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품 가게를 콕콕 찍고 다니며 포르투갈에서는 뭘 사갖고 가면 좋을까 나름 진지하게 탐구한 후 조용한 코임브라 시내를 계속 걸어갑니다.
옐로우 버스 여행사yellow bus tours의 입간판. 리스본과 포르토, 코임브라, 기마랑이스, 브라가, 푼샬 등의 도시에 지점이 있는 여행사인데 버스, 배, 트램 투어라던가 걷기 투어 등의 상품이 있어요. 여행하는 내내 요 회사 광고를 으엄청나게 자주 보았습니다.
하여간 고렇게 잠깐 걸으니 산타 크루즈 수도원Mosteiro de Santa Cruz에 도착했습니다.
모스떼이루Mosteiro를 영어로 하면 Monastery에요. 무려 1131년에 완공된 건물로 포르투갈의 국가 문화재인데 호호 오늘은 일요일이라 아까 갔던 대성당Sé Velha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여행자의 방문을 받지 않습니다.
그럼 왜 여길 왔느냐면 일단 코임브라 시내가 어찌나 아담한지 걍 쫌만 걸으면 이런 곳이 툭툭 튀어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기 저 정면의 악기점을 찾아 온 거에요.
어제 파두fado 공연을 보고 들은 다음 가수들을 붙잡고 대체 어딜 가면 이 멋있는 기타를 살 수 있나요 라고 물어보니 산타 크루즈 수도원 앞 광장 악기점이 있단다 하지만 일요일에는 문을 닫는단다 라고 알려주길래 그렇군요 하며 걍 답사 한번 와봤엉 ㅎㅎ
저처럼 방향 감각을 백년전에 분실한 사람은 이렇게 답사를 와 줘야 다음날 무사히 다시 찾아 올 수 있습니다... 라고는 하지만 이래 놓고 다시 못 찾는 경우도 아주 많음. 길 찾기는 신의 영역인줄 아뢰오.
그나저나 악기점 왼편 건물의 아줄레주가 예뻐서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 보았는데, 워메 타일 조각마다 다 붓칠 자국이 다른데요? 그니까 일단 가다-.-를 하나 만들어 대량으로 찍어낸 다음 색은 일일이 수작업을 한 모양입니다.
라고 잠시 딴소리를 한 후 악기점 창문에 찰싹 달라붙어 그 분을 구경하기 시작함.
기타라 포르투게사guitarra portuguesa! 295유로라는 가격표가 쿵야 붙어 있습니다. 어젯밤 숙소에서 핸드폰을 붙들고 얼마야 얼마 대충 얼마야 여얼심히 검색을 했는데 가격대가 천차만별이더라구요(당연하다).
일단 가게 위치를 확인했으니 내일을 기약합니다. 다시 와서 이것 저것 물어볼테다.
그나저나 슬슬 점심을 먹어야것지 하며 산타 크루즈 수도원을 슥 올려다 보는데
정면 파사드의 천사들이 길다란 나팔을 뿜빠밤 불고 있어 식겁합니다. 얘들아 나팔 함부로 부는 거 아니야-.- 불바다 만들 일 있니-.-
수도원의 역사와 의의를 간략하게 설명해 놓은 안내판. 이곳 뿐 아니라 포르투갈의 모든 문화재 앞에는 같은 디자인의 안내판이 서 있습니다.
산타 크루즈 수도원 바로 옆, 오르막 골목을 올라가 봅니다. 근데 어우야 깜짝이야 밤에 봤으면 진짜 무서웠겠다
식당을 비롯해 옷집 화장품집 미용실 잡화점 등등 모두 싸그리 일요일에는 가족과 함께이고 저를 향해 매우 반갑게 손짓하는 곳은 피자집과 타코집 정도인데 오빠들 내가 인간적으로 포르투갈에서 피자나 타코를 먹고 싶지는 않아요 나는 포르투갈 밥을 먹어야겠어요
그리하여 이 골목 저 골목을 들락거리며 괜히 코임브라 지리에 익숙해지다가 다시 수도원이 있는 광장 쪽으로 내려와
아까 봐 두었던 식당으로 향합니다. 광장이라던가 큰 길 주변 식당, 기념품점은 여행자 손님들을 위해 일요일에도 문을 열지만 그래도 혹시 다른 곳 어디 숨어있는 식당 없을까 찾다가 결국 포기했어요.
그리하여 은혜로운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경건하게 영접하고
야들야들한 문어님을 먹습니다. 이름하여 뽈보 꼼 몰류 베르드polvo com molho verde 라는 것으로 뽈보polvo는 문어, 몰류molho는 소스, 베르드verde는 초록색이니 초록 소스를 곁들인 문어인 것이야요.
