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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예희 Mar 30. 2017

22. 기차 타고 새로운 곳으로

4월 25일 토요일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라고는 하지만 별로 밝지는 않음. 밤 사이 비가 후두두둑 후두두둑 꽤나 요란한 소리를 내며 쏟아졌거든요. 그래도 다행히 지금은 개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새로운 도시로 이동하는 날. 지난 며칠간 잘 묵었던 방을 이제 슬슬 정리할 시간입니다. 화장대 위에 늘어 놓았던 방물들을 주섬주섬 챙기는 중. 그 중에서 면세점 출신 방물들을 함 찍어보았어요. 중년의 생명수 정관장 찐득이를 빼고는 모두 처음 써 본 것들인데 딱히 뭐가 좋은 지 모르겠지만 나쁜 점도 없는 화장품들입니다. 








근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님. 예전에는 정관장 찐득이를 사면 그 안에 스뎅 숟가락이 들어 있었거든요? 겉 포장도 나무 상자였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구입하면서 보니까 어라, 종이 상자와 요 조립식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바뀌었습니다. 

해당 브랜드를 대표하는 상품 중 하나이고 특히 외국인 구매자가 많은 걸로 아는데 이것은 좋은 변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급스러운 이미지 쭈욱 갖고 가는 거 이거 중요햐...









라고 아침부터 투덜거리는 이유는 아직 공복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뭔가 먹기 전까지 화가 나 있는 여인임. 

면세점 방물 외에는 이런 것들을 챙겨 왔습니다. 저의 사랑 아개운 칫솔(제품 이름이 아개운임-.- 진짜 개운함), 데메테르에서 치약도 나오길래 신기해서 샀는데 그래봤자 치약일 뿐인 치약, 아이허브 출신의 치실, 면봉, 유산균 알약, 탱글티저 빗. 근데 유산균 먹으면 뭐 좋은게 있긴 한 거유? 저 진짜 둔한가봐요. 궁금해서 먹긴 하는데 인간적으로 하나도 모르겠거든요. 그러나 보라색 탱글티저 쟤는 매우 훌륭합니다. 몇 년 째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짐가방을 꾸려 숙소에 놔두고 가볍게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침 먹어야죠! 그제도 가고 어제도 갔던 그 빵집에 또 가는 길이에요.

길가 건물 벽의 아줄레주azulejo 무늬가 멋집니다. 유적지의 고풍스럽고 고급스러운 아줄레주도 좋고, 요런 기성품 아줄레주도 매력있어요. 기성품이 있다는 건 생활의 일부라는 의미도 되것지요.








이따 기차 시간까지는 여유가 꽤 있으니 오늘은 테이블에 앉아봅니다. 

초콜렛 덩어리와 커스터드 크림이 든 달두왈한 크라상과 비까 두쁠라bica dupla. 찐한 비까 두 샷에 뜨거운 물 한 샷을 섞은 두쁠라, 요게 농도도 양도 적당하더라구요. 비까는 너무 쬐끔이야...









포르투갈 사람들은 아침 식사로 커피와 달달한 빵을 먹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설탕 듬뿍 묻은 도너츠라던가 타르트 같은 걸 냠냠 맛있게들 먹더라구요. 

그래서 나도 단거! 하며 큼직한 초콜렛 덩어리가 삐져나온 크라상을 고른 것인데 맛있긴 하지만 아침에는 좀더 간간한, 뭔가 밥 될 만한 게 먹고 싶길래 햄이랑 치즈가 들어간 빵을 한개 더 추가해 봅니다. 









라고 구구절절 썼지만 하나 갖고는 성에 안 차서 두 개 먹었다는 얘기여. 뭐 아무렴 어떻것습니까. 커피 있지 빵 있지 와이파이 빵빵 터지지 책은 흥미진진하지. 조지 거쉰이 부릅니다. Who could ask for anything more?









