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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가 뭐길래(2)

또 다른 특이한 녀석.

by Sydney J


예전과는 다르게 지금은, ADHD라는 병이 널리 알려져 스스로 자가 진단을 내려보기도 하고 심각하게 일상생활이 힘든 경우에는 정신과 상담을 통해 약물치료로 효과를 보기도 하는 병(?)이 됐다. 조금만 주의가 산만하고 집중을 잘 못하기만 해도 "너 ADHD 아니야?"라고 가볍게 툭툭 내뱉기도 했다. 정말 ADHD 환자들이 얼마나 힘든 줄도 모르고.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같이 일하는 웨이팅 스텝 중에 한 사람이 ADHD이며 약을 복용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참 용감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병을 인정하고, 치료하며, 사회생활까지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다른 친구가 그 사람에 대해 말해주기 전 까지는 그런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가벼운 병이라고 생각했었다. 약만 먹으면 나을 수 있는 병.


또 다른 그 녀석이 나타나기 전까지 나는 4년 전의 그 녀석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이번에는 건장한 한국 청년이었다. 호주에서 태어난 한국 아이. 영어는 물론이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한국말도 가능한 아이. 아시아인답게 예의도 바른 아이.


'오케이. 얘다.'


경력이 없는 아이라 트레이닝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가르치고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

근데, 기억을 못 했다. 레시피도 과정도 그냥 그다음 날이 되면 어디에 두고 오는지 백지상태가 되어 있었고 처음 듣는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똑같은 단순 반복 작업이었는데도 매일을 처음처럼 가르쳐야 했고, 작업 순서를 스스로 짜지 못해 일일이 지시해줘야 했다.


'주방일이 처음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다행인 것은 포지션이 주방 보조였기 때문에 셰프로서의 자질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기대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럭저럭인 날 들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그 녀석에게 4년 전 그 녀석이 살짝살짝 보이기 시작했다.


"불고기 알지? 지금 그거 재워야 하니까 쿨룸에서 비프슬라이스 꺼내서 양념 만들어서 재워줘."

"예, 쉡."

그 일을 지시하고 40분쯤 되었을까? 지시한 일을 끝내놓고 다음일을 지시받아야 할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를 찾아 주방 한편으로 갔을 때 나는 머리가 하얘졌다.

불고기용 고기(얇게 슬라이스 된)를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펼쳐 떼어내고 있는 아이를 발견한 것이다.


"너 지금 뭐 하니? 아직도 안 끝났어?"

"고기를 한 장 한 장 떼어내는 중이에요. 이게 너무 재밌어서요."

"......."


어렴풋이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도 오늘과 같이 똑같이 불고기를 재우라고 했는데, 5분도 안돼 일이 다 끝났다고 다음 지시를 받으러 왔었다. 아무리 신이라도 이렇게 빨리 끝낼 수는 없는데 벌써 다 했다고? 이상해서 가보니, 정말 가관이었다. 냉동실에서 꺼낸 꽝꽝 얼은 슬라이스 비프에 그대로 양념을 부어 빨간 얼음덩어리가 간장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처음 요리하면 이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얘야, 이렇게 하면 간이 베이겠니? 고기 사이에 양념이 들어가서 재워져야 하는 건데. 저 얼음덩어리 건져내서 해동이 완전히 되면 고기 흩어서 양념에 다시 재워놔. 모르면 선배들한테 물어보고. 다음번엔 조금 더 꼼꼼하게 체크해야 해."라고 말했다.


헐, 내 잘못인가? 고기 흩어 놓으라는 말, 그 말 때문에 저렇게 한 장 한 장 떼어내고 있었단 말인가?


또 다른 날에는 크로켓을 튀겼는데 결과물이 거뭇거뭇하고 속이 텅 빈 강정이 되어서 나왔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직원에게 물었더니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눴고 그 아이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너 지난번에 먹어본 크로켓 기억나지?"

"네, 반 잘린 거요."

"그래 하나는 너무 크니까 튀겨서 반 잘라서 먹기 좋게 나가면 돼. 바트에 담에 놓고 나가기 전에 불러."

"네."


문제없는 대화였다.


그래서 이번엔 아이에게 물었다. 크로켓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반 잘라서 나가라고 하시길래 잘라서 튀겼습니다. 어차피 반 잘려서 나가니까요 시간이 절약차원에서."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튀기고 반 자르나, 반 자르고 튀기나 그게 그거 아니냐는 말이었다.

그럴 수 있다. 실수하면서 배우는 거니까. 그래서 cooking method(순서/과정)가 중요한 거라고. 가르쳐 주고 배우면 되는 거니까.

근데,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그러고는 내가 텅 빈 크로켓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냐고 물었다.

내가 기대한 답은, 고객에게 서비스하지 못하니(상품가치가 떨어지니) 새로 조리해야 합니다였다. 너무 상식적이고 평범한 대답. 그런데 그의 대답은 나를 한 번 더 기암 하게 만들었다.


"안에서 내용물이 나와 기름에서 춤을 추고 있어서 너무 재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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