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 겪은 증상은요. (하소연 주의)
두 딸 엄마는 어찌어찌 잘 지내고 있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큰 아이가 무사히 3학년이 되었고, 어린이집 적응 기간 동안 큰 이슈가 없었기 때문이다.
19개월 동안 둘째가 있는 삶을 지나면서 애초에 상상했던 것과 전혀 딴판인 것이 있었다. 열 살과 19개월 그 사이는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는 것이다. 방학이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으려나? 중간에 3박 4일 더운 나라로 여행도 다녀왔지만 지난겨울 방학이 너무 춥고 길게 느껴졌다.
매일 아침 언니의 요구에 먼저 응해줘야 한다. 언니는 많은 감정과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음도 쉽게 다칠 거라 생각했다. 언니의 요구에 응하는 동안 둘째는 엄마를 따라다니며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진다. 또는 싱크대에 붙어서 바쁘게 움직이는 엄마를 싱크대로부터 멀리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조막만 한 것이 고개를 쳐들고 엄마엄마 외치는 게 짠하기도 귀엽기도 해서 무릎을 굽히고 알은체를 하면 자기를 안으라고 내 어깨를 토닥이는데 그쯤 되면 벗어날 수가 없다. 잠깐만 안아주자 하며 첫째의 요구를 잠시 내려놓기로 결정한다.
작고 어린 동생을 어찌할 수 없어 울며 소리를 지르는 게 다지만 동생은 그것도 용납할 수 없어서 언니의 머리채를 잡아 뜯었다. 엉엉 울다가 소리 꽥 지르는 첫째가 딱하면서도 답답했다. 동생은 아직 규칙과 예의를 모르니 배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수천번 말해도 큰 아이는 동생이 친구처럼 자신을 존중해 주길 기대한다. 동생은 언니도 엄마처럼 너그럽길 바라겠지. 하지만 보수적이고 시니컬한 언니는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방문 여는 법을 터득한 둘째는 출입금지였던 언니 방도 쉽게 들어가게 되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 동생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언니의 책상 의자에 올라가 앉는 것이다. 의자에 앉으면 키가 작아 못 보던 책상이 훤히 보이고 바닥에서 언니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도 한눈에 보인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달라고 손을 뻗으며 "어! 어!" 하는 것이다. 거실에서 넋 놓고 있던 언니는 "야!!" 하며 방에 들어가 동생을 뒤로 끌어안고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데 발버둥 치며 동생이 버티니 내가 볼 때쯤이면 질질 끌고 나오는 형상을 한다. "그만해!!!" 하고 큰 아이를 다그치면 "왜 맨날 나만 뭐라 해. 난 억울하다고!!!" 하며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리는 아이. 달려가 작은 주먹으로 닫힌 문을 쿵쿵 치는 작은 아이. 하...... 하루 세끼 밥 먹듯 둘이 동시에 우는 일도 밥 먹듯 생긴다.
더운 나라로 떠난 여행지에서 처음 증상이 왔다. 일행과 리조트 수영장에 가기로 한 시간이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면서 챙겼던 물건들의 행방을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뇌 속에 박힌 정보가 나오려 하지 않으려 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앞에 나와 기다리는 일행을 두고 신랑은 문 앞에서 가자고 재촉했는데 그때 심장 깊숙한 곳부터 시작하여 온몸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컨디션을 설명한 상황이 못되어 먼저 가라고 손짓만 하고 있는데 아이들을 일행에 부탁하고 돌아온 남편이 손을 잡고 가자고 이끌었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려고 하는 순간 눈물이든 토사물이든 뭐든 속에서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먼저 가라고 말을 툭 내뱉은 뒤 숙소로 돌아왔고 화장실 거울 앞에 선 나는 아랫배부터 얼굴까지 뻣뻣하게 굳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거울 속 모습은 분명 멀쩡해 보이는데 정작 나는 몸은 뜨겁게 굳어가고 숨이 가빠졌다. 순간 화장실 전구가 깜빡이며 다른 차원에 빨려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무서웠던 나는 정신 차리자며 심호흡을 시작했다.
