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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Oct 02. 2022

3. 경복궁 화재사건 - 1

3. 경복궁 화재사건


“우와, 예쁘다!”


 클라스가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와 수진은 경복궁 주변의 한복대여점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그녀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었다. 빨간 옷고름이 달린 연두색 저고리에 주황색 치마를 입고 머리는 곱게 따서 끝에 빨간 댕기로 묶어주었다. 사또 복장을 한 클라스는 처음 보는 여자 한복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힐끔힐끔 그녀의 고운 자태를 마음껏 감상하였다. 그녀는 무척이나 아름답고 우아해 보였다.

 그러나 수진은 그런 말을 듣고도 하나도 기쁘지가 않았다. 아니, 도리어 숨소리와 콧소리가 점점 커지고 거칠게 씩씩거리는 것이 이내 얼굴까지 시뻘게졌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하필 오늘이.’


 그녀는 너무 실망하여 잔뜩 굳어진 표정으로 보도블록만 바라보며 걸었다. 어젯밤 고르고 골라 예약한 한복집에 막상 도착해보니 남은 것이 지금 자신이 입은 평민 한복과 시커멓고 우중충한 회색 한복 딱 두 벌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나 사진에서 보았었던, 화려한 색깔에 장식이 아기자기하고 샤방샤방 날리며 아름답게 꽃을 수놓은 치마나 금박으로 우아하게 소매 부리를 장식한 저고리 같은 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먼저 온 몇십 명의 중국 단체 여자 관광객들이 이미 다 싹쓸이하여 남은 게 이것들뿐이라며 대여점 아주머니가 기쁨이 섞인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녀가 입은 치마는 꽃이나 자수는 고사하고 그냥 뻣뻣한 무명천을 잘라 바느질한 게 다였고 저고리 역시 아무 장식이 없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저고리의 소매 끝이 거므스리 때까지 끼어있는 게 아닌가? 대여점 아주머니는 미안하다며 대여비를 좀 깎아주었지만 평생 남을까 말까 한 데이트 사진을 찍을 마당에, 돈은 전혀 중요하지가 않았다. 오직 예쁜 한복을 입느냐 마느냐,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돈은 클라스가 내기로 되어 있었다. 예약이 안 된 다른 가게로 가볼까 했지만 내려가는 기차 시간도 있는지라 그냥 경복궁으로 바로 가자며 그가 제안했다.


 그녀는 경복궁 구경이고 사진이고 간에, 입은 한복을 두 손을 쫙쫙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화를 꾹꾹 억누른 채 광화문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어깨에 멘 빨간 핸드백을 안쓰럽게 어루만졌다. 예전에 지원이 선물로 주었었던 그 예쁜 가방 말이다. 하긴 솔직히 그녀에게 핸드백이 이것밖에 없기도 했다.  

 클라스가 아까 대여점에 비치된 경복궁 안내서를 옆에서 크게 읽어주었다.     


[경복궁은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입니다. 북으로 북악산을 기대어 자리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가 펼쳐져, 왕도인 한양(서울) 도시 계획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창건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졌다가, 고종 때인 1867년 중건되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이 주도한 중건된 경복궁은 500여 동의 건물들이 미로같이 빼곡히 들어선 웅장한 모습이었습니다.

 

 궁궐 안에는 왕과 관리들의 정무 시설, 왕족들의 생활공간, 휴식을 위한 후원 공간이 조성되었습니다. 또한 왕비의 중궁, 세자의 동궁, 고종이 만든 건청궁 등 궁궐 안에 다시 여러 작은 궁들이 복잡하게 모인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거의 대부분의 건물들을 철거하여 근정전 등 극히 일부 중심 건물만 남았고, 조선 총독부 청사를 지어 궁궐 자체를 가려버렸습니다. 다행히 1990년부터 본격적인 복원 사업이 추진되어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흥례문 일원을 복원하였으며, 왕과 왕비의 침전, 동궁, 건청궁, 태원전 일원의 모습을 되찾고 있습니다.      

 

 광화문 - 흥례문 - 근정문 - 근정전 - 사정전 - 강녕전 - 교태전을 잇는 중심 부분은 궁궐의 핵심 공간이며,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대칭적으로 건축되었습니다. 그러나 중심부를 제외한 건축물들은 비대칭적으로 배치되어 변화와 통일의 아름다움을 함께 갖추었습니다. 수도 서울의 중심이고 조선의 으뜸 궁궐인 경복궁에서 격조 높고 품위 있는 왕실 문화의 진수를 맛보시기 바랍니다.]



