던지, 정해진 플레이팅을 잘 기억 못 한다든지.
'그냥 일 모지리겠지. 경력이 없어서 그런가. 시야도 좁고 상황판단을 잘 못하네...'
그런 불신이 쌓여 가면서 그 아이는 그 녀석이 됐고, 그 녀석은 팀원들을 아주 많이 힘들게 했다.
"셰프님, 쟤는 1인분을 못해요. 쟤 때문에 프랩(준비)도 안 되고 오더도 못 빼고 같은 시급 받고 이렇게 일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셰프님 오피스 가셨을 때, 저 녀석 화장실 가서 안 돌아왔어요."
"쟤한테 일 시키면 내일 저녁에나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 그전에 음식 다 상할 것 같은데요?"
각종 고자질과 불만으로 하루가 마감됐고, 그렇다고 다 큰 성인을 불러다가 기본 중의 기본을 초등학생처럼 야단치며 가르칠 수도 없으니 답답한 나날들이 이어져갔다. 해결책은 없을까? 그 후로 우리는 그 녀석을 두고 몇 번의 팀 회의를 했고, 아이러니하게도 팀의 결론은 '내 새끼 그저 타이르고 가르치자'였다.
왜?
애는 정말 너무 착했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팀원들도 너무 착했었던 것 같다.)
팀원들은 그 녀석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주고 기다려 주기로 했다.
나는 조금 안도했다. 다시 인터뷰를 보고 트레이닝을 시키는 과정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귀찮았다. 가뜩이나 할 일이 많은데 하나 더 보태기 싫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녀석의 오프(휴일) 다음날, 늦어도 15분 이상 늦지 않던 녀석이 아예 오지 않았다.
대신, 노란 머리 중년의 여자가 나를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그 아이의 엄마입니다."
자신을 그 아이의 엄마라고 소개 한 여성은 나에게 한 보따리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아이가 여기서 일 한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그 아이가 일을 잘하나요? 팀원들과 문제는 없나요? 여기서 어떤 일을 주로 하고 있죠?"
"그 아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워낙 산만하고 정신없고 적응을 잘 못해서 걱정입니다."
여자는 조금 머뭇거리더니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실, 이렇게까지 길게 한 군 데서 일을 하는 게 처음이라서요.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인사도 드릴 겸 찾아왔습니다."
그날의 학부모 상담은 여기까지였다. 면담 아닌 면담을 어머님과 나눈 뒤 나는, 여기가 무슨 학교도 아니고 직장 상사한테 인사를 오는 어머니라니. 참 특이한 집이네.라고 생각했다.
그날의 대화 이후로 아이의 어머니는 나 혹은 사무실로 가끔 전화해 "아이 출근은 잘했나요? 오늘은 몇 시에 끝나나요?" 등을 묻곤 했다.
그런 이상한 나날들이 이어지다가, 육아에 힘들어진 팀원들은 급기야 그 아이를 놓아주기로 했다. 더 이상 발전이 없을뿐더러 더 이상 지속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그 아이에게도 힘들 것 같다는 결론이었다. 말이 좋아 놓아주는 거지 그냥 '포기'였다.
아이에게 노티스를 주고,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이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그동안 우리 아이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느끼셨을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우리 아이에게 병이 있어요. ADHD."
처음 듣는 단어였다. 아이들이 간혹 주위가 산만하고 특별해서 선생님의 케어가 조금 더 필요한, 그런 게 있다는 소리는 얼핏 들은 것 같은데. 얜 벌써 스무 살이 넘었는데 그게 무슨 소린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그 녀석은 내 기억 속에 '이상한 아이'로 남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