냠냠 먹어보니 아하 문어를 삶아 얇게 자른 후 소스에 절인 것인데
와인 식초의 새큼한 맛이 확 나면서 양파랑 코리앤더, 파슬리 향기가 파바박 때려주는게 아주 맛있습니다! 올리브 오일도 듬뿍이구요.
전채 요리를 고르다 문어가 있길래 꺄악 하며 콕 찍은 것인데 나중에 검색해 보니 포르투갈에서 흔하게 먹는 새콤 산뜻, 시원한 음식이라고 하네요. 포르투갈에선 문어를 다양하게 요리해 먹는다더니 우오오 여행 중 먹은 문어들 모두 하나같이 무척 맛있습니다.
호호호 그리고 곧이어 등장한 저의 메인 요리는
알례이라 드 미란델라alheira de Mirandela 라는 것이옵니다.
알례이라alheira 는 포르투갈 소시지인데, 리스본의 쿠킹클래스에서 요 소시지의 속 내용물을 으깨서 썼던 기억이 나요. 미란델라Mirandela는 포르투갈 맨 위, 북동쪽 끝에 있는 도시인데 요 알례이라 소시지를 맛있게 만드는 걸로 유명한 곳이라고 합니다.
고것을 바싹 튀긴 거랑 밥이랑 겨란 후라이랑 감자 튀김이 접시에 가득.
겉은 빠사삭하고 속은 촉촉한 맛있는 알례이라! 닭고기랑 빵가루를 넣은 소시지에요. 그래서 풍미가 막 강하지 않고 부드럽고 촉촉하면서 입 안에서 쉽게 으깨지며 풀어집니다. 일반적인 소시지의 맛, 질감과 꽤 달라요.
알례이라를 개발한 것은 포르투갈에 살던 유태인들인데, 종교적인 이유로 돼지고기 대신 닭고기를 이용했다고.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러니까 이베리아 반도엔 많은 유태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15세기 후반 스페인 정부에서 대대적인 추방령을 콱 내려 버렸습니다. 야 너네 4개월 줄 테니까 스페인을 떠나던가 카톨릭으로 개종하던가 둘 중 하나 선택해. 말 안들으면 종교 재판에 확 회부해 버릴 것이여.
그리하여 식겁한 유태인들은 포르투갈로 우루루 피난을 와 잠시 숨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꼴랑 4년 후, 포르투갈의 왕이 스페인의 공주와 정략적으로다가 결혼을 하게 되면서 스페인 왕실이 제시한 결혼 조건인 유태인 박해 정책을 받아들였던 것이야요.
그런데 포르투갈은 스페인과 달리 오히려 유태인의 출국을 금지하고 걍 싹 다 카톨릭 교회로 끌고 가 강제로 개종을 시켜부렀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스페인에선 유태인을 비롯한 이교도 그니까 카톨릭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자국의 식민지로 이주하는 것을 빡시게 금지시키고 계속 색출해 냈는데 포르투갈은 식민지 개발 차원에서 꽤 유연한 정책을 폈습니다. 응응 가톨릭으로 개종만 하면 거기 가서 살아도 돼.
이렇게 두 나라의 이교도 관련 정책이 꽤 다른 이유는, 딴 게 아니라 스페인은 인구가 마아않았기 때문에 이교도를 싹 다 내쫓거나 죽여도 큰 상관이 없었지만 포르투갈은 인구가 적어(당시 총 인구가 꼴랑 백만 명 정도였다고) 한 명이라도 더 늘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and 식민지에 널리널리 내 보낸 다음 이민세 팍팍 거둬들이기도 좋고 말이죠... 라는 것은 역시 돈 ㅎㅎ
아 맞다 돈 하니까 생각났어요. 점심 먹은게 얼마냐면 문어가 6.5유로, 소시지가 6.5유로, 탄산수가 1.2유로 해서 14.2유로입니다.
산타 크루즈 수도원이 있는 이 아담한 광장의 이름은 5월 8일 광장Praça 8 de Maio입니다.
1828-1834년 사이 포르투갈에 내전이 일어났는데 뭔 내전이냐면 절대 왕정 체제냐 신 자유주의를 도입할 것이냐를 두고 형이랑 동생이 피터지게 싸운 이야기야요.
