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거대 머랭에 꽂혀 들어온 1인. 그러나 실은 머랭 말고도 쇼케이스에 뭔가 눈길을 확 사로잡는 달두왈이 있었던 관계로 그것을 주문합니다. 그게 뭐냐면
이것이여.
볼루 헤이bolo rei 라는 정신사나운 달두왈입니다. 볼루bolo는 케익 중에서도 그러니까 머핀이랑 비슷한 질감의 빵을 통칭하는 단어이고 헤이rei는 왕을 뜻하니 합치면 왕의 케익이야요. 크리스마스때 먹는 후식이니 '왕'이라는 건 예수를 말하는 것입니다.
과일 당절임과 견과류가 그득그득 들어간 케익인데 이게 으어마으어마하게 달아요. 얼마나 단가 하면 제가 반을 남겼을 정도임. 이날 기록한 여행 노트에 의하면 '야 이런 일도 있구나ㅋㅋ' 라고 합니다-.-
그래도 이쁘게 생겼으니 용서한다. 초록이 빨강이가 반짝반짝 하는 것이 딱 봐도 크리스마스 때깔 아니것습니까. 볼루 헤이는 1829년, 리스본의 제과점인 콘페이타리아 나씨오날confeitaria Nacional에서 처음으로 만들기 시작했다고 해요. 그 집이 유명해진 게 요 케익 덕분이라고.
그런데 실은 콘페이타리아 나씨오날의 주방에서 뿅 하고 탄생한게 아니라 프랑스에서 건너온 레시피를 변형한 것이라 합니다. 처음엔 크리스마스 때만 먹는 명절 음식이었지만 지금은 1년 내내 먹을 수 있는 전천후 전국구급 달두왈이 되었어요... 라고는 하지만 크리스마스때 먹는 볼루 헤이는 특별히 반죽 안에 콩(보통 잠두콩fava bean)을 한알 톡 넣어 굽습니다. 고것에 당첨된 사람은 그 다음 해 크리스마스때 모두에게 볼루 헤이를 쏴야 하는 풍습이 있다고.
요런 당첨 뽑기 풍습은 유럽의 다른 나라에도 있는데, 불가리아의 바니짜Баница 라던가 그리스의 바실로피따Βασιλόπιτα 등등입니다. 두근두근 재밌겠당...
그렇게 사람들로 복작이는 빵집에서 당과 카페인 충전을 하며 잠시 책을 읽는 중.
셰릴 스트레이드의 <와일드>는 영화로 먼저 만났는데 어우 원작을 읽으니 마음이 마구 요동쳐, 이 사람 많은 곳에서 울락 말락 하고 있습니다. 만나서 반갑다, 좋은 책!
슬슬 밖으로. 가게 쇼케이스 속 볼루 헤이의 자태를 카메라에 담아봅니다. 한 조각의 사이즈도 으엄청 큼직하니 전체 크기도 굉장해요. 왕의 케익인 만큼 왕관을 상징하는 뾰족 종이로 겉을 둘렀습니다.
뭐라뭐라 써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2013년 전국 볼루 헤이 대회에서 상을 받은 듯 하구만요. galantine de frutas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과일 갤런틴 부문에서 입상했나 싶기도 하구요(통박 데굴데굴).
그런데 사실 이 집의 볼루 헤이는 전통적인 볼루 헤이의 생김새랑은 많이 다른데, 보통은 왕관처럼 둥글고 가운데는 구멍이 뚫린 빵 위에다 색색의 보석을 상징하는 당절임 과일을 거의 통째로 턱턱 올리거든요. 구글에서 bolo rei를 검색하시면 설탕이 모니터를 뚫고 퓽퓽 튀어나올 것입니다. 근데 이 집은 고것을 좀 다르게 변주한 듯.
볼루 헤이 4유로, 커피 0.5유로 해갖고 4.65유로. 그나저나 저처럼 거대 머랭의 자태에 홀린 사람들이 여럿 보입니다.
