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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Jan 22. 2020

3. 진달래 해적선과 제임스 후크 선장

3. 진달래 해적선과 제임스 후크 선장


 아이들은 학의 발톱에 단단히 움켜잡힌 채로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 위를 날아갔다. 얼마 후 발톱의 힘이 좀 약해지자 느슨해진 틈을 이용해 다리와 손을 빼내어 그들은 슈퍼맨처럼 편안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정면이 아닌 옆으로 매달린 채였지만 말이다. 한차례 고비를 무사히 넘겨서 그런지 그들의 몸에서 긴장이 점점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중에 어떻게 될는지는 닥칠 때 생각하기로 하고 지금은 잠시 이대로 작은 성공이나마 만끽하고 싶었다. 


 불어오는 찬바람과 추위에 그들의 몸은 부르르 떨려왔다. 세 마리의 학이 만년설이 쌓인 ‘흰모자노인장’의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그들 밑으로 펼쳐진 하얀 눈담요는 햇살에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지금 아래로 떨어진다 해도 전혀 다치지 않을 만큼 눈과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학들도 높은 산을 넘는 게 힘이 드는지 날아가는 속도가 점점 늦춰졌다. 


 ‘흰모자노인장’ 너머로 높다란 봉우리들이 구불구불 이어진 산맥은 그 어떤 이방인의 침범조차 가벼이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짙은 원시성과 신비함을 내뿜으며 불길한 느낌을 자아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니 마음 단단히 먹으라는 경고처럼도 들리었다. 아이들의 몸은 다시 긴장되어 뻣뻣해졌다. 이안을 낚아챈 학이 나머지에 비해 덩치가 더 컸음에도 불구하고 제일 뒤처져 날아오다가 별안간 한차례 휘청거렸다. 


 산맥을 넘어 북쪽으로 날아가자 싱그러운 풍경이 쉴 새 없이 그들 밑으로 펼쳐졌다. 수진의 고개가 왼쪽으로 돌려졌다. 더 이상 딥언더니아의 옥수수 평원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 아래로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숲과 푸른 초원, 그리고 잔잔히 흐르는 맑은 강, 하늘과 구름을 비추는 에메랄드빛 호수가 한 폭의 그림이 되어 그녀를 맞이하였다. 들판과 나뭇가지에 봄의 신록이 아른거리었다. 공기도 깨끗하고 상쾌했다. 


 그러나 집이라던가, 길 같은 사람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이처럼 광활한 자연을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기는 카할에겐 처음이고, 이안과 수진에게는 두 번째여서 그런지 (예전 낭떠러지를 건너느라 무지개풍선기구를 탄 적이 있음) 아래 펼쳐진 장관에 다들 감탄하며 즐거워했다.

 

 한참을 그렇게 날아갔다. 점점 지루해져 졸음이 몰려오려는 무렵이었다. 어디선가 우레와 같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안이 긴장하여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카할 역시 딥언더니아인의 예민한 청각으로 알아차리고는 눈을 번쩍 떴다. 수진은 이안의 호통으로 겨우 잠에서 깨어나 귀를 쫑긋 세웠다. 


 소리의 정체가 모습을 드러내려는 순간이었다. 


 카할이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며 흥분하여 외쳤다.     


‘거인의 목욕탕’이야! 드디어 요툰하임에 거의 다 온 거야!”      


 저 앞으로 엄청난 수량의 물이 떨어져 내리는 폭포와 강이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떨어져 내리는 폭포면이 양옆으로 길게 뻗어나가며 시퍼렇게 서슬이 선 검푸른 물이 어마어마하게 흘러내렸다. 그것은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데, 왜 ‘거인의 목욕탕’이란 이름이 붙었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거인 여러 명이 다 함께 목욕을 해도 될 정도의 크기이기도 했지만, 폭포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센 물안개가 마치 목욕탕의 수증기처럼 증발하여 퍼져나갔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건 폭포 아래 흐르는 강 위로 배 한 척이 유유히 항해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얼룩덜룩한 낡은 돛을 올린 배는 뒤에서 불어오는 미풍과 노들이 젓는 인력을 이용하여 무섭게 떨어져 내리는 폭포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돛 위에 걸린 깃발이 바람에 힘차게 펄럭이었다. 검은 바탕에 분홍 진달래꽃을 귀에 꽂은 해골이 그려져 있었다. 해적선이었다.


 수진은 신기하여 그것을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어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저 아래에선 그저 날아가고 있는 평범한 학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니, 해적선의 그 누구도 머리 위의 하늘이나 날아가는 새에 대해 발톱의 때만큼도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는 것이 정확한 설명이겠다.

       



 그럼 여기서 잠깐, 아이들의 비행을 계속 따라가기도 지겨워지니 ‘거인의 목욕탕’을 항해하고 있는 ‘진달래 해적선’ 안을 살짝 들여다보기로 하자. 배의 주인인 ‘제임스 후크 선장’은 아주 특이한 사연을 지니고 있기에 그냥 지나치기 아까워서다. 


 노랑을 넘어 누런색, 황색, 겨자색, 갈색, 짙은 고동색 등등 색상과 느낌이 너무도 조약한 티가 나는 나무판자들로 땜질한 흔적이 역력한 선박의 외부와 갑판 바닥은 ‘해적선’이라 부르기엔 퍽이나 초라하고 불쌍해 보인다. 선착장에서 버리는 과일상자 나무판자들도 들어갔는지 바닥의 여기저기에 ‘사과 5KG-부산항’, ‘바나나 3KG-필리핀’, ‘오렌지 4KG-캘리포니아’ 등의 검은 인두 낙인들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알록달록한 돛은 그냥 쓱 쳐다만 봐도 셔츠와 잠옷, 이불 홑청, 티셔츠와 치마, 하물며 잘라서 펼쳐놓았지만 분명 남자의 청록 사각팬티인 것을 꼼꼼히 바느질하여 이어 붙여 차마 눈뜨고 보기가 민망하여 마음 한편이 저려올 정도이다. 추측컨대 해적들이 어느 주택가에서 말리던 빨래를 한꺼번에 훔쳐온 듯싶다. 


