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 노력. 늘 최대치의 그것.

매운 맛 딸 둘 육아의 현실

by 시즈 SYES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될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 밤새 둘째가 우는 바람에 잠을 설쳤고, 하필 남편은 가게에 할 일이 있어 새벽 5시쯤 집을 나선 상황이었다. 그제야 나는 잠들 수 있겠다 해서 잠깐 눈을 붙였는데 잠결에 알람을 껐는지 어찌 된 일인지 깜짝 놀라 폰을 들어 보니 아침 8시가 넘어 있었다.

보통 7시 30분 전에 깨서 아침을 간단하게 준비하여 먹이고, 큰 아이를 먼저 8시 20분쯤에는 학교에 보내야 한다. 그날은 8시 5분쯤 일어났기 때문에 아침은커녕 얼른 이 닦고 옷만 입혀 내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이를 깨웠던 다짜고짜 화를 내기 시작했다. "엄마는 날 왜 이렇게 힘들게 해?", "맨날 지각하고 엄마 때문에 맨날 지각해서 속상해!", "일찍 좀 깨워 달라니까 왜 그걸 못해?" 라며 큰 소리로 짜증을 냈다.


그래 미안하다.

어제 동생이 밤새 많이 깨서 잠을 설치는 바람에 아침에 알람을 못 들었네.

늦게 깨워서 미안하다. 얼른 챙겨서 가자.


빵을 얼른 토스트 하여 몇 조각을 먹이고 사과를 깎아 입에서 쑤셔 넣어주었다.


아이는 짜증이 났는지 한 개만 먹고 나서는 거부했다. 대강 씻고 나와 옷을 챙겨 달라는 짜증 섞인 말투와 함께 나의 아침도 점점 망가져 갔다.

둘째는 식탁에 앉아 눈치껏 맛있게 사과와 빵을 먹고 있었고, 큰 아이가 투덜거릴수록 나는 설움이 점점 밀려왔다. 마음속에 있던 말을 거르지 않고 큰 아이에게 뱉어 버렸다.



보통 엄마가 늦게 깼으면 왜 늦게 깼는지, 은수 때문에 밤에 잠을 못 잤으면 피곤하겠다든지 먼저 엄마를 살펴봐 줘야 되는 것이 아니야?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아이는 '내가 왜 그렇게 해야 되는데?'라고 했다. 그 말이 날카로운 가시처럼 내 가슴에 박혀 쓰라렸다.


이성을 붙들고 속상하고 서운한 마음을 하소연하듯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엄마도 사람이야 피곤하면 잘 못 일어나고, 몸이 아프면 병원도 가고 싶고 푹 쉬고 싶어.

그런데 엄마는 엄마 마음대로 쉬지도 못하잖아. 엄마가 왜 그랬을까라고 한 번쯤 생각해 보고 엄마의 몸과 마음을 한 번쯤 헤아려 줬으면 좋겠는데, 왜 매번 그렇게 생각해!


'앞으로는 네가 피곤해도 엄마가 받아주지 않을게'라는 식으로 아이처럼 똑같이 맞받아 응석을 부려 버렸다.


아이는 입이 툭 튀어나온 채로 학교로 향했다. 하필 나도 깜빡하고, 아이도 깜빡해서 물병을 아침에 내놓는 바람에 차 트렁크에 있는 자연** 생수 한 팩이라도 쥐어 보내야 되는 상황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차 리모컨이 말썽이라 트렁크 문마저 잘 안 열렸지만 밖에 나가서 차 옆에 덩그러니 서 있는 아이의 까만 머리를 보며 마음을 고르고 또 골랐다.

아이에게 전화하여 트렁크는 알아서 닫을 테니 얼른 학교로 가라고, 늦었다고 서두르라고 했는데 아이는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어기적 어기적 걸어가는 아이의 정수리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둘째가 태어났을 때부터 온전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을 큰 아이가 어떤 마음일까 돌이켜보니 울컥했다.

그 길로 바로 전화를 다시 했다.


윤아,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좀 더 잘 챙겼어야 했는데 미안해, 윤아.


멀어져 가는 아이의 정수리를 보며 울먹였고, 휴대폰을 귀에 바짝 대고 걸어가던 아이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아니야, 엄마. 내가 더 미안해.

앞으론 안 그럴게. 내가 미안해 엄마.



엄마, 나 그러면 학교 갔다 올게 끊어.


그래, 잘 갔다 와. 끝나고 전화해!



한 번쯤 뒤돌아볼 듯해서 끝까지 바라보았지만 아이는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래도 전화 너머 들린 목소리가 따뜻했고, 끊을 때쯤에는 목소리에 명랑함이 감돌아서 안심이 되었다.



아이가 사라지고 내 마음은 한편 시원해졌다.

점점 매운맛이 되어가는 10살 딸아이가 가끔은 겁나기도 한다. '왜 꼭 그래야 돼?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굳이 할 필요 있을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아이. 확정할 순 없지만 소위 말하는 T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할까. 엄마 욕심으로는 좀 더 삶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먼저 움직였으면 하는데, 이 아이는 만사가 귀찮고 의미 없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해서 가끔은 아쉽다.


