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종료하시겠습니까?

나의 서툰 사랑을 보내주며...

by 돼지

시작하면서...

이 글은 실화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기억의 왜곡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의 서툰 사랑을 보내주며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사회 초년생일 때이다. 같은 업계의 한 선배가 소개팅을 해준다고 나섰다.

"약속시간을 딜레이(delay) 해야 할 것 같아요."

버스를 타고 가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그분과의 첫 통화였다. 딜레이라는 단어를 듣고 조금 웃음이 났다. 업무용어는 아니지만 꼭 비행기나 선박의 도착시간을 조율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래도 업무가 그런 분야였기에 습관적으로 나온 듯했다.

신촌에서 고기를 먹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던가. 아이스크림의 값은 내가 내고 싶었는데 그는 넣어두라고 했다.

연하에게 호되게 당했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나는 나이 차이가 꽤 많은 분과 만남을 가졌다. 연애에도 둘만의 속도가 다를 수 있다. 맞다. 우리 둘은 달리는 속도가 같지 않았다. 당시 연인관계라고 생각했던 나의 착각은 앞으로의 시련을 알지 못했다. 아직도 그분이 날 어떤 존재로 인식하며 만남을 가졌는지 알 수 없다. 그분과 나의 생각이 엇갈리고 있다는 걸 나는 많은 시간이 지난 후 받아들였다. 불안한 우리 관계로 내가 많이 힘들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분의 결혼소식이 들려왔다.

굉장히 놀랬고, 나는 그분에게 아무런 존재의 가치가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짧은 기간 동안 진심이었던 나의 마음에 균열이 일어난 채 나의 연애는 끝이 났다.

시간이 흘러 이메일이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 그분이었다.

내가 맞는지 확인하는 이메일이었다. 나는 답변하지 않았는데 한통을 더 보내셨다.

"미안하다."

뭐가 미안했을까? 시간이 많이 흘러 기억도 흐려지던 나에게 뭐가 미안했을까.

나는 답변하지 않았다.


많이 울었고, 힘들어하는 날이 지속됐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똑같은 선배가 다른 남자를 소개해주셨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이승기를 닮았다며 또 한 번의 자리를 만들어주셨다.

신촌의 한 고깃집에서 나는 주선자인 선배와 그분을 어색하게 만났다. 말을 별로 하지 않았던 나와 달리 선배와 그분은 대화를 많이 했던 게 기억이 난다. 나는 그분의 명함을 받아 조용히 내려다봤고, 두 분이서 하는 얘기를 듣기만 했다.

"고마워요."

식사를 마치고 돌아서는 선배에게 그분이 우렁차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 둘은 자리를 새로 옮겼던 것 같다.

아이스크림을 먹었던가. 첫 만남 후 늦은 시간 헤어지던 나에게 우유를 사줬던가. 버스에 탄 나를 배웅하며 창밖으로 활짝 웃던 그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사실 앞에 만났던 분이 나에게는 큰 상처였다. 새로 만난 분을 보면서도 그전 분이 생각이 났다. 아마 그분도 그런 나를 바라보며 힘들었을 것이다. 연락이 뜸했던 기간을 지나 다시 전화가 와서 만나기도 했다.

마음을 못 잡고 크게 한번 헤어진 적이 있었다. 이후 내가 먼저 연락해 다시 만나자고 했다.

술에 취한 나는 지하철을 탔고 그는 문 밖에서 씁쓸한 웃음을 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그때는 조금 서글펐다.

여기서 사랑에 대한 명언이 하나 있지 않나.

헤어진 사람은 다시 만나도 똑같은 이유로 멀어진다고 말이다. 이미 부서진 신뢰를 바로잡기는 어렵다.

나 또한 그 한계에 부딪혔다. 마지막까지 나는 자존심을 내려놓으며 붙잡았다. 그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선까지 나를 받아줬다.

어느 날 더 이상 나의 전화를 받지도,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이별이었다.

시간이 흘러 그분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본 적이 있다. 해외 어딘가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밝게 웃고 있던 모습을 말이다. 행복해 보였다. 누군가를 만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해 줄 수 없던 위로를 다른 누군가 해주고 있었을까?

다시 시작하는 그를 보며 나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구질 구질하게 마지막으로 문자를 보낸 날도 있다.

기억이 잘 안 난다.

아마 잘 지내고 있냐는 물음표였을 테다. 대답이 왔었던가?

시간이 흐르면 점점 무뎌지긴 한다. 가끔 그때의 나의 시계를 되돌아 감다 보면 그 순간의 감정이 오롯이 전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좋은 이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날 그는 나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일 외에 수영, 독서로 시간을 보내고 어학원을 다니며 자기 계발에 앞섰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 또한 따라 했다. 바쁜 일정에 나를 껴 맞추는 느낌이 들어 서운하긴 했다. 그분의 라이프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이제 그런 나의 열정은 사그라졌지만 활기 넘쳤던 20대 후반은 멋있는 한 페이지로 기억된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어느 날 바쁘게 사는 나의 모습을 보며 한 친구가 물었다.

순간 나는 그 사람 덕분에 시작한 자기 계발이 잊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나는 친구를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글을 마치며...

벌써 20년도 더 된 이야기다. 사람은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사랑, 참 어렵다.


작가의 이전글친언니 생일에 입원하는 갑상선암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