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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Dec 04. 2022

4. 뱀파니아 - 1

4. 뱀파니아


 드넓게 펼쳐진 옥수수 평원 아래 지하에는 난쟁이 왕국인 ‘딥언더니아’가 개미집처럼 사방으로 뻗어있었다. 그 위로는 깊은 산맥이 우뚝 선 채 아래 평원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것이 어찌나 높은지 꼭대기에는 늘 만년설이 쌓여있었다. 바로 이안과 수진, 카할이 학의 발톱에 매달린 채로 지나쳤었던, 어떠한 무단침입도 결코 가벼이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짙은 원시성과 오묘한 신비성을 불길하게 내뿜으며 무언의 경고를 보냈던 산꼭대기 ‘흰모자노인장’과 그 뒤로 구불구불 이어진 봉우리들 말이다. 그것을 지나쳐 북으로 계속 직진하면 그들의 목적지였던 ‘요툰하임’이 나온다. 아니면 그것을 낀 채 왼쪽으로 꺾어 나흘을 날아갈 수도 있다.


 그 끝에는 단번에 무시무시하게 질릴 정도로 날카롭게 깎아지는 절벽 낭떠러지가 나온다. 브라잇 동맹원에겐 세상의 끝으로 인식되어 왔고 일명 ‘피의 절벽’이라 불리어 온 장소이다. 마치 위에서부터 악마가 커다란 칼로 힘주어 똑바로 자른 듯 수직 절벽이 세워져 그 밑바닥이 차마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디깊었다. 그 한참 아래로 땅이 있는지 물이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절벽 밑까지 내려가 본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북쪽을 향해 서 있는 이 절벽은 일 년 열두 달 삼십일 내내 햇빛이 거의 비추지 않아 대낮에도 늘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런 중에 더 시커먼 그림자들이 절벽을 오르내리곤 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된다는 소문도 들리었다.


 음산하고 깜깜한 이곳에 어둠을 먹으며 빛을 피해 살아가는 뱀파이어의 왕국인 ‘뱀파니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안 일룸니아는 마법 양탄자 ‘파란총알’을 타고 날아가는 중이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무지 끝으로 피의 절벽이 무시무시하게 나타나자 그는 예전 ‘딥언더니아 왕국’에 처음 왔을 때처럼 또다시 당황하기 시작했다. 왕국 같은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양탄자가 갑자기 반으로 꺾이더니 절벽 밑으로 빠르게 수직 낙하하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그가 양손으로 그것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몸을 바짝 붙이며 야단을 쳤다.


“그만해! 떨어질 것 같단 말이야!”


 끝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는 주인의 말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서 파란총알은 계속 낙하를 시도했다. 이제 주변은 빛이 사라진 어두컴컴함 암흑 그 자체였다. 흡사 지옥으로 가는 길인가 싶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어느 지점에서 하강이 딱 멈추었다. 다시 수평을 유지하며 그를 안전하게 받친 그것이 멈춘 데 앞에는 동굴이 하나 뚫려 있었다. 그 안은 여기보다 더욱 컴컴했다. 그러나 뱀파이어인 그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동굴의 저 안쪽 끝으로 문이 하나 보였다.


 동굴 입구에 선 그는 양탄자를 접어 후드티 주머니 안에 잘 집어넣은 후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전에 수진이 동맹을 떠나면서 핸드백에서 꺼내 그에게 홱 던지고 갔던 것이다. 이후 유용하게 잘 사용했는데 목적지를 말하면 저 스스로 데려가는 편리성 때문에 요즘엔 이것 없이는 원거리 이동을 거의 하지 못하였다. 그가 문을 향해 몇 발자국 앞으로 내밀던 찰나였다.


 작은 황금 불빛 두 개가 멀리 어둠 속에서 나타나더니 이쪽으로 다가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도 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마치 유령처럼 쓱 날아온 듯했다. 남자였다. 그는 우아하게 옆으로 비켜서며 이안이 지나갈 수 있도록 양보해 주었다.


“좋은 하루.”


 먼저 인사를 건넨 그 남자는 스르륵 동굴 밖으로 달려 나갔다. 이안이 황급히 따라가 절벽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는 거미 그림자처럼 낭떠러지를 타고 스르륵 올라가고 있었다. 이안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뱀파이어였던 것이다. ‘뱀파니아 왕국’에 옳게 도착한 것이다.     