아까 교복 망토 입은 언니들을 만났던 돌 아치로 다시 돌아갑니다. 겉에서 보면 입구도 자그마하고 그냥 구멍 뽕 뚫린 것 같지만
내부가 은근 깊숙하다니깐요. 뽀르따 에 또레 디 알메지나porta e torre de Almedina 라고 하는, 말하자면 이곳 코임브라의 출입구 역할을 하던 곳이랍니다. 코임브라 구시가지를 빙 둘러쌌던 성벽의 정문인데 지금은 성벽의 흔적이 드문드문 남아 있어요. 구시가지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려면 요 문을 자연히 통과하게 됩니다... 라는 것은 기념품 가게 오픈하기 딱인 자리임.
온 몸으로 나 포르투갈이에요를 외치는 물건들. 근데 왠지 중국 어드메의 공장에서 여얼심히 찍어낼 것만 같습니다.
아치 문을 통과해 언덕길을 조금만 올라가면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나 공연 보러 왔어요 근데 예약 안했는데 자리 있나요 하니 오케이 오케이 웰컴이라는 그분들.
파두 아오 센트로Fado ao Centro. 매일 저녁 6시에 파두 공연을 하는 곳입니다. 입장료는 10유로인데, 공연이 끝난 후 포트와인 시음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네요. 술 조오치...
파두 공연을 하는 술집이나 식당이 아닐까 했는데(그런 곳도 많습니다) 오호 이제 보니 여긴 일종의 문화 체험관인 모양이에요. 안쪽에는 파두의 개요, 역사 등을 소개하는 영상이 웨엥 돌아가고 있고 고 아래엔 비로도 의자가 두둥
그리고 양쪽 벽에는 파두의 역사와 함께 한 많은 음악가들의 사진이 가득합니다... 라고는 하지만 파두fado라는 음악에 대해 한 개도 모르는 1인. 포르투갈 여행 전에는 명칭만 들어봤고, 이 곳에 도착한 며칠 사이 기념품 가게 들락거리며 얼핏 얼핏 들은 것이 전부입니다.
이곳 파두 아오 센트로에선 공연 시작 전에, 그리고 곡과 곡 사이에 파두의 역사에 대해 꽤 상세히 설명해 주니 저처럼 파두 몰라요 한 개도 몰라요 라는 사람에게 상당히 유익하구만요. 하지만 적지 않은 시간이 설명에 할애되기 때문에, 난 파두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다 라는 사람이라면 야 씨 그 시간에 노래 한 곡 더해줭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두근두근두근두근
무려 12줄의 기타, 기타라 포르투게사guitarra portuguesa의 첑! 하는 텐션 센 소리와
베이스 역할을 하는 클래식 기타의 조화. 그리고 두 종류의 기타 소리에 전혀 지지 않는(오히려 그 사이를 팍 뚫고 나오는) 가수의 목소리.
사연 있어 보인달까, 호기심이 생긴달까, 이런 곡을 연주하는 사람, 이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면 보통 사람은 아닐 거야 라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부터 갖고 태어나야 하겠구나 싶은 목소리와 흥.
포르투갈 전통 음악 파두fado에 대한 공식 기록은 1820년대에 작성되었다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하아아아아안참 오래 전에 이미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8세기~12세기 사이(진짜 오랜 세월이네) 무어인의 지배를 받으면서 음악적 영향을 크게 받았고 또 하안참 나중엔 대항해시대라는 황금기가 도래하면서 가장 큰 식민지인 브라질과 활발하게 교류했는데 이때 브라질에서 또 그렇게 포르투갈 유학을 많이 왔디야. 그 양반들이 다양한 문화, 특히 음악에 역시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And 대항해시대 하면 화려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사랑하는 이가 배 타고 멀리멀리 가는구나 살아 돌아올지 죽어 영영 이별할지 기약이 없구나 라는 서글픔이 가득했던 시대인지라 그런 감정들이 전통 음악에 스스스스스 스솨솨솨솨 스며들게 되었다고 해요.
