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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영의 Jul 09. 2023

근절되지 않는 체육계 폭력과 방관자 효과

-장미란은 체육계의 고질적인 부조리를 해결할 수 있을까

  서정인 선생의 단편소설 「강-江」에는 한 집에 사는 김, 이, 박, 세 사람이 시골의 혼사에 다녀오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소설의 인물들 중에서 박 씨와 이 씨는 현재와 다른 삶에 대한 꿈을 가진 적이 없는 사람이다. 반면에 늙은 대학생 김 씨는 한때나마 현실의 삶과는 다른 삶을 꿈꾸었고, 그것의 실현 가능성을 염원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녹록치 않은 현실에서 그는 꿈이 좌절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를 테면, 시골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우연히 보게 된 여관집 주인의 어린 아들, 초등학교 학급 반장이며 일등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그는 다음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아마 너는 학교의 천재일 테지. 중학교에 가서 수재가 되고, 고등학교에 가선 우등생이 된다. 대학에 가선 보통이다가 차츰 열등생이 되어서 세상에 나온다.”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무렵의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폭로했던 감독의 지속적인 폭행사건과 최근의 트라이애슬론 최숙현 선수가 감독과 선배 선수의 지속적인 폭행으로 괴로워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건만 보더라도 프로 스포츠 계의 폭력 문화는 매우 고질적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폭력의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능력을 인정받았던 감독이요, 선수라는 데 있다. 그들이 피해 선수들에게 일상적인 폭력을 가한 데는, 선수들의 기량을 향상시키기 위한 훈련 과정에서 필요한 일이라는 폭력에 대한 무감각이 가장 큰 문제가 된다. 그런 혹독한 과정을 거쳐야 선수들의 긴장이 풀어지지 않고 훈련에 집중하여 대회에 나가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래야 상금과 보조금을 받을 수 있고, 이후에도 감독과 선수로서의 위치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모르지 않기에 그들을 감독할 위치에 있는 소속 팀의 관리자들과 체육회 관계자들은 모른 체 했을 것이다. 일종의 침묵의 살인자, 방관자로 머문 것이다. 다른 선수들도 비슷한 폭력적 구조 속에서 힘들어하면서도 저들에게 밉보이면 운동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상황에 절망했을 것이다. 저 소설의 인물의 회환이 그러한 것처럼 누구라도 시간이 흐르면 명성은 잊히고 뛰어났던 기량도 점차 무뎌지게 된다. 그 불안에의 강박이 감독이나 선수들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것일 게다.

  그러하니 오직 눈에 보이는 성과로만 그 존재가치를 평가하는 엘리트 스포츠가 지속되는 한 어쩌면 아무리 야단법석을 떨며 대책을 마련해도 저 폭력의 악순환을 끊기는 어려울 것이다.

  예전에 전지훈련을 갔던 어느 초등학교 여자선수들이 감독이나 코치가 밤에 따로 부르면 나가지 않으려고, 나가면 성폭력의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는 까닭에, 그 어린 초등학교 선수들이, 자면서 서로의 몸을 끈으로 묶고 잤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고등부나 대학 선수들의 전지훈련에서도 저러한 일이 드물지 않다고 들었다. 이렇게 말하면 무책임한가? 

  그러나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무릅쓰고 제언하자면, 성폭력을 포함한 폭력행위에 대한 방관자적 태도를 버리지 않으면 저 고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성)폭력을 행사한 자들에 대한 엄정한 단죄,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다시는 체육계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범죄이력관리, 무엇보다 폭력을 목격하는 동료들이 방관하지 않는 것, 오직 그것 밖에는 해결책이 없다. 가해자들의 욕망에는 끝이 없고 스스로는 못된 버릇을 고치기 어려운 법이다.(20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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