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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영의 Sep 07. 2022

누군가 빠져나갔다

-오늘의 기분, 48-50쪽.

 서울의 본가에서는 어머니가 가끔 안부를 물어 와서 힘들고 지치면 집으로 들어와도 좋다 했으나, 매번 부모님을 거역하고 살아온 나로서는 그럴 염치가 남아 있지 않았다. 처음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을 때, 부모님은 그 사람의 이미지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흔쾌히 허락을 하지 않았다. 이미지란 실재와 같지 않다고, 그를 잘 아는 사람은 부모님이 아니라 겪어본 내가 아니겠느냐는 말은 그리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첫 인상을 무시하지는 못하는 법이라고, 느낌이 중요하다고 그랬다. 세상을 오래 살다보면 네가 아직 갖지 못한 지혜가 생기기도 하는 법이라고 부모님은 오히려 나를 설득했으나 그런 경우 대체로 그렇듯이 세상을 오래 살아보지 않았던 나는 내 판단을 믿기로 했다. 

  이미지와 느낌으로 내 부모에게서 부정당한 첫 번째 남편은 결혼 후 그것을 두고두고 내게 되갚았다. 까닭에, 이혼을 했다고, 아이마저 빼앗길 것 같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나중엔 아이를 맡기지 않을 방법이 없어서 저간의 사정을 간략하게 말씀 드렸을 때, 부모님의 완강한 침묵이 내 영혼을 오래토록 짓눌렀다. 더구나 이제는 모친을 모시고 사는 큰 오빠는 나를 수치스럽게 여겼다.  

  김재영 선생은 물론이고 학교의 누구와도 아무런 연락을 주고받지 않고 지내던 그즈음, 아주 나쁜 일이 있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이렇게 나와 무관한 타인의 일을 말하듯 하다니, 내가 제대로 된 인간인가 싶다. 

  나쁜 일이란, 이혼한 첫 번째 남편이 데려간 내 딸아이가 급성폐렴으로 숨졌다는 소식이었다. 그것도 아이를 화장하고 나서야 전해 들었다. 내 몸에서 무언가가 성급하게,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제 정신으로는, 학생들 앞에서 도저히 수업을 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문학이란 인간의 삶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고, 그러하니 가장 고통 받고 신음하는 누군가를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앞선 문학의 소명일 것이라는 말을, 내가 어떻게, 내 아이의 죽어가는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리는데, 어떻게 뻔뻔하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돌보지 못하고 살펴볼 수 없는 내 혈육을 두고 어떤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는 포즈를 취하란 말인가. 

  나는 미친년처럼 강의실을 뛰쳐나와 도로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며 딸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학교에서는 강의를 거두어갔고,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다고 나도 사정을 이해했고, 나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거나 상태가 조금 좋아지면 다시 강의를 하거나 그러다 다시 강의실을 뛰쳐나가거나 하는 일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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