10분 남짓 되었을까, 처음 겪은 일에 당혹스럽지만 아이들과 일행이 있는 바닷가로 내려갔다. 일행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고 남편에게 상황을 이야기했고 남편은 '너무 다 챙기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와 비슷한 말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눈물이 왈칵 났지만 참고 호흡을 정리하며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첫째와 모래놀이 하는 둘째를 번갈아 바라봤다.
올 겨울은 큰 아이에게 여러 일들이 있었다. 성장호르몬 검사를 위한 2시간 동안의 혈액 채취(물론 둘째도 병원에 동행), 사시 수술을 위한 건강 검진, 수술 직전 B형 독감에 걸려 수술을 미루냐 마느냐 고민했던 몇 날의 밤, 결국 수술을 결정했고 그날 전신마취로 맥이 탁 풀리는 아이를 보게 된 일, 1년 치 보험 서류를 모두 정리해 청구도 해야만 했고 왜 영어학원 일찍 안 보냈냐는 첫째를 데리고 학원 상담도 다녀왔다. 그리고 인큐베이터에 오래 있었던 이유로 거절된 둘째의 보험 가입을 위해 대학병원 서류들을 챙겨야 했고, 보내려 했던 어린이집이 폐업한다고 하여 급하게 다른 곳들을 알아보고 전화하고 다녀왔다. 조그만 눈에 다래끼가 생겨 약 먹이고 바르고 신경 써야 했고, 여행을 위해 사진 촬영과 여권 발급도 챙겨야 했다. 게다가 계절이 다른 나라로 여행은 처음인지라 여름옷을 다 꺼내 세탁하고 준비해야 했고, 물놀이용품에다가 모기 방지 용품들과 어린 둘째를 위한 비상식량에 시밀러룩을 위한 폭풍 쇼핑까지... 순간 설레고 즐거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여러 일을 지나왔기에 내심 버거웠던 것도 같았다.
사실 개인적으로 더 있다. 신랑이 선물로 준 얼마 안 된 지갑을 잃어버렸고 남편 친구 모임도 있었으며 우리 집 구피가 치어를 낳기도 했다. 올해 두 동생이 결혼하겠다 선포했고 K-장녀인 나는 중간에서 전화통을 붙들고 트러블이 생기지 않게 고르고 걸러낸 단어들을 전하며 서로의 마음이 부딪히지 않게 해야 했다.
도망칠 수 없는 이 모든 문제를 마주하고 고민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며 사는 것이 피곤했다. 요즘 여기저기 흔하게 보이던 '결정의 피로감'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 머릿속이 전쟁통이었다. 그래도 겨울을 지나오는 동안 둘째는 이제 언니 머리를 잡아 뜯지 않는다. 언니도 무작정 끌어내는 대신 다른 물건을 손에 쥐여줄 줄 알게 되었다.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내내 '내려놓자, 완벽할 수 없다, 미리 하지 말고 닥치는 대로 살아도 괜찮다. 그러다 보면 또 여유가 찾아온다'를 되뇌었다. 매일 해야 하는 집안일도 어차피 티 안 난다며 하루에 한 번씩만 하자고 내려놓은 지 오래된 걸.
하지만 나는 평행한 두 여자를 중재하는 삶을 살고 있다. 남 부러운 마음 안고 한 걸음씩 사춘기를 향해 가는 열 살 여자아이와 나름의 의사소통을 터득해 작은 사회로 들어가려 하는 19개월 여자아이. 그 거리가 먼 평행선 사이에 마흔을 앞둔 여자. 내가 그 가운데에 평행선을 그린다. 어디에도 겹치지 않는 딱 가운데에 존재하는 평행선이어야 하나,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곡선이어야 하나 그 고민은 여전히 매일마다 이어지고 있다. 평행하는 걸로도 감사하자고 스스로 다독이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