파두는 리스본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하다 이곳 코임브라로 건너 오면서 리스본과는 다른 스타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리스본 파두가 슬픔, 소박함, 널뛰는 감정을 담아내는 데 열중했다면 코임브라 파두엔 민중 계몽과 혁명 정신을 담은 곡들이 많다고.
1290년 설립된 코임브라 대학Universidade de Coimbra이 도시 한 가운데 딱 자리잡은 대학도시인 만큼 젊고, 으쌰으쌰하며, 피가 끓는 청춘들이 독재 정권에 대항해 끊임없이 저항한 역사가 있습니다... 라는 것은 뭔 독재 정권이냐, 1139년에 긴 역사를 시작한 포르투갈 왕국은 1910년에 그 막을 내리고 공화국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엄청난 변화가 생긴 것이죠. 그러니 한 큐에 연착륙을 하기 힘들지 않았것시요. 이후 16년간 15회의 군사 쿠데타와 45회의 정권 교체라는 징글징글한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다 1932년,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António de Oliveira Salazar라는 인물이 야 씨 이런 상황에선 마 콱 씨게 나가야 하는 거야 라고 버럭하며 독재를 시작했어요. 살라자르는 애들이 다들 각자들 잘나서 말을 안들어 처먹으니 너네 이제 공부하지마! 라며 본격적인 우민화 정책을 폈습니다.
이름하여 뜨레제피Três F, 즉 3F 정책. 80년대 한국의 우민화 정책, 3S 정책이 여기서 힌트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포르투갈 외에도 이런 우민화 정책... 국민을 기만하고 자기네만 똑똑한 줄 아는 고런 정책을 펼친 역사가 꽤 많지요.
그럼 포르투갈의 3F가 무엇이냐, 바로 축구Futebal, 파티마Fatima, 파두Fado 입니다. 축구를 활성화 시키는 동시에 스포츠 도박을 팍팍 밀어줘 국민들이 도박에 빠지게 만들었고, 카톨릭 성지인 파티마(성모 발현지)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띄워 국민들이 신비주의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파두. 전통 음악을 우민화의 도구로 사용하다니 정말이지 잔인한 독재 정부. 당시 문맹률이 30%에 달할 정도였으니 한때 유럽을 호령하던 교호양 있는 포르투갈에 이 무슨 날벼락인가.
하지만 코임브라의 대학생들은 오히려 우민화의 도구인 파두를 이용해 혁명을 일으킵니다. 피 끓는 청춘의 혁명 정신을 담은 파두 곡들은 세상에 나오는 족족 금지곡 딱지가 붙었는데 그 중에서도 파두 가수(파디스타fadista) 주제 아폰수José Afonso가 쓴 곡들이 그렇게 금지 금지 금지를 많이 당했다고. 독재 정권에겐 눈엣가시지만 학생들에겐 영웅이었겠지요.
그리하여 1974년 4월 25일, 혁명 정신의 상징적 인물인 주제 아폰수의 금지곡을 라디오에서 기습적으로 방송하는 것을 신호로 독재 정권 타도를 외치는 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명 카네이션 혁명Revolução dos Cravos이라고 하는데 시민들이 혁명에 기뻐하며 카네이션 꽃을 들고 나와 정권 교체를 요구하는 군인들에게 선물하자 군인들이 꽃을 총구에 꽂아 장식한 것에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라는 것은, 총을 사용할 일이 없었다는 얘기. 카네이션 혁명은 무혈, 명예혁명으로 유명합니다.
우민화의 도구였던 파두가 혁명의 도구로 바뀐 놀라운 사건. 으하하 나 파두 음악 처음 접하고 확 꽂혀서 역사 공부좀 했스야.
근데 코임브라의 파두에 그런 스토리가 있다고 해서 모든 노래가 다 혁명쏭이냐, 고것은 아니고요. 여기가 어디것습니까, 대학 도시 아닙니까. 대학 하면 청춘들이 있고 청춘 하면 연애질 아니겠어요? 그런 고로 세레나데도 차암 많습니다. 늦은 밤, 남학생이 맘에 담은 여성의 집 창문 아래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아름다운 노래 한 곡을 쭈와악 뽑으면 여성은 노래에 화답해 마음을 표현하게 되는데 만일 야 난 니가 매우 별로다 하는 경우엔 무반응이고 아잉 나도 맘에 있어요 라는 경우엔 방 불을 껐다 켰다 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고.