“음. 1395년에 처음 건설된 거라면 그리 오래된 건 아니군.”


“그래도 거의 600년이 넘어, 클라스. 그 정도면 오래된 거라고.”


“에잇, 600년 정도는 뭐. 한 3,000년은 넘어야 오래되었다고 부를 수 있지.”


“3,000년 넘는 건물이 전 세계에 몇 개나 된다고. 별로 없을걸.”


“여기서야 그렇겠지.”


 가끔 클라스는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에서 온 것 같은 말을 할 때가 종종 있었다. 지금도 그랬다. 여기라니, 그럼 그는 어디 화성에서라도 왔단 말인가? 진짜 반 남자애들이 말하는 외계인 아니여?


 서로 말을 주고받으니 기분이 조금 풀린 그녀는 그의 요청에 따라 광화문의 하얀 궁궐 담장 앞에서 귀여운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다른 여자들의 아름다운 한복에 눈길을 주지 않으려 일부러 노력하면서.      


 광화문으로 향하던 그녀는 잠시 서서 문 앞을 지키고 있는 해치 석상을 관찰하였다.


[강한 햇살을 받아 환하게 빛을 발하는 이 동물상은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몸체와 얼굴로 이루어져 있고, 온몸에 마치 파도가 이는 듯 물방울무늬 닮은 비늘이 촘촘히 덮여 있다. 네 개의 발등에서 시작된 기다란 깃털 같은 날개가 다리와 등을 타고 위로 삐죽 올라가는데 퉁퉁한 몸집에 비해 좀 빈약한 듯 보인다.

 그러나 입을 벌리고 활짝 웃는 그것의 표정은 구경꾼들을 미소 짓게 만들 정도로 얼마나 유쾌하고 익살스러운지 모른다. 흥이 올라 버럭 치켜뜬, 눈꺼풀이 없어 꼭 튀어나올 거 같이 힘이 잔뜩 들어간 두 눈알과 두꺼운 입술을 비집고 밖으로 튀어나온 이빨들이 전혀 험상궂거나 무섭거나 하지 않는다. 하물며 지나가는 아이들조차 귀엽다며 좋아한다.]


 그녀가 그것을 흥미롭게 감상하자 클라스는 안내서를 훑으며 관련 설명을 이어갔다.


“수진, 여기 설명을 좀 들어봐.

[해치는 사자와 비슷하나 머리 가운데 뿔이 달렸다는 상상의 동물로서 시비나 선악을 파악하여 정의를 수호한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기 위한 신수(神獸)로 여겨 궁궐 등에 장식되었다. 광화문의 해치상은 경복궁과 마주친 위치에 있는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해 정문 앞에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음, 근데 실제 모습보다 너무 착하게 조각했는걸.”


“상상의 동물이라며? 방금 네가 읽었잖아. 근데 그걸 어떻게 알아?”


“얜 진짜로 있어. 어쨌든 너무 안 닮았다. 실제로 보면 얼마나 못생기고 흉측한데. 한마디로 영 재수 없고 기분 나쁜 인상이야.”


“풋, 싱겁게 농담은.”


 수진은 그의 또다시 시작된 엉뚱한 대답에 싱거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들은 그것을 지나쳐 바삐 걸음을 옮기었다. 생각보다 일정이 꽤나 빠듯했기 때문이다.



 

 구름 한 점 없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 쏟아지는 햇살 아래 광화문은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더욱 아름답고 우아하며 고풍스러웠다. 아마 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인왕산의 부드러운 능선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국내와 해외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에 떠밀려 그들은 꾸역꾸역 안으로 들어갔다. 한복 차림으로 입장하면 관람료는 무료였다.      


“엄마, 엄마.”


 해치상 정면을 바라보는 위치에 서 있던 네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한 꼬마가 엄마의 손을 마구 흔들어댔다. 엄마가 왜 그러니 눈빛으로 내려다보자 아이는 고사리 같은 자그마한 손가락으로 해치를 가리키며 칭얼대었다.


 “방금 저거 눈알이 옆으로 움직였어. 진짜야.”         


  


<광화문의 해치 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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