그렇게 두 시간 정도 책을 읽다 슬슬 일어나 체크아웃을 하러 숙소로 돌아갑니다. 빵 두 개에 비까 두쁠라 한 잔 해서 3.6유로. 









락스피릿 살아있어를 외치며









지하철을 타러 왔시요. 리스본의 여러 기차역들 중에서 오리엔테Estação do Oriente 역으로 갑니다. 지하철 오리엔테 역에 내리면 곧장 기차역으로 연결되는데









오리엔테 역 주변엔 어우 막 거대 쇼핑몰이 있어서 가슴이 설렘. 그치만 오늘은 도시 간 이동을 하는 날이니 얌전히 대합실에 앉아 기차 시간을 기다리며 요 앞에서 산 과일 나부랭이를 오물오물 먹어봅니다. 나아아중에 리스본으로 돌아오니까 그때 확 쓸어야지...









비가 와서 그런지 밖이 꽤 쌀쌀해요. 그리하여 대합실에서 기차 올 때 까지 버티다가









5분 전에 짐가방을 드르르륵 끌고 후다닥 승강장으로 올라왔습니다. 이번 여행에선 거의 모든 도시간 이동을 기차로 하게 되었는데 아예 티켓까지 미리 예매해 버렸어요. 

http://www.cp.pt/passageiros/en 에서 날짜와 시간, 가격 등등을 체크하다 보니 호호 좀 일찍 인터넷 예약을 하면 할인을 팍팍 해 주길래 아이 몰랑 그냥 지금 사 버릴테야 했구먼.








예매한 기차표는 PDF 파일로다가 핸드폰 등에 옮겨서 슥 보여주면 되는데 혹시 몰라 프린트도 해 왔습니다. 

어디 보자, 11시 39분에 출발하는 525편 열차이고 21번 차량의 111번 좌석, 2등석이고 가격은 12유로고 등등 뭐라뭐라 쏼라쏼라 잔뜩 써 있구만요.









그리하여 오리엔테 역을 출발한 기차는 1시 반 경에 코임브라-B Coimbra-B역에 도착했던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으아. 

그냥 코임브라면 코임브라지 코임브라-B는 또 뭐냐, 이것이 말이죠, 이곳 코임브라Coimbra에는 두 곳의 기차역이 있는데 하나는 시내 중심부랑 그 주변을 왔다갔다 하는 단거리 열차가 주로 서는 역인 걍 코임브라 역이고 다른 하나는 장거리 열차가 주로 서는 코임브라-B 역이거든요. 저는 리스본에서 출발했으니 B에 내린 거야요.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입니다.









아니 그럼 시내까지는 어떻게 들어가느냐, 기차표를 소지하고 있으면 코임브라-B와 걍 코임브라(A라고 하기도 함) 사이를 무료로 환승할 수 있습니다. 이 환승 제도는 코임브라 뿐 아니라 리스본, 포르토 등 다른 도시에도 있더라구요. 

하여간 그리하여 샤샤샥 환승해 드디어 코임브라 역에 도착했어요. 근데 저 문 밖으로 나가면 곧바로 시내이긴 한데 어째 비 오는게 심상치 않으네... 아직 우산 안 사고 버티는 중인데...







그래도 다행히 예약해 둔 숙소가 바로 역 근처라 금방 찾았습니다. 영험하신 구글 GPS님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우얏든동 도도한 표정으로 프런트 데스크로 걸어가 예약했거든요를 외치니 네년이 그년이냐 하며 묵직한 스뎅 열쇠를 건네줌. 아니 뭔 놈의 열쇠가 이렇게 무거워...








숙소 예약 사이트에서 이런 저런 숙소들을 비교해 보는데 1926년에 오픈한 이곳 아스토리아 호텔Hotel Astória Coimbra의 리뷰가 웃겨서 확 질렀습니다. 

