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유아기에서 '싫어'를 외치다
둘째가 고양이 '춘삼이‘를 부를 때 발음이 이제는 꽤 그럴 듯하게 들린다.
쭘미니, 쭘마니, 츰마니, 츤사이, 츤사미.
세 달 사이 둘째가 춘삼이를 부를때 저렇게 업그레이드 되었다.
춘삼이가 3월 30일에 우리 집에 오고 나서 아이는 말이 부쩍 늘었다.
이제 투정을 부리다가도 대화를 하려고 한다.
아이는 이곳저곳에서 주워 모은 단어들을 더듬더듬 꺼내기 시작했다.
"우이 저이 아까?" (우리 저기 갈까?)
"아빠양 지짜 땅어 바찌?" (아빠랑 진짜 상어 봤지?)
"깨그이 무이노리 하까?" (개구리 물놀이-싱크대놀이-할까?)
"언니 거마어" (언니 고마워)
"녕낭게 머꼬 찌짜!" (영양제 먹고 씻자!)
"멈지 버이고 아!" (먼지 버리고 와!)
"아빠 까께 가찌~" (아빠 가게 갔지)
얼마 전에는 남편과 장난을 치고 있었는데 남편이 "엄마가 아빠 때렸어~ 해봐." 라고 말했더니 '엄마야 아빠 때어떠~' 라고 해서 셋이 어찌나 웃었는지 모른다. 아이도 제 말에 온 가족이 웃으니 아하하하! 하며 웃었다.
(아이는 아직도 뜬금없이 '엄마야 아빠 때어떠~' 라고 말하며 웃는다...... 어린이집에서는 그러지 마라......ㅋㅋ)
이렇게 반만 제대로 말하는, 이 아이의 입과 눈과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속에서 사랑이 몽글몽글 샘솟아 오르지만, 사실 모든 말 중에 가장 단호하고 당돌하게 외치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시여!!'이다. 나의 소위 빡침포인트 이기도 한 그 단어!!!!!
'싫어'를 뜻하는 말인데 이 말은 밥 먹을 때 가장 두드러진다.
짭쪼롬한 반찬을 먼저 먹고 밥은 나중에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요즘이라 '밥 먹어야지~ 밥 먼저 먹자~ 밥 한입 먹고~' 하는 잔소리를 퍼붓는 엄마에게 23개월 아기는 '시여! 시여!'를 당돌하게 외친다.
속이 부대꼈는지, 쪼르륵 흐르던 콧물 때문인지 얼마 전 밤잠을 설친 적이 있었다. 안방에서 나가자고 해서 새벽 4시쯤 거실로 나와 잠깐 놀다가 '내 자이~ 내 자이~'(내 자리) 하며 다시 침대로 돌아갔는데 그 뒤로도 몇 번이나 뒤척였는지 모른다. 비몽사몽이라 잘 몰랐는데, 아침에 수면 어플을 보니 수면의 질이 23% 였다. (이렇게 확인하고 나면 괜히 하루종일 더 피곤한 것 같다...)
아침에 아이가 오랜만에 늦잠을 잤고 밤 사이 잠을 못 자 조금 늦을 것 같다고 어린이집에 말씀드렸다. 뒤늦게 일어나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며 컨디션이 안 좋으니 마당 물놀이는 한번 패스해 달라, 열 체크도 같이 부탁드렸다.
하원하러 갔더니 열은 없었고 평소처럼 잘 놀았다고 했다. 다만, 평소 밥을 두 그릇씩 먹는데 오늘은 한 그릇 밖에 못 먹었다고 걱정하시는 선생님...... 원래 한 그릇 아닌가요 선생님... 하려다가 그냥 허허 웃고 말았다. 선생님도 같이 웃으며 '원래 밥 너무 좋아하잖아요~' 하셨다. 컨디션 난조로 한 그릇 밖에 못 먹은 꼬맹씨는 집에 와서 열심히 뛰어다녔고, 된장에 밥을 말아 한 그릇을 뚝딱하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어린이집에서는 짜장 소스에 밥을 세 그릇 먹었다고 했다.