 이윽고 문으로 돌아와 그가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손잡이가 환영처럼 잘 잡히지 않았다. 문으로 손을 내밀어 보았다. 손이 쑤욱 안으로 통과해 들어갔다. 그는 그대로 통과하였다. 어두운 동굴이 이어졌다. 걸어 들어가는데 처음엔 못 맡았지만 썩어가는 악취가 점점 강하게 주변에 진동했다. 숨을 안 쉬는 그에게도 느껴질 정도로 그것이 극도로 심해질 때쯤 길이 꺾이었다. 그리고 그 코너 안쪽에서 어떤 움직임을 보고야 말았다.


 그는 깜짝 놀라 제자리에 우뚝 서 버렸다. 만약 심장이 뛰고 있었다면 순간 정지했을지도 모른다.

 뭔가가 그곳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아니 전체적인 윤곽은 동물 같기도 했다. 이안의 차가운 파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늑대처럼 하늘빛으로 광채를 뿜어냈다. 그러자 그것이 움찔하며 이안 쪽으로 살짝 내민 두 팔을 내리더니 통통 얕게 점프하여 길을 비켜주었다. 그것이 힘없이 느릿느릿 벽에 바짝 붙은 채 몸을 질질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안은 지나치면서 용기를 내어 그것을 자세히 관찰해보았다.


‘세상에나, 저게 뭐래?’


 그는 너무나도 큰 충격에 빠져 또다시 걸음을 멈칫했다. 차마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건 자신과 같은 흡혈귀였다. 그런데, 그런데,

 

 평소 아름다운 외양부터 평범한 외모의 뱀파이어까지 다양하게 접했지만 이리 기형으로 추하고 지저분한 피조물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것은 간신히 중요 부위만 천으로 가린 채 한참이나 굶주린 듯 얼굴과 온몸이 비정상적으로 비쩍 말라 겨우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그런데 목이 완전히 꺾여 얼굴이 거꾸로 옆으로 달랑달랑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긴 흰머리는 산발이고 해골 같이 걸신들린 모습으로 붉은 눈은 초점이 없이 퀭하였다. 묶여있지 않아 손발을 움직이긴 했지만 동작은 그리 크지 않았고 엄청 추운 것처럼 온몸과 머리를 부르르 떨었다. 더욱 흉측한 건 마치 문둥병자처럼 코가 문드러지고 입술은 거의 떨어져 나간 점이다. 유난히 큰 두 송곳니가 썩어가는 잇몸 아래 박힌 채 입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아니, 이건 뱀파이어라 할 수 없었다. 괴물 그 자체였다.


‘피가 도는 생명체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모양이구나. 그래서 ‘뱀파니아’를 방문했다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거였어. 살아있는 자가 통과하려면 저것한테 먼저 잡아먹힐 테니까. 일종의 문지기 같은 거군.’


 그는 떨리는 마음을 단단히 부여잡고서 그것을 지나쳤다. 그러나 조금 더 가자 방금 전과 비슷한, 그러나 이번엔 머리는 제대로 목에 붙어있는 피조물이 또 서성거리었다.


 그렇게 여러 개를 더 지나치고 나서야 마지막 문에 도달할 수 있었다. 커다란 하얀 십자가가 거꾸로 매달린 문이었다. 손잡이를 돌리자 (이번엔 환영이 아닌 실재였다) 문이 밖으로 열리었다. 안으로 들어간 그는 놀라 휘둥그레진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마치 책이나 영화에서만 보던 중세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로마처럼 잘 다듬어진 돌들을 깔아서 만든 도로와 광장, 푸른 이끼가 낄 정도로 낡고 오래된 성들과 우아한 돔 지붕을 가진 고풍스러운 수도원, 고딕 예배당, 오래되어 검게 변색이 된 벽과 지붕의 저택들과 상점들, 서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들 사이로 가파르게 나 있는 좁은 돌계단들과 사방팔방으로 뻗은 미로와 골목들, 도시를 가로지르며 잔잔히 흐르는 검은 운하, 그 위를 지나가며 대리석 조각들이 빙 둘러싸인 아름다운 돌다리, 하늘거리는 드레스와 턱시도 차림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들, 아니 뱀파이어들. 세상에나, 여긴 아직도 말이 끄는 마차들이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가 절벽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해가 뜬 오후였는데 여기서는 타들어가는 양초 불이 뿌옇게 새어 나오는 가로등들이 켜진 어두컴컴한 밤이었다. 그리고 어둠 사이로 뭔가가 얼핏 날아다녔는데 가로등 위로 그것이 지나가자 박쥐임을 알아차렸다. 그 수가 상당히 많았다. 한마디로 중세 영화를 곧바로 촬영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히 복원된 세트장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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