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indy Hwang 황선연 Oct 17. 2022

3. 경복궁 화재사건 - 2


 마당 한가운데 이어진 돌길을 따라가자 흥례문이 나왔다. 근정문을 지나고 궁궐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하다는 근정전이 나타났다. 가는 도중에 수진이 포즈를 취하면 클라스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녀가 같이 찍자 해도 그는 손을 휘저으며 연신 거절했는데 사진에 찍히기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것 같았다. 싫다는 데에 계속 조르기도 좀 그래서 그녀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셀카를 찍었다.


 클라스가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좀 걸릴 것 같으니 먼저 구경하고 있으라 했다. 그는 손에 쥐었던 안내서를 그녀에게 건네주며 떠났다. 그녀는 홀로 근정전으로 향하였다. 안내서의 설명을 찾아보았다.

 

[근정전(勤政殿)은 경복궁의 정전(正殿)으로 왕이 신하들의 조하(朝賀:조회의식)를 받거나 공식적인 대례(大禮) 또는 외교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정전인 근정전은 궁궐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건물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바로 앞에는 중요 행사를 치를 수 있는 넓은 마당이 있고, 그 둘레를 행각이 감싸고 있다.]


 그녀는 봉황문과 당초문이 새겨진 2단 월대를 올라 근정전 앞에 섰다. 실내 입구를 막아놓아서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관람객들 사이에 낀 채 그 자리에서 내부를 휘이 둘러보았다. 한가운데에 조선의 임금이 앉았던 어좌가 있고 바로 그 위로 두 마리의 철조룡이 있는 천장 장식이 눈에 띄었다. 그렇게 요리조리 쳐다보고 있던 그때였다.

     

“구르릉, 구르릉, 구르르릉~”     


 뒤에서 별안간 이상한 괴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뭔가 타는 냄새와 연기가 강하게 코와 눈을 자극했다. 그녀는 급히 뒤로 돌아보았다. 그녀의 두 눈동자가 공포에 휩싸여 휘둥그레졌다. 도저히 지금 눈앞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두 눈을 감았다가 다시 힘주어 떴다. 이런, 꿈이 아니었다.


 근정전 앞의 넓은 마당 위로 활활 타오르는 불구름덩이가 공처럼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게 아닌가? 하나가 거의 그녀의 키만큼 거대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몇 개가 이리저리 공처럼 굴러다니며 월대와 다리를 가볍게 통과하더니 궁궐과 행각을 스쳐 지나며 화르르 불을 붙이고 있었다. 한쪽에 불이 옮겨 붙은 궁궐과 행각들이 점차 화염에 휩싸여갔다. 목조건물들이라 겨울철의 마른 장작처럼 잘 타들어갔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다.


“으악, 어서 도망쳐요!”


 그런데 아무런 반응도 들려오지 않는 것이었다. 활활 불타오르는 소리와 구르는 소리만 들릴 뿐 조용했다. 그제야 그녀는 시선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근정전 내부를 보기 위해 서로 몰려있던 관람객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근정전 마당에도, 행각에도, 저 멀리 다른 궐에도, 평소 사람으로 북적이는 곳이었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텅 빈 것 같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이게 무슨 해괴한 일이람! 아 맞다, 클라스.’


 그녀는 급히 마당으로 튀어나갔다. 그를 찾아야만 했다. 불길에 휩싸인 어딘가에서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정신없던 찰나였다. 아주 뜨거운 불덩이가 바로 그녀 앞을 지나쳐 굴러갔다. 순간 너무 뜨거워 오징어 구이가 될 뻔했지만 다행히 피해서 화상을 입지 않았다. 하마터면 저 세상으로 갈 뻔했다며 그녀는 심호흡을 하여 겨우 정신을 다잡은 후 양 옆을 주시하며 다시 달렸다. 화장실을 찾으려 했지만 불길에 휩싸여 어디가 어디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커다란 불구름덩이 하나가 행각 위를 넘으며 날아와 그녀 앞으로 쿵 하고 떨어졌다. 놀란 그녀가 급히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죽어라 달렸다. 그런데 어째 뒤통수가 점점 뜨거워지는 게 아닌가? 뒤돌아보니 그 덩이가 그녀를 쫓아 굴러오고 있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왼쪽으로 꺾었다. 그런데 무슨 추적 장치라도 달린 양 그것이 왼쪽으로 꺾는 것이었다. 그녀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아 이번엔 오른쪽으로 꺾었다. 그것이 따라 굴렀다. 그녀는 울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겨우 억누르며 무작정 앞으로 내달렸다. 그런데 나가려던 문이 완전히 불길에 휩싸였다. 도저히 통과할 수가 없었다. 

 ‘아, 이 일을 어쩌지?’

 불로 앞뒤가 꽉 막혀버렸다. 이대로 오징어 구이가 되어야만 하는가? 그녀는 망연자실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할 수 없이 마당을 계속해서 빙빙 돌았다. 불덩이는 주인을 따르는 강아지 마냥 열심히 그녀 뒤를 쫓아왔다. 점점 힘이 빠지더니 그녀가 그만 헛발질을 하고 말았다. 그대로 땅에 넘어졌다. 그녀의 뒤로 불이 무섭게 굴러오고 있었다. 그녀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너무 힘이 들고 지쳐 손가락조차 까닥할 수 없었다. 살갗이 익을 듯이 뜨거워졌다.

 

“이봐, 정신 차려!”


 누군가가 다급히 소리쳤다. 동시에 그녀의 몸이 공중으로 휙 들어 올려졌다. 그녀의 감긴 두 눈이 번쩍 떠지었다. 쳐다보니 어떤 동물의 등에 타고 있었다. 세상에나, 광화문 앞에서 감상했던 그 해치상이었다. 그것이 살아나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이며 달리고 있었다.