이 아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아줘야 할 텐데, 그걸 찾아내기 전까지 묵묵히 기다려줄 수 있을까. 선택이 늦어지더라도 제약이 없게 공부든 예체능이든 꾸준히 살펴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는데,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부터 된다.




한편, 그렇게 첫째를 생각하고 있자면 둘째도 또 짠하다. 태어날 때부터 눈치 보며 살고 있는 둘째의 서러움과 나름 고충이 있을 것인데, 아직 말을 못 하니 표현이 서툴다.


점점 세상을 깨우쳐갈수록 억울함과 아픔과 치사함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둘째는 요즘 감정으로 표현하는 방법으로 잉잉거리며 울거나, 바닥에 두 다리를 뻗고 바닥에 주저앉아버린다. 원하는 바가 있을 땐 곁에 있는 사람을 툭 치거나 쥐고 있던 물건을 바닥에 툭 내려놓는데 사실을 그것은 던지는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가장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물건을 골라 앞으로 밀어 넘어뜨리거나 춘삼이를 괜히 쫓아가서 '저리 가!' 하며 밀치기도 한다.

요 근래 한창 큰 아이가 소파나 거실에 앉아 있을 때 둘째가 언니 앞에서 까불거리거나 곁으로 올라서서 뛰거나 굳이 지나가려 하다가 툭 치거나 발로 차는 일들이 많았다.

큰 아이는 어린 둘째 동생에게 친구처럼 존중받고 싶어 하지만 작은 아이는 아직 그럴 만한 능력이 학습되지 않아 서로 불편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큰 아이가 '엄마, 동생이 나 때렸어!'하고 소리 지르거나 동생에게 '야!' 하며 고함을 칠 때마다 많이 혼냈다. 열 살짜리 아이의 억울함은 점점 커져갔고, 둘째는 어떻게 해야 언니가 혼나는지 얼추 터득하는 듯했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는데, 아이가 언니를 필요로 할 때마다 자꾸 툭툭 치는 것이었다. 발로도 차고 머리를 치고 '때찌!'나 '저리 가.' 하면서 때리기도 했다.

첫째는 더 크게 울며 속상해했고, 나는 그 반대의 방법으로 둘째를 혼내기 시작했다.

앞집 아주머니께 물려받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단소를 회초리로 쓰고 있는데, 작은 그 손바닥을 서너 번 때렸더니 '회초리'라고 하면 말을 듣기 시작했다. (물론 세게 때리지는 못한다. 사실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요즘에 체벌이 없다고 해도 남을 때리거나 아프게 해서는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도무지 말로 해서 안될 때 아이의 손바닥을 회초리로 몇 번 쳤더니 아이는 매의 매운맛을 알게 되었다. 이게 맞는가 싶으면서도 즉각적으로 문제를 해소하기에는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하며 그렇게 나름의 공포를 줬더니 되려 '회초리'라는 단어를 말하지 않으면 더 말을 안 듣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억울해하는 첫째와 하고 싶은 게 늘 뺏기거나 제지되는 둘째를 같이 불러다 놓고 중재를 한다. '넌 왜 그랬어? 너는? 누가 먼저 잘못했지? 먼저 사과해. 너도 이 부분은 사과해. 서로 안아주고, 톡톡톡 등 토닥여줘.'의 구구절절한 과정을 두 번 정도 하니 아이들이 서로에 대해 날 선 감정들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여기 눈치 보랴 저기 눈치 보랴 너무나 피곤한 나는 우리 엄마는 날 어떻게 키웠을까 헤아려 본다. 나도 쉬운 딸이 아니었을 텐데, 막내 동생과 9살 차이가 난다고 해도 말이다. 두 딸 가운데서 이렇게 줄타기를 했을까 전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앞으로 나는 어떤 일을 마주하게 될까.



아까는 첫째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왜 요즘엔 동생이 나를 안 치지? 왜 안 때리는 걸까?


네가 동생에게 소리 지르는 일이 줄어들었잖아.



그랬더니 아이가 그랬나 하며 의아해했다.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명절을 보내며 피곤했고 최근 몸이 아픈 시간들을 지나왔으며 서로 간에 억울한 감정들이 쌓여갈 때 엄마로서 중재를 적절하게 해주지 못했고, 나 또한 과부하 상태라 실수가 있었던 점을 깨끗이 인정한다.


그렇지만 육아는 끝이 없는 터널 같은 것이어서 인정과반성은 별개로 매일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자녀가 둘이라는 것은 단순히 난이도 두 배가 되는 게 아니다. 세 배, 네 배? 아니, 늘 최상의 수준(?)을 겪고 나야 비로소 지나갈 수 있다. 상대적인 최상의 육아 난이도를 겪고 있는 요즘, 때마침 남편의 가게 일을 맡는 일상이 점점 늘어 간다. 아이들 책도 잘 못 읽어주고, 내 글도 뜸해지고 있어서 갑갑하다.


속상한 현실 속에서 나는 틈새 녹음을 의지해 글 쓰기를 어떻게든 이어 가보자고 다짐한다. 수영은 못 가지만 못 간대로 수영 에세이는 써보려고 한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쓰고 있으면 가느다란 끈 하나 잡고 있다고 여길 수 있을 것 같다.


대단하진 않아도 노력하고 있다.

오늘도 노력했다. 내일도 노력해야겠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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