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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영의 Dec 08. 2021

공허한 휴식의 적막감 속에서

나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천천히 그녀를 잊어갔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생각이 날 때가 있었다. 빗방울이 가득 맺힌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 불현듯, 햇빛이 유달리 맑아 오히려 추운 겨울날의 이른 하오, 음악을 들을 때 트랙과 트랙 사이에 잠시 고여 있는 침묵 속에서 그녀가 되살아날 때가 있었다. 그리고 또한 깜박 잊고 이틀쯤 후에 넘기게 되는 탁상용 다이어리의 갈피 속에서 가볍고 미세한 바람이 묻어날 때, 달력 속에 드문드문 찍힌 그 빨간 글자들이 주는 공허한 휴식의 적막감 속에서.


-윤대녕 소설 『미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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