“관악산의 화기(火氣)가 이리 세게 공격한 적은 없었는데. 꽉 잡아!”


 그것이 있는 힘껏 점프하여 불타는 행각을 뛰어넘었다. 그것이 공중에 뜨자 몸에서 물방울이 주르르 비처럼 아래로 흘러내렸고 행각에 닿자 불이 연기를 내면서 사그라들었다. 저 앞의 건물 뒤로 경회루가 얼핏 보였다. 연못의 초록 물을 보자 수진은 조금이나마 힘이 났고 다시 클라스가 떠올랐다.


“친구를 찾아야 해요! 어서 친구를!”


“정신 차려! 여긴 현실이 아니야. 지금 너의 환상 속이라고.”


 경회루 연못을 향하여 달리는 해치가 주변을 주시하며 크게 외쳤다.


‘나의 환상 속이라고? 그럼 이 모든 게 다 가짜란 말이야? 아니야, 불길이 엄청 뜨겁던데. 진짜처럼 뜨거웠어.’


 그녀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난데없이 그들 옆으로 불구름덩이 하나가 무서운 속도로 굴러왔다. 그녀는 두려운 표정으로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으악, 옆을 조심해요!”


 해치가 옆을 주시하더니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허공으로 펄쩍 뛰어올랐다. 그 사이 그것은 그들 아래로 쓱 하고 지나갔다. 해치의 물결무늬에서 떨어진 물방울을 맞은 부분이 시커멓게 식으며 수증기가 팍 피어올랐다.



 그들은 경회루에 다다랐다. 등에서 내린 그녀는 그것의 명령대로 안으로 뛰어올랐다. 바람이 불어오자 더욱 자욱해진 연기에 휩싸인 그것은 다행히 아직 멀쩡했다. 불타오르는 궁에서 유독 홀로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채 서 있는 게 참으로 고고하면서도 기이한 광경이었다. 경회루 안에 서서 연못을 내려다본 그녀는 더욱 놀라운 광경에 그만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살얼음이 낀 연못가를 빙 둘러싸고 온갖 석상들과 조각상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경복궁의 돌다리나 월대, 궁전 장식, 벽, 하물며 정자나 문, 궐 지붕의 추녀마루 끝에 앉아있던 각종 잡상들(아래 사진 참조)까지 총동원되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말, 뱀, 호랑이, 소, 양, 여의주 문 작은 청룡, 원숭이, 주작, 쥐, 토끼, 거북이, 두꺼비, 사자들, 코끼리, 사슴, 황금 봉황, 날개가 있는 천마, 두 마리의 황금용과 철조룡, 그리고 그녀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고양이처럼 생긴 ‘천록’과 ‘서수’란 신기한 동물들도 있었다.


 그것들은 살짝 언 얼음을 돌로 된 몸으로 깨어 입으로 연못물을 잔뜩 마신 후 소화기처럼 뱉어냈다. 또한 연못물로 온몸을 적셔 불 위를 떼구루루 구르면서 화재를 잠재우려 했다. 그들 곁에서 사오정, 마화상, 이구룡, 천산갑, 저팔계, 손오공, 삼장법사 등의 잡상들이 인형만 한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모두 힘을 합쳐 드므(물 청동 항아리)를 들거나 던지며 오물조물하게 돕고 있었다. 그것들은 불에 들어가도 그을음이나 생길 뿐 타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를 태운 것 말고도 해치가 여럿 더 있었다. 그것들은 연못에 빠져 온몸을 충분히 적신 후 행각 위와 궁궐을 달리거나 뛰어넘으며 몸에서 흐르는 물방울을 계속해서 떨어뜨렸다. 

 불길이 곧 잡혀가기 시작했다. 다들 정신없이 경복궁 여기저기를 휘저으며 날거나 뛰어다녔다.

     

 불현듯 연못의 표면이 출렁이었다. 기포가 밑에서 보글보글 올라왔다. 수진은 불길한 눈초리로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초록색의 이끼와 살얼음이 듬성듬성 낀 수면 밑으로 어두운 그림자 비슷한 것이 조그맣게 비추며 나타났다. 그러더니 점점 빠른 속도로 커지는 것이었다.

“푸욱~” 물밑에서 검은 뭔가가 물을 튀기며 불쑥 튀어 올랐다. 그것이 위로 솟구쳐 오르자 온 궁궐과 주변으로 물세례가 퍼지며 소낙비처럼 떨어졌다. 수증기를 동반한 연기가 구름과 안개처럼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가운데, 그것이 구름을 제치며 제 모습을 드러내었다.


 바로 청동으로 만든 황금색 용이었다. 그것은 온몸을 꿈틀거리며 살아나서 하늘을 날고 있었다. 놀란 그녀가 급히 정자 안으로 피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것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후다닥 날아와 그녀의 등 뒤로 사뿐히 내려앉더니 이글거리는 눈알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것의 얼굴인 용상(龍狀)은 무시무시했다.


 그것은 그리 크진 않았지만 갑자기 들이닥치는 바람에 그녀는 겁에 질려 빠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근데 너무 급히 뒤로 내뺀 것일까? 그녀의 허벅지 뒤쪽이 난간에 턱 걸리더니 그만 균형을 잃고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추락하는 그녀의 두 손이 마치 번지 점프하는 사람처럼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리는 가운데 그대로 연못에 빠지고 말았다. 그것이 뒤따라 연못 안으로 용상을 들이밀며 내려오는 것까지 목격한 후 그녀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광화문의 잡상들>




이전 06화 3. 경복궁 화재사건 -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