(분명 이날도 푹 자진 못했는데. 쩝.)
그런데 왜 집에만 오면, 밥 먹자고만 하면, 씻자고만 하면, 뭐 기타 등등 시도 때도 없이 '시여시여!'를 외치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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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 유아기 때 '싫어'라는 말을 '띠러!'라고 했다.
'윤아~ 우리 이거 하자~' 하면 '띠러 띠러 띠러 띠러~' 최소 3-4번은 '띠러'를 연달아 발사하는 스타일이었다.
남편과 내가 아이를 놀린다고 일부러 '띠러 띠러 띠러~' 하기도 했는데, 아이는 '아찌 마아~'(하지 마) 하고 투정을 부리고는 했다.
그랬던 기억이 가물가물 했는데 작은 아이가 '시여!' 하는 걸 보니 큰 아이의 유아기가 떠올랐다. 너무나 커버린 내 첫아기. 이제는 '싫어!'라고 살벌하게 내뱉는 나의 첫사랑. (크크)
이제 윤은 말을 너무 잘해서 가끔 버겁다.
버겁다는 것이 싫고 도망치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미 내 마음의 그릇에 무언가 가득 담겨있어서 찰랑찰랑 거리고 있는데 가끔은 그것이 넘쳐버린다는 뜻이다.
다 컸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나 또한 아이에게 툴툴대고 토라지고 하는 것 같아서 돌아서면 민망할 때도 있다. 아이의 말대꾸를 맞받아치고 억누르려고 하는 내 모습이 부끄러울 때가 있다.
첫째의 '싫어'와 둘째의 '싫어' 사이에서 매일 외줄타기 하고 있는 엄마의 삶이다.
이렇게 말하니까 어딘가 굉장히 거창한 거 같지만, 푸하하! 그게 바로 나의 평범한 일상이다.
큰 아이가 '싫어, 왜 굳이 꼭 해야 돼?', "내가 왜 그렇게까지 해야 돼?', '왜 그렇게 말하는 거야' '싫어, 도대체 왜?' 라는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하고 있으면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도 높은 산에 오르락 내리락 등산하는 것처럼 숨이 가빠진다.
둘째는 '밥 먹자~' '시여', '어디 가자~' '시여' '옷 입자~' '시여', '이리 와~' '시여'.
오 마이 갓. 신이시여!!!
정말이지 나도 '싫어!'라고 외치고 싶을 때가 있다.
내 기억 속에서 여태 '싫어!'라는 단어를 내뱉은 기억이 그다지 없다. 단호하고 차갑지만 나를 지킬 수 있는 단어. 호신용 무기처럼 마음에 늘 지니고 다녀야 하는 말.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이 말도 해 본 놈이 더 잘하는 것 같다.
싫다고 하면 혼이 나는 분위기 속에서 양보하고 배려하고 침묵하는 유아기를 지나 마음속에 불덩이를 똘똘 뭉치며 자라온 나는 '싫다'는 말이 그렇게도 어렵다. 그래서 아이들의 '싫어!'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모양이다. 엄마도 싫은 게 있다고!
그래도 '엄마의 적절한 화는 아이의 사회성을 높여준다'는 문장을 움켜쥐고 적당한 인내심으로 느슨하게 대하려고 애쓴다. 무엇이 그렇게 그릇 가득 담겨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 대견하게 여기고 있다. 오래간만에 펼친 책이 <심플하게 산다>(도미니크 로로)라는 점도 적절했다고 자신에게 칭찬해 주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그래, 너희도 싫은 게 있겠지.
우리 싫은 건 싫다고 말하자.
아직은 어리니까 남발해도 엄마가 다 받아줄게.
엄마한테 연습한다고 생각할게.
나중에는 그 말을 아껴야 해.
힘을 모아뒀다가 한방에 날려야 하니까.
중요할 때 꼭 써먹을 수 있도록!
2025. 7. 11. 저장된 글 편집하여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