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가 비를 맞이하는 자세
반쯤 눈을 뜨고도 한 번쯤은 더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할 수 있는 아침, 쉬는 날의 아침입니다. 게다가 빗소리가 들려오고, 어둑어둑하기까지 하니 다시 청하는 잠이 더욱 꿀맛 같은 그런 날이지요.
그렇게 한 숨을 더 자고 일어나 시작하는 우리의 대화는 "아침 뭐 먹고 싶어?"로 시작됩니다.
이 질문을 던지고, 냉장고에 요리할 재료가 거의 없다는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 순간 남편은 "음... 국밥?"이라고 대답을 하네요. 재료도 없는데 하필 국밥이라니... "국밥은 안돼"라고 하기에는 이미 오늘은 국밥이 딱이다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남편, 그리고 국밥을 끓일 수 있는 재료는 조금 남은 콩나물과 시어져 가는 김치뿐. 무슨 미션이라도 되는 냥, 멸치 무육수를 넣어 새우젓으로 간을 하고 김치와 콩나물을 넣어 콩나물 김치 국밥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대단한 국밥은 아니지만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씨에 먹으니 별거 안 넣은 소박한 이 국밥도 참 맛이 있네요.
또 어느 날의 흐린 날, 왜인지 김치 수제비가 너무 먹고 싶어서 반죽을 하고 냉장고에 넣어 숙성을 시켰습니다. 쫀득쫀득하고 칼칼한 김치 수제비가 하필 왜 이 더운 날에 먹고 싶은지. 그리고 그걸 또 꼭 먹어야 하는 스스로도 참 극성이다 싶지만, 이미 반죽은 냉장고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지요. 오늘은 국물보다는 건더기를 좋아하는 남편의 취향에 맞춰서 약간은 찌개 느낌으로 끓였습니다.
팔팔 끓인 수제비를 푸짐하게 담았습니다. 더위를 워낙에 심하게 타는 남편 때문에 이제는 에어컨을 틀어놓고 먹어야 할 것 같기도 해요. 어쨌든 뜨거운 수제비를 후후 불어 가면 먹는 시간입니다. 반찬이 필요 없는 이 한 그릇을 시원하게 먹으니 기분이 너무 좋네요. 숙성을 조금 길게 했더니 더욱 쫄깃하고요.
그리고 우리 집 짬뽕이 빠질 수 없겠지요. 둘이 먹는데 아낄 것이 없습니다. 재료들 팍팍 넣어 푸짐하게 한 그릇씩 하고 나면 비 두 번 왔다가는 다이어트는 먼 산으로 가겠다 싶어요. 요즘 다이어트하겠다고 저녁을 안 먹겠다는 터무니없는 선언을 한 남편이 생각이 납니다. 아, 뒤에 보이는 방울토마토는 후식인데, 방울토마토를 껍질을 벗겨서 매실액+물 살짝 넣어 절여두고 먹으면(냉장) 시원하고 건강한 디저트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부침개. 엄마가 부침개를 좋아하셔서 그런지 저도 출출할 때나 비가 올 때면 부침개를 자주 부치는 것 같습니다. 흐리고 비 오는 날 더 맛있는 부침개지요. 새우를 갈아서 새우가루를 반죽에 넣으면 고소하고 향이 좋은데 남편이 이렇게 해주는 걸 좋아합니다. 해산물이 없을 때 특히 유용해요. 그리고 기름은 항상 넉넉히, 처음에 기름은 꼭 달구어서 반죽을 넣어주시는 건 기본입니다! 튀김가루를 살짝 넣어주어도 좋아요. 해산물 재료 없을 때는 깻잎, 양파, 애호박, 부추, 새우가루 이렇게만 넣어도 맛있답니다.
내일 비가 온다니 주섬주섬 찍어두었던 집밥 사진을 몇 장 나열했는데, 비는 핑계 같기도 합니다. 오늘은 맛있는 걸 먹고 싶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남편이 다이어트에 돌입하기 전에 만찬을 즐겨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들고요.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오늘은 오랜만에 쉬는 근로자의 날이니 맛있는 음식 드시면서 꿀 같은 휴식 시간 가지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