그니까 포르투갈은 오호호랫동안 절대 왕정 체제를 고수해 온 나라였는데 19세기 초부터 슬슬 입헌군주제 쪽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선거를 통해 선출한 의원들로 이루어진 하원을 따악 구축하고, 행정권과 사법권을 각각 재판소와 내각으로 분리해 왕실의 절대 권한을 분산시키자는 것인데... 요것에 대해 기존 귀족(지주)와 성직자들이 아주 발끈했던 것입니다. 야 씨 그동안 잘 해먹었는데 미친거 아니니? 하며 외국에 나가 있던 왕잣님을 뫼셔와 왕권을 탈취하도록 팍팍 밀어줍니다. 1828년의 이야기.
이 왕잣님이 누구냐면 당시 포르투갈의 왕 페드루 4세D. Pedro IV(이자 브라질의 페드루 1세이기도 함)의 동생인 미겔인데
왕잣님, 아니 새로운 왕이 된 미겔 1세D. Miguel I는 왕좌에 앉자 마자 상원이며 하원이며 싹 다 폐지해 버렸구요. 그러자 아 쫌 뭔가 변화가 생기려나 기대했던 자유주의 세력들은 으앗 여기서 가만 있음 우리 다 죽는다며 동생한테 뒤통수를 씨게 맞은 형에게 힘을 팍팍 모아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1832년, 형은 영국과 스페인의 지원을 받아 동생과 본격적인 전투를 시작했고, 여차저차 저차여차한 싸움 끝에 1834년 5월 24일 동생이 항복을 선언하면서 포르투갈 내전은 끝이 납니다. 코임브라의 5월 8일 광장은 내전 막판이었던 5월 8일, 형쪽 군대가 바로 이 광장에 위풍당당 들어온 것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이름을 붙인 것이구요.
라고 말하며 계속 걷는 1인이옵니다. 열심히 걸어야 소화가 되겠지? 소화가 되어야 또 먹겠지? 호호홍
그러나 일요일은 일요일. 가는 곳 마다 싹 다 전멸입니다.
이곳은 또레 다 꼰뗀다torre da contenda, 그니까 전투 기념탑이라는 것인데 뭔 전투 이야기인지도 모르것고(안내문이 있으나 전투 이야기는 전혀 없어서 좌절함) 가이드 투어가 있다는데 문이 굳게 닫혀 있는 관계로
알것다 알것어 오늘은 그냥 얌전히 산책하다 책 읽다가 밤에 파두 공연이나 가야것다 라며 마음을 내려놓기로 합니다.
그래도 가져온 책이 무척 재미있으니 다행이지 뭐야요. 부피도 무게도 상당하니 출발 전 짐을 꾸릴 땐 책을 가져갈까 말까 망설이곤 하지만 그래도 책 없으면 여행이 훨씬 힘들어 질 것 같습니다. 아이패드 미니로 전자책을 읽는 것도 생각해 보았는데 음... 저는 그건 좀 힘들더라구요. 킨들 단말기라면 좀 편안하려나.
걷다 보니 아침의 그 골목 입구가 다시 나옵니다. 코임브라 대학교 쪽으로 올라가는 언덕 골목. 요 왼쪽으로 들어가든 오른쪽으로 빠지든 결국은 언덕 위, 대학교 앞에서 만나게 되는데 왼편 표지판에는 대학 말고도 다른 곳이 표시되어 있구만요. 무제오museu 어쩌구 저쩌구.
그리하여 낙서로 가득한 골목으로 들어가
스티커 덕지덕지 표지판을 지나
문제의 무제오 어쩌구에 도착합니다.
museu nacional de Machado de Castro라는 길고 긴 이름으로, 코임브라 출신의 조각가 호아킴 마차도 드 카스트로Joaquim Machado de Castro의 이름을 딴 국립 박물관이야요. 코임브라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그득한, 말하자면 도시 역사를 담고 있는 박물관으로 일요일에도 오픈하는 매우 은혜로운 곳입니다. 1913년에 문을 열었으니 100년도 더 되었네요.
라고는 하지만 호호 유물을 보러 온 것은 아니고 걍 여기서 내려다 보는 전망이 좋다길래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라며 함 와봤시요.
코임브라 구시가지와 대성당Sé Velha이 한 눈에.
성당의 돔탑, 그리고 붉은 지붕 위에 더께처럼 내려앉은 세월.
잠시 선 채로 풍경을 바라보다 언덕 아래로 내려갑니다.
근데 98번지 이 집엔 대체 뭔 일이 있길래 이 난리여
대학 도시 답게 온갖 전단지며 스티커가 덕지덕지 더더더덕지
말씀드리는 순간 자동차 위에서 휴식을 취하시던 그 분과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그윽한 눈빛의 그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