 곧 돛이 내려지고 갑판을 수놓은 캘리포니아 인두 낙인 위로 물걸레가 쓱 하며 지나갔다. 폭포에서 내리는 비가 배에 들어찼기 때문이다. 노를 젓는 해적들의 합창소리가 폭포에 묻혀 사라졌다. 부슬비가 오는 것처럼 물이 계속 떨어지자 키를 잡고 있던 선장의 검은 모자 위로 분홍색 우산이 펼쳐졌다. 갑판장 스미가 들고 있는 그 우산은 지팡이 대가 아주 높아서 키가 작은 그가 힘껏 몸을 세우면 우산이 선장의 모자 위로 가까스로 지나갔다. 


 시체처럼 검은 낯빛에 비쩍 마르고 멀대처럼 키가 큰 선장은 그대로 멈춰 서더니 왼손으로 운전하던 방향키에서 벗어나 계단 아래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스미가 우산을 받들며 그를 따랐다. 선장은 계단을 내려와 갑판 위를 걸어갔다. 미루었던 샤워를 지금들 하는지 웃통을 벗어던진 지저분한 몰골의 해적들 사이로 그가 뚜벅뚜벅 걸어가더니 뱃머리 앞에서 멈추었다. 폭포비가 소나기처럼 그의 우산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그는 감상적인 눈으로 폭포를 바라보며 왼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손가락 끝으로 느껴지는 물을 쳐다보는 그의 옆모습이 참으로 애틋하고 슬퍼 보인다고 스미는 생각했다. 


 선장은 몇 번 더 그러더니 뒤돌아 다시 계단으로 올라와서 원래 그가 서 있던 방향키 앞에 멈추었다. 그는 말없이 스미에게 눈짓을 찌릿했다. 그러자 그는 바로 선장에게 소라껍데기 마이크를 건네었다. 이쯤 되면 다른 이들은 울고 싶은 것처럼 오만 인상을 다 찌푸렸는데 그가 또 시를 읊을 예정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도 들어서 이젠 지긋지긋 신물이 난 그 개똥 같은 시 말이다. 하지만 아무도 선장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오나시아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나 보기가 역겨워, 나 보기가... 역.. 겨.... 워.. 으앙~”     


 시를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한 채 선장은 울음을 터트렸다. 이 모습을 보고 지겹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짓는, 영양실조로 뺨에 버짐이 피고 잇몸이 시커메진 신사 스타키가 옆의 세코에게 귓속말을 하였다.


“또 도지셨넹. 올해만 벌써 4번째여. 우째 몇 년 내내 저러시는 감, 참내. 안 그래도 명색이 해적선인데 아까 폭포에 잘못 맞아 앞쪽이 산산조각 날까 봐 내 이 가슴이 다 조마조마했던 걸 선장은 아시능가 모르능가?”


 귀에다 스페인 주화를 달고 얼굴이 누렇게 뜬 세코가 한때는 두꺼운 팔뚝을 자랑했었지만 지금은 삐쩍 말라비틀어진 채로 겨우 흔들며 동조했다.


“선장은 아직도 모르실겨. 저 우울증 땜시 해적질이고 뭐고 당체 관심이 없으시니 우리만 거지꼴 되어가는 거 아니겠어? 이 배는 또 어떻고? 네 눈에도 이게 해적선이여? 완전 거지 수용선이지. 암, 그렇고 말고. 다른 해적선 만나면 확 갈아타야겠어. 옛정이고 뭐고 저 시 나부랭이 더 듣다간 내 머리통이 미칠 것만 같당게. 진달래꽃만 보면 다 입에 처넣어 이빨로 아작을 내고 싶당게.”


“그럼 너 떠날 때 나도 같이 가자고.”


 그랬다. 찢어지게 가난한 ‘진달래 해적선’의 ‘제임스 후크 선장’은 몇 년째 중증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그는 진달래꽃 화분에 의지하여 하루하루 견디며 살아가는 중이었다. 한때는 악질 해적 ‘바비큐'가 유일하게 두려워한 적수였고 가장 잔인한 해적에게 주는 명예훈장까지 받았던 그였었는데. 지금은 그런 흔적은커녕 찬란했던 과거는 다 사라지고 징징거리는 하찮은 존재로 전락한 것이다. 

 

 물론 피터팬과 잃어버린 아이들과의 전쟁에서 진 것도 그의 내리막 인생을 알리는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신기한 건 다른 배 같았으면 변변치 않은 선장을 처치하기 위해 벌써 여러 번 선상반란이 일어났을 법도 한데 여기선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만 선원의 수가 점차 줄어가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제임스 후크는 그런 일까지 신경 쓰기엔 너무나 슬프고 우울했다. 


 그는 방향키를 돌려 다시 출항을 명령하고 폭포에서 멀어지자 선실로 내려왔다. 쓰레기로 너저분한 책상 위에 진달래꽃 화분이 올려져 있었다. 그는 마치 그것이 연인이라도 되는 양 가슴에 꼭 끌어안고서 눈물을 또르르 흘리었다. 긴소매로 내내 가려졌다가 드러난 그의 오른손에는 쇠갈고리가 달려있었다. 흔들리는 등불에 그 끝이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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