대략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생각나는 곳이다. 그런데 시설도 그 시대에 머물러 있다' 라는 내용인데 호호홍 사진으로 보면 깔끔 단정하고 고풍스럽지만 지금 이 소색깔 카펫에서 퀴퀴한 냄새가 풀풀 나고 있어요. 이게 차암 엄청나게 익숙한 냄새인데 뭔 냄새냐면 비 오는 날의 개 오줌 냄새임.









이것은 매우 곤란해를 부르짖으며 창문을 벌컥 열어제끼니 









몬데구 강Rio Mondego이 한 눈에 보입니다. 강 이쪽 편은 코임브라 구시가지고 건너편 저 먼 곳은 신시가지에요. 오른쪽 하단 구석에 숙소 간판도 빼꼼. 

제 방만 이런 냄새가 나는 거라면 방을 바꿔 달라고 요청했겠지만 호텔 전체의 문제인듯 하여 마음을 비우려 노력중입니다. 나 여기 3박 예약했어... 스멜과 공존해야해...









근데 냄새고 뭐고 허기가 져서 아주 그냥 죽갓시요. 일단 뭔가 아주 찌인하게 스며드는 뜨끈하고 걸쭉하고 기름진 것을 먹고 싶은데(라고 쓰다 보니 순대국인듯) 현재 시간이 오후 3시라 과연 문을 연 식당이 있을까 걱정됩니다. 









정 안되면 까페 가서 빵이라도 뜯어먹어야지 어쩌것냐 라고 중얼거리며 구시가지 골목 쪽으로 들어가는 중. 사진 왼쪽의 되게 이쁘장한 건물이 바로 제 숙소입니다. 야 진짜 생긴거는 멀쩡해 갖고 냄새가 어쩜 그러니. 









그리하여 여차저차 골목을 돌아다니다 고맙게도 영업중인 식당이 있길래 스윽 들어와 머리의 빗물을 탈탈 털며 메뉴판을 탐구해 봅니다. 

슥 보니까 수프랑 빵이랑 음료랑 메인 요리 하나랑 커피 또는 디저트까지 쫙 주는 코스 메뉴가 8.5유로라네요. 메인 요리는 뭐가 좋을까 궁리끝에 제일 궁금한 걸로 주문했어요. 뭔지 전혀 알 수 없는 거길래 걍 시켰엉 ㅎㅎ









and 와이파이 비밀번호까지 받아드니 그제서야 마음의 안정을 찾은 1인.









뜨끈한 칼두 베르드caldo verde









으슬으슬 비 오는 날 요것이 아주 그냥 심금을 뎅뎅 울립니다. 빵이랑 함께 훌훌 떠서 맛있게 먹고









경건한 마음으로 메인 요리를 받아듭니다. 뭔가 했더니 생선이여. 이름하여 도우라다 에스깔라다dourada escalada라는 것인데









부드럽고 슴슴한 흰살 생선을 반으로 갈라 구운 거구만요. 검색해 보니 도우라다dourada는 포르투갈에서 가장 흔하게 먹는 생선 중 하나라고 합니다. sea bream, 그러니까 도밋과라고. 에스깔라다escalada는 반으로 갈라서 굽는 조리법을 뜻하는 모양이구요.

지금까지 먹은 밥 중에서는 신트라의 문어구이가 단연 제 마음 속 유 스틸 마이 넘버 원이지만 이 생선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배 많이 고팠졍...









찐한 비까bica로 마무리. 그나저나 계속 비가 오는데, 그것도 좍좍 내리니 어우 큰일이야요. 커피를 마시며 잠시 바깥 동태를 살피다 그나마 좀 비가 잦아졌다 싶길래 과감히 밖으로 나가봅니다.









비에 젖은 멍뭉이









냄새 킁킁 멍뭉이









밥도 먹었고 날씨도 애매하고 시간도 애매하니 일단 아무 유적지라도 들어가 볼까, 이럴 땐 역시 대성당이지 하며 성당 어딨세요 두리번대는 중인데








말씀드리는 순간 으아니 웬 벼룩시장이 열렸지 뭐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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