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과 개별자의 균형으로서의 이순신 표상

3-역사를 비켜선 고독한 개별자

by 심영의

유신체제가 몰락한 이후 이순신의 국가기념 역시 급격히 몰락했다. 그럼에도 각종 위기 상황에서 대중은 이순신을 떠올리게 되었다. 1990년대에 세계화와 국가경쟁력 담론이 확산하고, 총성 없는 경제전쟁이라는 표현이 쏟아져 나오자, 이순신 이야기와 충무공 정신이 새로운 모습으로 대중에게 등장했다. IMF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위기 상황에 이순신의 생애가 가진 비장함이 더해지면서 그의 서사는 쉽사리 극화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이를 의연히 극복한 인물로 대중들에게 새삼 재평가되었고, 그런 위기에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금 일어서는 위기 극복형 역사 인물로 급부상했다.

이순신은 시대의 주류 담론과 독자의 욕망, 그리고 작가의 세계관에 따라 끊임없이 형상화되었다. 대체로 보아 그는 영웅과 인간 사이에서 혹은 그 둘이 배합된 인물로 서사화되었다. 김탁환의 『불멸』과 김훈의 『칼의 노래』는 구국의 영웅과 고뇌하는 인간 사이의 면모를 가장 잘 드러낸 소설이다. KBS는 두 작품을 각색하여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제목으로 2004년부터 2005년까지 모두 104회차의 대하드라마로 방영하기도 하였다. 정찬주가 2018년 완간한 『이순신의 7년』 일곱 권은 전장의 주 무대가 호남지역인 점을 강조하면서 이순신뿐 아니라 화순 출신의 의병장 최경회의 활약상을 담아내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김탁환은 『불멸』이라는 제목의 전 4권 장편을 1998년 간행한다. 이후 제목을 『불멸의 이순신』으로 바꾸고 8권으로 분량을 늘려 발간한다. 김훈 장편 『칼의 노래』는 2001년 발표한 소설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중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아 중쇄(重刷)를 거듭했고, 관련 연구도 많은 분량이 제출되어 있다.

두 작품은 이순신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하고 있는 점은 비슷하지만, 김탁환은 그의 소설에서 이순신을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 원균, 허균, 류성룡, 선조, 광해군 및 수많은 백성을 등장시켜 홀로 깨어있는 이순신의 고독한 자아를 강조한다. 그런 나 그가 서 있는 곳은 전쟁터이므로, 이순신에게 현실이란 죽음과 마주한 운명의 순간에서 또 다른 삶을 만들어 가야 하는 사실이자 조건이 된다. 그는 한탄한다. “역사란 이런 것인가? 내가 아무리 그를 아끼고 존경해도, 타인의 눈에 다르게 보이면 적도 되고 원수도 되는 것인가?”(『불멸』 4권, 115-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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