그리고 이게 한밤중의 연주다 보니 자칫하면 다른 집에 민폐 끼치게 되잖겠어요? 그래서 주변 구경꾼들도 오올~ 하고 환호하거나 박수치는 대신 입술 끝으로 쯋쯋 하는 소리를 내어 박수를 대신했습니다. 그래서 공연장에서도 곡이 끝날 때 마다 여러분 쯋쯋하세요 라며 가르쳐줌ㅋ
그나저나 여성 음악가가 많은 리스본 파두와 달리 코임브라 파두는 남성만 연주하고 노래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사진에서 보셨듯 파두 연주자들 모두 검은 망토를 쫘악 두르는 것이 또 전통이라고.
파두는 1830년대까진 철저히 서민층의 오락이었는데 19세기 초 리스본 최고의 파디스타인 마리아 세베라 오노프리아나Maria Severa Onofriana와 비미오소 백작Conde de Vimioso이 신분을 뛰어넘어 사랑에 푸욱 빠졌던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이야 그게 뭐 싶지만 당시엔 엄청난 스캔들이었던지라 아니 대체 뭔 일이야, 어떤 여자래, 파두는 또 뭐래 하며 귀족 사회에 파두에 대한 호기심이 몽글몽글 피어올랐고 급기야 그 매력에 다들 폭 빠지게 되었지 뭐야요.
근데 정작 러브러브의 주인공인 마리아 세베라는 26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리스본의 모든 파디스타들이 검은 옷을 입고 노래를 했는데, 그게 지금까지 쭉 이어져 전통이 된 것이라고.
근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나 이거 진짜 갖고싶어 우어어어어
12줄의 기타라 포르투게사guitarra portuguesa. 코임브라 스타일과 리스본 스타일 두 가지로 나뉘는데 요것은 물론 코임브라 스타일입니다. 리스본 기타 넥은 445mm, 얘는 470mm이니 쫌 더 길지요.
기타라 포르투게사는 일반 기타보다 소리가 훨씬 크고 탱탱 첑첑거리는데, 야외 연주가 많은 파두의 특성상 어이구야 그냥 기타 소리는 거리의 소음에 묻히는구나 하며 꿀리지 않는 소리를 내기 위해 여러 연구를 하다 개발한 악기라고 해요. 얘에 비하면 클래식 기타(Guitarra Espanola, 스패니쉬 기타) 소리가 베이스 소리마냥 낮게 들릴 정도입니다. 실제로 파두 공연에선 클래식 기타가 베이스 역할을 하고 있구요.
공연 전에는 그냥 옛날 사진이네 했던 것들이 새삼 다시 보이고
열두 줄이 어우 막 저의 심금을 울립니다. 나 이거 가지고 싶어, 얼만지 모르지만 일단 물어나 볼래.
그 와중에 입구에선 포트와인 시음중. 약 4-50분 가량의 공연을 즐기고서 요 달달하고 살짝 독한 포트와인을 호로록 마시니 어우 뭔가 속이 짜안~ 하면서 뜨끈뜨끈, 기분이 무척 좋아집니다.
어쩌면 비가 오고 있어 더 좋은지도.
처음 한 잔은 직원이 따라주고, 이후엔 자유롭게 마시게코롬 술병을 걍 놓아둡니다. 그 그럼 나 나도 한잔 더 ㅎㅎ
며칠 후엔 포트 와인의 도시에 갈 예정이에요. 기대되는 곳입니다.
이제 보니 이 곳의 로고도 기타라 포르투게사 모양입니다. 공연 관람 전에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거참 그 잠깐동안 음악에 세뇌당한 느낌마저 듭니다. 묘한 힘이 있어요.
밖은 여전히 비. 점점 더 세차게 내리니 후다닥 숙소로 뛰어가야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