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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 Jul 10. 2022

다 다른 용기의 크기

살면서 한 번쯤 내가 가진 감정 용기의 크기는 어떨까, 작나? 혹은 클까? 생각해보고 의문을 가져 본 기억이 있나요?


저는 매일 감정이라는 소용돌이에서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크기가 얼마나 될까 생각하곤 합니다.

내가 가진 감정의 크기와 용기의 공간을 생각하면


나는 그리도 넓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울한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부단히 노력합니다. 내 감정을 금기시 여기며 어떻게든 감췄습니다. 그럴 때마다 감정은 반동 작용으로 더 큰 아픔을 줄 때가 있어요.


행복한 감정은 꽉 끌어안으면서 그 외에 감정들은 인정해주지 않아요.



저는 가끔 용기가 큰 사람들을 보곤 합니다.

그들은 느껴지는 감정들을 받아주고 찰나의 순간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아프면 아픔이라는 것을 용기 안에 담아두고

화가 나면 그 화를 힘껏 안아주어

자신의 방식으로 다독여 줍니다.


저는 그들이 부럽습니다.

큰 용기를 가져서 부럽기도 하지만, 그들이 가진 감정 이해도가 정말 부럽습니다. 감정 이해도는 자신감과 자존감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용기 크기와 상관없이 담아내고 승화하는 능력이 다르다 생각합니다.


감정 용기가 달라도 괜찮다며 웃고 있는 ‘왜 나는..’ 말을 잘하지 않는 것 같아요.

반면 저는 그런 말을 살고 삽니다.



처음 저는 이 글을 쓸 때 제 용기가 작아서 그렇습니다.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어요.

쓰다 보니, 하루가 허무하게 지내도록 우울해하며 괴로워해 보니 진짜 기쁜 일도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우울하니까 이것밖에 못해.

우울해서 난 지금 어려워.


이런 핑계들로 주변을 막았습니다.

핑계와 사실은 다른 것들은데…, 그럴 수 밖에 없을 때와 핑계는 너무나 다른 문제같아요.


지금 전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용기가 작아서 내 감정이 안 담겨!


제가 부러워한 그들은

용기의 크기가 아닌 자신을 믿었습니다.

앞으론 저도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나는 이것밖에 안 돼.’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최선을 다 합니다’라고


이야기를 날 수 있도록.



그럼 무엇이 달라질까 싶겠지만

아마 용기의 크기와 넓이, 깊이를 키워가며 사는 것 아닐까요?




무게에만 초점을 맞추면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핵심을 봐야 해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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